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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en Tree Mar 04. 2021

나는 오늘도 칼퇴합니다.

칼퇴가 나쁜 건가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내일 뵐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문을 나선다.

오늘도 난 일등으로 퇴근한다.


내가 칼퇴를 시작하게 된 건,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이다.

아침 7시 40분 부터 어린이집에서 내가 오기만을 눈 빠지게 기다릴 두 돌 갓 지난 아들 녀석이 눈에 밟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의 칼퇴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직장동료들은 어쩌다 내가 조금이라도 늦게 퇴근하는 날엔 오히려 내게 무슨 일이 있냐고 걱정하며 묻는다.

칼퇴와 나는 등식 관계가 되어버렸다.


가끔 직장상사는 내 칼퇴가 못마땅한 눈치다.

"집에 금이라도 숨겨 놓았나 봐,

왜 이렇게 매일 일찍 집에 가."

뼈가 아주 가득 담긴 말이라 생각한다.

직장상사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자.

"너는 일 안 하고 왜 이렇게 집에 일찍 가냐?

 일 좀 하다가 가라.

일이 없어도 좀 더 있다가 가면 안 되겠냐. 아직 나도 퇴근 전인데, 감히 네가 먼저 집에 간다고?"




칼퇴를 전문적으로 10여 년간 지속한 사람으로서, 칼퇴가 나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절. 대.로.

나의 칼퇴가 내가 속한 공동체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난 주어진 시간 안에 내 몫의 일을 미친 듯이 열심히 한다.

어떤 날은 화장실 갈 시간도 아끼면서 말이다.


게다가 지금은 워라밸 시대 아니던가!

그런데도 아직까지 칼퇴를 하는 사람을 일에 뒷전인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이 나는 늘 못마땅하다.

저 사람은 칼퇴를 하니, 일이 별로 없는거 아니냐는 동료들의 쑥덕거림 역시 나를 불편하게 한다.


칼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는 직장에 몸 담고 있는 시간동안 일에 구멍을 내기 싫어 최선을 다한다.

나는 내 일에 진심인 편이다.


그리고 나의 가족에게도 진심이고 싶다.

내가 주체가 되어 가정을 만들었으니,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엄마가 퇴근하기만을 눈 빠지게 기다리는 아이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지쳐있는 아이들에게 쏟을 열정 일부분을 남겨둬야 하지 않겠는가.....


퇴근하고 아이들과 보내는 3~4시간.

시간은 내 삶에서 일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일하는 엄마 한 명,

집에 있는 엄마 한 명.

엄마가 둘이었으면 좋겠다는 딸아이의 말에

나는 오늘도 칼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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