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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en Tree Mar 06. 2021

선생님, 저 분노조절장애 라구요!

그 학생은 진짜 분노조절장애일까?

목요일 7교시 수업을 하러 교실에 들어갔다.

교과서를 펴고, 수업을 막 시작하려 할 즈음이다.

한 학생이 다른 과목 문제집을 열심히 풀고 있다.

못 봤으면 좋으련만, 꼭 이런 건 눈에 잘 띈다.

그리고 이 녀석은 간도 크게 맨 앞자리에 앉아서 다른 과목 공부를 하고 있다.


"수업 종이 쳤으니, 모두 자리에 앉고 교과서를 준비합시다."

그런데도 이 녀석은 요지부동이다.

'이거봐라. 날 시험하는구나! 모르는척하면 다른 애들도 내 시간에 다른 과목 공부할 텐데.... 저 문제집을 뺏어 말어.'


짧은 시간 내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맴돈다.


일단 시간을 주자.

조금 지나면 집어넣고, 교과서 꺼내겠지.


수업을 시작했고, 수업이 시작되고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계속 다른 과목 문제집을 풀고 있다.

이미 내 신경의 모든 것은 그 아이에게 뺏겨 버렸다.


'그래, 나도 시간을 많이 줬고, 이제 네 잘못을 알려줄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학생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너는 왜 다른 과목 문제집을 푸냐고, 지금은 수업 시간이니 교과서를 펴라고 좋게 말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네"라고 대답하더니, 계속 그 상태다.


'아이씨, 이거 오늘 마지막 수업인데.....

 오늘만 지나면 금요일이고.....

 제발 제발 문제집 좀 치워주라. 수업 열심히 안 들어도 되니. 책만 제발 꺼내 줘.

 다른 애들 보는 눈도 있고... 제발 부탁한다.'라고 간곡히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 시간 내내 그 아이는 교과서를 꺼내지 않았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고, 나는 그 학생을 교무실로 불렀다.

그리고 물었다. 왜 수업시간인데 다른 과목 문제집을 풀었으며 왜 수업을 안 들었는지....

벌점을 주겠다고도 말했다.

수업을 안 들었고, 교사의 지도에 불응한 내용 등 벌점의 죄목들을 낱낱이 고했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내게

"선생님, 저 분장이에요."라고 말한다.

"뭐?"

"저 분장이라고요."

"분장이 뭐 어쨌다고?"

"저 분노조절장애라고요!"


완전 어이가 없음이다.

분노조절장애라....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래서 뭐?



언젠가부터 아이들은 자신이 분노조절장애라는 병의 환자임을 아주 당당하게 말한다.

그 말이 내게는

"나 지금 당신 때문에 화났거든. 나는 화를  못 참아. 그러니까 날 건드리지 마.

 괜히 건드렸다가 못 볼 꼴 보지 말고."라고 들린다.


분노를 참치 못함이 언젠가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방패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학교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목소리가 크고 화날 때 물건 좀 던져주는 막무가내 행동을 발휘하면 그 사람을 제재하지 못하니 말이다.


한 해가 지날 때마다, 학교에는 자신이 분노조절장애를 갖고 있음을 밝히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

새 학기 학생 기초조사서에 자신의 성격, 장단점을 기록하는 칸에 분노조절장애라고 쓰는 학생들도 꽤 있다.

인생의 14년, 15년, 16년째를 맞이하는 그들에게 대체 어떤 일들이 있어길래,

이토록 분노를 참지 못하고, 분노를 참지 못함을 당당하게 밝히는 것일까?


새 학기 첫 주가 지났다.

오늘 나는 내 마음의 분노를 다스리려 한다.

내 마음의 화가 없어야, 분노의 깊은 늪에 빠져 있는 학생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분노가 아이들에게 옮겨가지 않기를,

사회의 분노가 아이들에게까지 전염되지 않기를,

그래서 분노조절장애라 당당히 밝히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기를......


분.노.조.절.장.애.

아이들은 정말 분노조절장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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