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lden Tree Feb 21. 2023

9년간 함께한 직장을 떠납니다.

공립학교 교사는 보통 5년에 한번 인사이동을 한다.

하지만 나는 9년만에 인사이동을 하게 됐다.

밉던 곱던 9년간 적을 두고 함께 했던 곳을 떠나려니 만감이 교차한다.


나름 심플하게 살고자 노력한 결과 짐은 단촐했다.

대형 사이즈 장바구니 하나로 9년의 흔적을 지운다.

짐정리를 끝내고 물티슈를 꺼내 서랍안과 책상 위를 닦았다. 행여나 있을 나의 흔적으로 이 자리를 건네 받은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내일이면 타인의 공간이 될 이 자리가 애틋해서 서운해진다. 지긋지긋하다 생각하며 떠날 날을 기다린 순간을 떠올리며 애써 서운함을 덜어내본다.

한참을 질척대다 쿨하게 이별하며 교문을 나섰다.


나이를 한해 두해 채워가며 근무지를 이동하는 마음가짐도 예전과 달라짐을 느낀다.




스물 아홉. 첫 인사 이동때는 그냥 설레였다.

낯선 곳에서 어떤 일이 펼쳐질까하는 기대와 설레임.

서른에 대한 동경과 신규 교사 딱지를 떼고 경력교사가 되어감에 기뻤다.


두번째 학교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서른 중반에 새로운 학교로 이동했다.

서른 중반의 인사이동은 긴장과 설레임이 공존했다.

새로운 곳에서 뭔가 잘해봐야지 하는 의지도 있었고 교직경력 10년이 넘는 베테랑 교사가 되었다는 자만도 있었다. 그리고 그 자만 뒤엔 10년이나 교직에 있었는데 이런 것도 못해라는 부정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했다.


마흔이 넘어 근무지를 이동하니 이제는 설렘보다 걱정이 앞선다.

설렘 10%, 걱정과 두려움 90%다.

마흔 넘은 내가 낯가림을 하면 주변인들이 불편해할까 애써 대담한 척 해본다.

낯선 환경에 적응은 잘 할 수 있을지.

오만가지 걱정을 생산중이다.


이 중 가장 큰 걱정은 나이값에 대한 걱정이다.

어쩌다보니 채워진 마흔이 넘는 나이인데, 남들은 내 나이를 들으면 놀란다.

'저도 제 나이가 믿기지 않아요.'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나이는 차곡차곡 채워지는데 나는 늘 그대로인 것 같다.

적어도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 할텐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걱정이다.


앞으로 몇 곳의 학교를 옮기면 내 교직생활에도 마침표를 찍는 날이 오겠다는 생각도 이번 인사이동을 하며 처음 해봤다.

점점 인생의 끝자락으로 자연스레 이동중이다.




새로운 학교로 출근하고 있다.

며칠 나가보니 여기도 사람사는 곳이었다.

이러다 적응하겠지만.

익숙해지는 날이 조금 일찍 오길 바람한다.


낯섦을 담대하게 견뎌낼 수 있도록.

그리고 어른다운 사고와 행동으로 새로운 곳에서 열심히 살아낼 수 있도록 노력하며 한 해를 채워가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