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삶은 어디에도 없다.
대학을 다니며 철학을 공부한 건 어쩌면 신의 가호(加護)였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생이 되고 세상에 눈을 뜨며 모든 것이 못마땅했다. 지방 소도시에서 대학을 다닐 수밖에 없는 현실부터 시작해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짜증 났다. 내 주변에 머무르는 작은 사물마저도 삐딱하게 보였다.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모든 것이 싫고 짜증 났다. 삐딱한 마음이 옳지 않음을 머리는 알지만 마음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삐딱한 나를 말없이 받아준 건 책이었다. 허름한 학교 도서관에서 잠시나마 책을 읽으면 삐딱한 내 모습을 잊을 수 있었다. 해가 화창한 날에도 우울함을 한껏 품은 비가 내리는 날에도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펑펑 올 때도 꾸역꾸역 언덕길을 올라 도서관으로 갔다. 유물 같은 낡은 책부터 잉크 냄새 풍기는 새 책까지. 말없이 나를 받아준 책 속 글자에 탐닉했다.
삐딱한 마음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던 스무 살 어느 날. 내 발걸음은 철학류가 꽂혀있는 서가로 향했다. 서가에서 쇼펜하우어를 만났다. 그가 전한 '삶은 고통이다.'라는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고 지금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마음에 드는 것이 한 가지도 없던 그 시절, 삶이 고통이라는 그의 말은 나를 빠져들게 했다. 그의 문장을 읽다 보니 삐딱한 세상이 더 삐딱하게 느껴졌다. 쇼펜하우어 같은 위대한 학자도 삶이 고통이라 말하는데, 지극히 평범한 나의 삶은 오죽하겠냐는 생각이 들며 앞으로의 내 인생이 몹시 걱정됐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금보다 힘든 삶은 없을 것 같은데 만약 생기면 어쩌라는 건지 운명이 얄미웠다. 우울의 늪에 허우적 대다 보니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삶을 포기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래서 그의 책을 읽지 않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마음이 우울하고 세상이 삐딱하게 보이는 날에는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지 않겠다고.
쇼펜하우어와 조우한 지 스무 해가 지났다. 스무 해가 지난 요즘 서점에 가면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일반인들이 철학책에 흥미를 갖는 현실이 기쁘다. 기쁜 마음에 쇼펜하우어의 아포리즘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읽다 보니 이상했다. 스무 해 전에는 삐딱한 나를 더 삐딱하게 만들던 그의 문장이 스무 해가 지난 지금은 위로의 말로 들렸다. 세월이 변하면서 나도 변한 것 같다. 최근 그의 문장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수집한 것이 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한다.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선별하고 시도하는 모든 활동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고통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죽음의 감각을 일깨우는 필요조건이 되곤 한다. 그러나 동물과 동물로서의 인간은 고통 때문에 파괴되지는 않는다. 내구성이 강해서도, 고통에 대한 면역력이 강화되어서도 아니다. 고통에 의해서 비로소 완성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통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걸어가야 할 필수 과정이다. 절대로 사라질 리 없는 유일한 길이다."
'삶이 고통이다.'라는 그의 말이 이제는 '너의 삶만 힘든 것이 아니니 힘내고 살아보라.'는 격려의 의미로 들렸다. 쉬운 인생은 어디에도 없다. 쉬워 보이는 사람의 삶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고통이 있고 힘듦이 있다.
인간은 공평하게도 각자의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누군가에게는 돈이 고통이고 누군가에게는 건강이, 그리고 누군가에는 사랑이 고통이 될 것이다. 비탈진 언덕에서 영원히 돌을 굴리며 살아야 하는 신화 속 시시프스처럼 우리의 삶도 고통의 연속이다. 끊임없이 고통이라는 돌을 굴리며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나이가 마흔 하고도 셋이 지나가는 요즘, 내게 주어진 시간이 과연 얼마나 남아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삐딱한 세상을 바라보며 불만만 늘어놓고 우울에 빠져 지내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아깝다. 고통스러운 순간을 마주하더라도 삶의 부분이거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남아 있는 내 시간을, 얼마가 될지 모르는 앞으로의 인생을 잘 견뎌내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쉬운 삶은 없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쉽게 살려고 하지 말자. 원래 인생은 쓴 법이다. 쓴 맛 가득한 힘든 하루를 꾸역꾸역 잘 버텨낸 나를 칭찬한다. 그리고 다사다난했을 2023년의 여러 날을 꿋꿋하게 이겨낸 여러분의 삶도 응원한다.
-쇼펜하우어의 문장은 김욱편역, 포레스트북스, 쇼펜하우어의 아포리즘, 49쪽을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