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사이에도 돈거래는
안 하는 게 진리라던데,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학생과 선생의 관계.
금전거래를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이다.
동아리 활동 날인데 깜박하고
돈을 준비하지 못해 빌려준 적은 있어도,
대놓고 돈을 빌려달라는 요구는 처음이다.
당황스러움에 내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음, 그래 얼마나?"였다.
지금 생각하니 참 바보 같은 말이다.
돈이 왜 필요한지를 먼저 물었어야 했다.
얼마나 필요하다고 묻다니....
그 아이가 빌려달라고 한 돈은
5000원이었다.
필요한 이유는 택시비였다.
일주일 후에 아빠한테
용돈을 받으면 갚겠다고 말했다.
5000원.
빌려줘도 괜찮을 액수다.
행여나 아이가 갚지 않아도
기분 상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를 앞에 두고,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택시비로 사용할 돈을 빌려주자니
아닌 것 같고, 혹시라도
그 돈을 엉뚱한 곳에 사용할까 봐
걱정도 됐다.
한편으로는
오죽하면 나한테까지 와서
돈을 빌려달라고 할까 싶어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고민 끝에, 나는.
"**아, 택시비를 하겠다고
돈을 빌려주는 건 아닌 것 같아.
돈이 필요한 다른 이유가 있니?
이유가 합당하면,
선생님이 5000원 그냥 줄 수 있어.
하지만 내가 너에게 돈을 준 사실과
네가 돈을 빌려간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
라고 말했다.
앞에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던 아이는.
"그럼 됐어요."
하더니 교무실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아이가 나가고, 마음이 찜찜했다.
그리고 며칠 후,
아침 조회 시간.
그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교무실에 와서 전화를 하려던 찰나.
모르는 번호가 핸드폰 액정에 뜬다.
전화를 받으니,
"선생님이세요?
여기 ** 중학교 앞인데요.
아이가 택시를 타고 왔는데,
택시비가 없다네요.
선생님이 교문 앞으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진다.
급하게 지갑을 챙겨 내려갔다.
택시기사분께 자초지종을 듣고,
택시비 7500원을 지불했다.
아이와 함께 교무실에 올라와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 언니
(친언니인데 성인이라 독립한 상황이었다.)
집에서 자고 왔다고,
지각할까 봐 택시를 탔고, 돈은 없다고....
아이의 말을 일단 믿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부터
언니네 집에서 등교할 때는
일찍 일어나서 버스를 타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의 택시 탑승 등교는
그 후로도 몇 번 반복됐고,
돈을 지불해야 하는 건 내 몫이 되었다.
아이와의 상담에 한계를 느껴,
부모님과 상담을 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타지로 일을 가셔서
전화통화가 어려웠고,
어머니는 안 계셨다.
결국 언니와 통화가 어렵게 연결됐고,
갓 20살이 넘은 언니도
자신의 삶에 많이 지쳐 있는 듯
나만 심각했지, 언니는 무덤덤했다.
이런 경우 학생을 지도할 때,
참 어렵다.
어느 몫까지 내가 감당해야 하는지,
보호자와 연락은 닿지 않는데
아이는 엉뚱한 행동을 할 때,
담임교사는
어느 선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아이는 11월경
언니가 있는 곳으로 전출을 갔고
택시비를 지불해야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가끔 지나가는 택시를 볼 때면
그 아이가 생각난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