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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en Tree Jan 13. 2024

화를 참고 있는 당신에게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며칠 전, 심리검사를 했습니다. 마흔이 넘어서도 여전히 불안을 안고 사는 제 심리상태가 궁금했거든요. 이메일로 발송된 심리검사 결과지를 읽어보며 제 모습을 한번 더 확인할 수 있었고 숨겨져 있는 새로운 모습도 깨달았어요.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새로운 나를 알아가는 기분은 늘 두근거립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검사결과를 읽어보다 유독 눈길이 가는 것이 있었어요. 갈등을 대하는 저의 태도였죠.


저는 갈등이 생기면 일단 피합니다. 갈등은 살다 보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필연적인 일임에도 저는 그 상황 자체가 싫어요. 갈등이 생긴 누군가와의 불편한 온도가 견디기 힘들고 이 불편함은 곧장 불안을 초대합니다. 그리고 불안은 저의 평온한 일상을 야금야금 갉아먹어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갈등 발생 직전에 갈등이 터지지 않도록 마음속, 화의 불씨를 급하게 꺼버립니다. 하지만 화의 불씨가 완벽히 소진되지 않아 늘 문제가 생기죠. 갈등상황은 어떻게든 피했지만 마음속 화의 불씨는 언제든 놀라운 화력을 발휘할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40여 년을 살다 보니 작은 화의 불씨들이 하나둘 차곡차곡 모아져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줬습니다. 몸이 아프기 시작했거든요.




나이가 들수록 온화한 태도를 유지한 채, 기분이 좋지 않음을 적당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분명 화를 내야 마땅한데 얼렁뚱땅 급하게 불을 꺼버린 제 모습과 대조적이라 이런 분들을 볼 때면 존경심이 싹틉니다. 반대로 아무 때나 큰 목소리와 거친 말투를 내세워 버럭을 일삼는 사람을 볼 때면 나이 들수록 저렇게는 되지 말자고 다짐하죠. 저의 이런 생각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온유라는 중용의 덕으로 알려줍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이 갖추어야 할 다양한 미덕을 알려주고 있어요. 분노와 관련된 미덕 중 그는 '온유'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연히 화낼 일로, 당연히 화내야 할 사람들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적당한 만큼, 적당할 때에, 적당한 기간 동안 분노하는 사람은 칭찬받는다. 그런 사람은 온유한 사람일 것이다.

자기가 모욕당해도 참고 견디고, 친구들이 모욕당해도 이를 보고만 있는 것은 노예다운 태도이다.

우리는 화를 내서는 한 될 일에, 너무 지나치게, 너무 오래 화를 내며 복수하거나 응징하기 전에는 분이 풀리지 않는 사람을 괴팍스러운 사람이라고 부른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4권 제5장에서 인용>




2024년 새해 첫날 아침. 분주하게 떡국을 끓이고 거울을 봤어요. 평소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데, 새해 첫날이라 그랬을까요. 거울 속 제 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봤어요. 아직도 마음은  이십 대 청춘에 머물러 있지만 시간은 저를 중년여성으로 만들어 놨더라고요. 염색할 시기를 놓쳐 흰머리카락이 수두룩했고, 새로운 주름의 흔적도 보였습니다. 거울과 마주하며 '나잇값 하며 살자'라고 새해 다짐을 했습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제 나이에 맞게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중 하나가 모욕의 순간 제대로 적당하게 화를 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누가 봐도 이 상황은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이고, 모욕의 순간이라면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닌 거죠. 올바른 언어로 적절한 방법으로 적당하게 화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타인이 처한 모욕의 순간에도 적당한 간섭으로 관심을 보여줄 수 있는 어른의 모습을 갖추고 싶고요.




요즘 부쩍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요. 할머니는 매일 동네 뒷산 약수터에서 약수를 떠다 주셨어요. 약수터 정상에서 '야호'를 크게 외치는 할머니를 동네사람들은 '야호 할머니'라고 불렸어요. 방학 때는 할머니를 따라 종종 약수터에 갔는데요. 큰 소리로 야호를 함께 외치자고 했던 할머니 곁에서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할머니는 소심한 제가 걱정되셨는지,  "참고 살면 화병 난다. 화가 나면 바로바로 풀어내야 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때는 너무 어려 화병이 뭔지도 모른 채 할머니 말을 들었던 것 같아요. 살다 보니 화병이 뭔지 알겠더라고요. 아마도 할머니는 매일 '야호'를 외치며 마음속 화를 조금은 풀어내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의 몸과 마음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반응하고, 마음이 불안하면 꼭 몸에서 이상신호를 보내거든요. 그래서 스트레스가 모든 병의 원인이 되는 것 같아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이 지금 어딘가에서 부당한 일을 겪으며 마음 고생하고 계신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적당하게 분노를 표현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버럭이가 아닌 온유함을 잔뜩 갖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마음껏 뽐내시라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저도 2024년에는 부당한 일에 맞서는 온유한 중년여성의 삶을 살아볼 생각입니다. 무조건 피하고 참지는 않으려고요. 우리 모두 적당하게 화 좀 낼 줄 아는 사람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온유함을 잔뜩 품은 여러분의 2024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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