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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en Tree Mar 24. 2021

택시 타는 학생, 택시비 내는 선생

가족 사이에도 돈거래는

안 하는 게 진리라던데,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학생과 선생의 관계.

금전거래를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이다.


동아리 활동 날인데 깜박하고

돈을 준비하지 못해  빌려준 적은 있어도,

대놓고 돈을 빌려달라는 요구는 처음이다.


당황스러움에 내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음, 그래 얼마나?"였다.


지금 생각하니 참 바보 같은 말이다.

돈이 왜 필요한지를 먼저 물었어야 했다.

얼마나 필요하다고 묻다니....


그 아이가 빌려달라고 한 돈은

5000원이었다.

필요한 이유는 택시비였다.

일주일 후에 아빠한테

용돈을 받으면 갚겠다고 했다.


5000원.

빌려줘도 괜찮을 액수다.

행여나  아이가 갚지 않아도 

기분 상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를 앞에 두고,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택시비로 사용할 돈을 빌려주자니 

아닌 것 같고, 혹시라도

그 돈을 엉뚱한 곳에 사용할까 봐 

걱정도 됐다.

한편으로는

오죽하면 나한테까지 와서

돈을 빌려달라고 할까 싶어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고민 끝에, 나는.


"**아, 택시비를 하겠다고

돈을 빌려주는 건 아닌 것 같아.

돈이 필요한 다른 이유가 있니?  

이유가 합당하면,

선생님이 5000원 그냥 줄 수 있어.

하지만 내가 너에게 돈을 준 사실과

네가 돈을 빌려간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

라고 말했다.


앞에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던 아이는.

"그럼 됐어요."

하더니 교무실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아이가 나가고, 마음이 찜찜했다.




그리고 며칠 후,

아침 조회 시간.

그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교무실에 와서 전화를 하려던 찰나.

모르는 번호가 핸드폰 액정에 뜬다.

전화를 받으니,


"선생님이세요?

여기 ** 중학교 앞인데요.

아이가 택시를 타고 왔는데,

택시비가 없다네요.

선생님이 교문 앞으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진다.

급하게 지갑을 챙겨 내려갔다.

택시기사분께 자초지종을 듣고,

택시비 7500원을 지불했다.


아이와 함께 교무실에 올라와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 언니

(친언니인데 성인이라 독립한 상황이었다.)

집에서 자고 왔다고,

지각할까 봐 택시를 탔고, 돈은 없다고....


아이의 말을 일단 믿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부터

언니네 집에서 등교할 때는

일찍 일어나서 버스를 타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의 택시 탑승 등교는

그 후로도 몇 번 반복됐고,

돈을 지불해야 하는 건 몫이 되었.


아이와의 상담에 한계를 느껴,

부모님과 상담을 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타지로 일을 가셔서

전화통화가 어려웠고,

어머니는 안 계셨다.

결국 언니와 통화가 어렵게 연결됐고,

갓 20살이 넘은 언니도

자신의 삶에 많이 지쳐 있는 듯  

나만 심각했지, 언니는 무덤덤했다.


이런 경우 학생을 지도할 때,

참 어렵다.


어느 몫까지 내가 감당해야 하는지,

보호자와 연락은 닿지 않는데

아이는 엉뚱한 행동을 할 때,

담임교사는

어느 선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아이는 11월경

언니가 있는 곳으로 전출을 갔고

택시비를 지불해야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가끔 지나가는 택시를 볼 때면

그 아이가 생각난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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