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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en Tree Mar 08. 2021

마흔두 살, 아줌마는 되기 싫다.

마흔두 살.

의심할 여지없이 중년 여성이라 불리는 나이가 됐다.


20대까지는 나이를 먹는 것에 무감각했고,

30대는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나이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누군가 나이를 물어보면 내가 서른다섯이었나 서른여섯이었나 계산하고 답 한 적도 꽤 있다.

40대가 되어 보니, 어느 날 마흔 하나, 어느 날 마흔둘이 되어 버렸다.

시간이 빠르다는 얘기다.

이러다 50이 되고, 60이 되고, 70이 되는가 보다.




여자를 부르는 호칭에 대해 생각해 봤다.

결혼 전까지는 아가씨.

결혼하고 아기가 없을 때는 새댁.

결혼하고 아기가 생기면 아줌마.


이 논리에 따르자면,

나는 아줌마로 산지 13년째 되는 셈이다.

큰 아이가 올해 열세 살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13년째 아줌마로 살고 있지만.

아줌마라는 소리는 참 적응이 안 된다.

어쩌다 아줌마라는 소리를 듣는 날엔,

기분이 영 별로다.


아줌마 파마.

아줌마 패션.

아줌마라는 단어와 만나면,

파마도 패션도 본래의 역할을 상실한 것 마냥 낯선 의미로 다가온다.


꾸안꾸가 대세인 요즘 시대에

아줌마 파마는 과하게 컬이 나온 촌스런 파마를 뜻하는 것 같고,

아줌마 패션 역시 예쁜 원피스보다는 일할 때 입는 몸빼바지가 연상된다.

이렇게 적다 보니 더욱,

아줌마라는 단어를 부정하고 싶어 진다.



며칠 전, 너무 비싸진 야채 값에

(정확히 말하면 대파를 사기 위해서다. 마트에서 대파는 한단에 8,990원이었다.)

시장은 좀 저렴하려나 싶어 시장에 다.

먹자골목 쪽을 지나가는데, 순대를 썰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아가씨, 순대 좀 사가요."라고 하신다.


나한테 하는 말인가 의심스러워, 주변을 둘러봤다.

나 말고는 지나가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려서일까?

할머니의 눈이 잘 안 보이셔서 일까?


아.가.씨 라니......


기분이 좋다.

순대 살 생각은 0.0001%도 없었는데,

내 손엔 순대가 잔뜩 담긴 검정 비닐봉지가 들려있다.


아가씨라는 말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아줌마 말고,

아가씨 라는 말에 버금가는.

기혼여성을 일컫는 뭔가 쌈빡한 단어 하나를 국가적 차원에서 만들어 주면 좋겠다.

오늘도 육아와 일에 지쳐 나이 듦을 잊고 살아가는 기혼여성들의 기분전환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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