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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주 Aug 28. 2021

자유 : 사령, 푸른 하늘을

- 김수영의 다원주의(13)

자유 : 사령, 푸른 하늘을  


한겨레신문의 [거대한 100년 김수영] ⑭ 자유 <딛고 설 곳 없는 자유라니, 이 얼마나 순진한 잠꼬대인가>에서 진은영 교수 김수영 시인 “詩(시)는 나의 닻(錨)이다.”라 말에 주목하면서, 시인이 “정치적인 금기어까지 시 안으로 끌어들인 채 언론 자유를 갈구했다.”라고 적절하게 설명한다.


은영 교수는 김수영이 왜 시가 돛이 아니라 닻라고 했는지 묻는다. 그리고 그가 “무한 자유에 대한 열망”을 경계하면서, “거주”를 조건으로 하는 자유를 생각한 듯하다고 답한다.


리고 김수영 시의 진정한 미덕이 “창작의 자유를 언론의 자유와 연결시킴으로써, 문학의 자유를 공동체에서의 거주의 자유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라고 설명한다. 김수영은 개인적인 문학의 자유가 아니라 공동체와 역사에 닻을 내린 사회적인 자유를 주장했다는 것이다.


“문학적 자유는 자기가 속한 공동체 안에 닻을 내릴 수 있을 때에만 온전한 것이다. 자유는 정착을 경계하지만 난파가 아니다. 물 위에 거주하려면 정박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을 위해 그는 역사 속에 시의 거대한 닻을 내리려 했다.”         


김수영이 무한 자유에 대한 열망을 경계하면서 자유의 사회적 조건을 중시했다는 진 교수의 분석은 당하다. 진 교수의 말대로 “김일성 만세”를 외치는 불온사상도 허용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를 김수영이 창작 자유의 출발이라고 믿었던 것도 분명하다.


“불온사상을 인정하는 순간 창작의 영역을 포함한 모든 언론의 자유가 사라진다고 믿는 이들에 맞서, 그는 그것을 인정할 때에만 진정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단언한다.”


진 교수 “시민이 누려야 할 언론의 자유와 시인이 누려야 할 창작의 자유를 둘 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을 김수영의 큰 미덕으로 제시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진 교수 인용한 것처럼 김수영은 언론의 자유가 창작의 자유의 전제 조건임을 누구보다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역설했다.


“무엇이 달라져야 할 것인가? 언론자유다. 1에도 언론자유요, 2에도 언론자유요, 3에도 언론자유다. 창작의 자유는 백 퍼센트의 언론 자유가 없이는 도저히 되지 않는다.”(‘창작 자유의 조건’) “자유가 없는 곳에 무슨 시가 있는가!”(‘자유의 회복’)


하지 김수영이 “닻을 끌어올려 육중한 존재의 무게를 벗어버린 채 가볍게 출발하는” 시인의 자유를 “순진한 잠꼬대”로 간주하면서 경계하고 거리를 두었다는 진 교수의 분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김수영은 사회적인 시민의 자유보다 오히려 개인적인 시인의 자유에 방점을 찍으면서, 양극 사이에서 긴장과 균형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은영 교수는 사월혁명 직전의 시인 「사령(死靈)」(1959) 두고 “시혜적인 조건부의 자유 아래 자유롭다고 말하는 자는 노예, 죽은 영혼에 불과하다.”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쓰려던 사상을 금지당한다면, 시를 통해 말한 것이 공적 공간에서 의미 있는 발화로 인정될 수 없다면, 그것은 그에게 형편 좋은 수용소 안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고 덧붙인다.


진 교수는 이 시 시인의 자유가 닻을 내릴 수 있도록 시민의 자유를 요구하는 로 이해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시에서 김수영은 ‘시민’의 자유보다 ‘시인’의 자유를 더 강조하고 있다.


그는 “활자(活字)”가 하늘 아래에서 “자유”를 말하는 상황에서도 행동하지 못하는 자신을 향해 영혼이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던진다.


여기서 활자는 당시 이승만 자유당 정부에 의해 1959년 4월 30일에 강제로 폐간 당했던 경향신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가 자신의 영혼이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 것은 언론의 자유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이를 지키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반성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가 반성하는 지점은 시민의 자유가 아니라 시인의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는데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그대의 정의”와 “우리들의 섬세”라는 말로 벗과 자신의 차이를 제시한다. 벗은 시민으로서 언론의 자유를 위한 사회정치적 행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는 벗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고개 숙이고” 듣기만 한다.     


그는 시민으로서 직접적인 사회적 행동을 주장하는 벗의 입장에서는 “황혼”, “잡초”, “푸른 페인트빛”, “고요함” 등의 아름답고 자연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자신의 정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라고 되풀이한다.


하지만 그는 시민으로서 정의로운 사회적 행동이 아니라, 시인으로서 섬세한 시적인 행동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물론 그도 “욕된 교외”, 즉 국가보안법 개악과 경향신문 폐간 등으로 인해 자유가 사라진 당시의 독재 현실에서는 시민의 자유를 요구하는 정의로운 행동이든 시인의 자유를 실천하는 섬세한 행동이든 모두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는 벗이 주장하는 사회정치적 행동뿐만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시적인 행동도 죽음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마지막 연에서 자신의 영혼이 죽어 있는게 아니냐고 다시 묻는 것은 벗처럼 시민으로서 사회적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으로서 용기 있게 시적 실천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반성으로 이해된다. 이제는 자신도 시인으로서 섬세한 시적 행동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은영 교수는  「푸른 하늘을」(1960)에서도 김수영이  「사령」과 마찬가지로 자유의 사회적 조건을 조한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진 교혁명 “고독한 것”이고, “고독해야 하는 것”이라 김수영이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고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 시의 핵심이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혁명과 시인으로서의 개인적 고독 사이의 긴장에 있는데도 말이다.  


여기서 그는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의 “자유”를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을 비판한다. 그리고 “자유를 위해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 즉 자유를 위한 실천에 나섰던 사람만이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지를 안다고 말한다. 노고지리가 푸른 하늘을 제압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자유를 추구하면서 비상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그가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다고 말하는 것도 당시 사월 혁명에서 피흘리며 쓰러져 간 사람들을 연상시키면서, 자유는 목숨을 건 사회정치적 투쟁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는 자유를 위해서 비상해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혁명이 왜 고독한 것인지, 혁명이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지를 안다고 말한다.


혁명이 시민으로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자유를 위한 행동이라면, 고독은 시인으로서 개인적이고 시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혁명’과 ‘고독’은 등가 관계가 아니라 갈등과 대립 관계이다.


그렇다면 그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혁명의 순간에 개인적이고 문학적인 고독을 요청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혁명에 섞여 있는 피의 냄새, 즉 사회정치적인 혁명이 불가피하게 다른 인간의 죽음을 초래하는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는 개인적이고 시적인 고독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사회정치적인 자유를 위한 혁명에 섞여 있기 마련인 피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개인적이고 시적인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말이다.           


그는 6월 17일자 일기에서 “혁명은 상대적 완전을, 그러나 시는 절대적 완전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쓰고 있다. 그리고 “혁명을 방조 혹은 동조하는 시”는 “상대적 완전을 수행하는 혁명을 절대적 완전에까지 승화시키는 혹은 승화시켜 보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로 보아 시인은 상대적 완전을 수행하는데 그치는 정치혁명을 절대적 완전을 추구하는 문학혁명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온몸으로 자유를 이행했던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수영 시의 진정한 미덕은 “문학의 자유를 공동체에서의 거주의 자유로 만든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거주의 자유를 문학이 추구하는 절대적인 자유로 승화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혁명 이전의 「사령」에서 시민으로서의 정의로운 정치적 행동보다는 시인으로서의 섬세한 시적 실천을 우선시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월혁명이 일어나서 정치혁명의 시대가 열린 상황에서도 시민으로서의 사회적인 정치혁명보다는 시인으로서의 고독한 문학혁명을 중시했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사회적인 시민 자유와 개인적인 시인 자유를 모두 중시했던 자유의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가 외쳤던 자유가 사회정치적 자유만을 뜻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김수영은 정치혁명을 수행했던 ‘혁명가’가 아니라, 문학혁명을 꿈꾸었던 ‘혁명적 시인’이다.



사령(1959)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아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아라

이 황혼도 저 돌벽 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도

행동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아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푸른 하늘을(1960)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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