지눌의 수심결 (修心訣)에서
어린 시절, 엄마와 할머니를 따라갔던
사찰의 모습은 무섭고 두려웠다.
사찰 벽면에 그려진 수호신의 모습은 흡사 도깨비 같았고,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의 모습은 너무 근엄하셔서,
감히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웠다.
나이가 먹어, 찾아간 사찰의 모습은
어딘가 모를 편안함을 준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사찰만이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가끔은 사찰의 냄새와 그 편안함에 끌려
마음이 불편할 때는 발길이 사찰을 향하기도 한다.
지눌은 고려시대 승려이다.
그리고 어렵기만 한 불교 경전을 쉽게 해석해
대중에게 전하고자 한 사상가이기도 하다.
그 노력 중 하나가 40절로 구성된 수심결 이다.
수심결에서 지눌은 ‘내 마음이 부처’ 임을 강조한다.
마음에 쌓여 있는 업장, 무명, 욕심 등의
마음의 먼지를 닦고 털어내어
우리의 마음을 맑게 하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쉽게 말하자면,
나쁜 기운으로 가득 찬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수심결의 한 구절인
오후목우(悟後沐牛)를 소개하려 한다.
오후목우(悟後沐牛)는 '깨친 뒤에 소를 기르듯이 하라'라는 뜻이다.
소를 기르듯이 하라.
무슨 말일까?
소를 길러본 적 없는 우리네 입장에서는
지눌의 깊은 뜻을 헤아리기 어렵다.
지눌의 깊은 뜻을 알고자
소를 떠올려 본다.
소의 슬퍼보이는 두 눈과, 오래전 보았던 영화가 생각났다.
‘워낭소리’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할아버지와 소의 이야기인데,
귀가 잘 들릴지 않는 80세 넘은 할아버지는
희미한 소의 소리를 듣고 먹이를 주기 위해
풀을 베러 힘겹게 산을 오르신다.
거동조차 힘든 몸을 이끌고 소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
매일같이 산을 오르며 소를 돌본다.
할아버지에게 소는 친구이며,
소에게 할아버지 또한 친구가 된다.
할아버지의 모습은 큰 울림을 준다.
삶의 어떠한 순간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모습.
자신의 삶이 힘들어도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는 마음.
할아버지의 고된 삶이 힘들어 보였지만, 그 속에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우리의 삶은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
억울함에 분노를 느끼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그러한 마음가짐이 잘못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살아갈수록 못된 삶의 찌꺼기들이 쌓여간다.
한 번의 분노와
한 번의 시기와
한 번의 혐오는
또 다른 분노, 시기,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한번 쌓이기 시작한 삶의 찌꺼기들은
어느덧 성격으로 굳어 습관이 되기도 한다.
소를 돌보던 할아버지의 모습처럼.
생(生)의 찌꺼기가 쌓이지 않게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여유를 가졌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