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의 [거대한 100년, 김수영] ⑮ 혁명 <한국사회의 후진성을 한 번에 넘고 싶었던 혁명시인>에서 김명인 교수는 대표적인 참여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김수영을 참여시인이나 저항시인이 아니라 혁명시인이라고 규정한다.
김명인 교수는 참여나 저항을 “기성의 어떤 것에 대응한 행동이라는 점에서 아무리 격렬하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수동적인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김수영은 “마야콥스키나 브레히트, 유진오나 김남주, 송경동 같은 이들처럼 정치사회적 투쟁에 온몸을 던져 자기를 희생한 투사형의 시인”은 아니라고 본다.
앞서 「사령」(1959)을 분석하는 글에서 밝혔듯이 김수영은 정의로운 정치사회적 행동 대신에 섬세한 시적 행동을 우선시했던 말 그대로 시인이었다.
김 교수의 말처럼 그의 참여와 저항은 “직접적 실천의 형태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이를 글쓰기 속에서 세계에 대한 정신적 태도나 관점의 문제로 승화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시를 통한 김수영의 정치사회적 투쟁이 “4·19 이후 1년 동안에 쓴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를 비롯한 대여섯 편”을 넘지 않는다는 김 교수의 설명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사월혁명 이후에도 그는 당시 정치사회적 문제들을 상징적으로 하는 비판하는 시적 투쟁을 지속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당대 한국과 세계의 정치사회적 문제들에 매우 민감했을 뿐만 아니라, 시를 무기로 삼아 적극적·실천적으로 개입한 참여시인이었다.
반면에 김 교수는 “당대 한국 사회의 비참한 후진성을 한꺼번에 넘어서고 싶었던 혁명적 충동”을 가지고, 4·19 혁명을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문학은 물론이고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어떤 총체적 변혁의 시작”으로 간주했던 것이 동시대의 다른 모든 시인들과 구별되는 김수영의 “특별한 징표”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시가 그 어떤 기성의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창조적인 일이라고 할 때 그것은 곧 혁명과 등가를 이루는 것”이며, 김수영에게 시를 쓰는 일은 혁명적 실천과 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김수영이 다른 시인들과 구별되는 가장 특별한 징표는 시를 혁명과 동일시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혁명을 초월적인 시의 경지로 승화시키려고 애썼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가 참여시인이냐 혁명시인이냐의 문제보다는 그가 혁명시인이냐 순수시인이냐는 질문이 의미가 있다. 김수영은 사월혁명 이후 정치혁명에 적극 개입했던 혁명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혁명을 초월적인 시의 경지로 승화시키려 했던 순수시인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명인 교수는 1960년 4·19 혁명 직후의 시 「푸른 하늘을」에 제시된 ‘혁명은 고독한 것이자 고독해야 하는 것’이라는 명제를 “혁명은 답습도 보완도 개량도 아닌 그야말로 기존의 것을 완전히 뒤집어엎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떠한 인용도 참조도 불가능한 고독한 작업이고 그래야 마땅하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앞서 다른 글에서도 말했듯이 이 시에서 혁명과 고독은 서로 등가 관계가 아니라 긴장 관계이다. ‘혁명’이 시민으로서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투쟁이라면, ‘고독’은 시인으로서 개인적이고 시적인 실천을 상징한다.
자유를 위한 혁명에 섞여 있는 “피의 냄새”, 즉 사회적인 혁명이 불가피하게 다른 인간의 죽음을 초래하는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인으로서 인간의 생명과 가치를 추구하는 고독한 시적 실천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는 말이다.
김수영은 당시의 일기에서 사회적인 시민의 자유를 위한 정치혁명은 상대적 완전을 수행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면서, 개인적인 “위대한 고독”으로 수행하는 문학혁명을 통해 이를 절대적 완전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를 혁명과 동일시한 것이 아니라 혁명을 시의 경지로 승화시키려고 애썼던 시인이다.김수영은 정치혁명을 수행했던 ‘혁명가’가 아니라, 문학혁명을 꿈꾸었던 ‘혁명적 시인’이다.
김수영의 혁명에 대한 사유는 「육법전서와 혁명」(1960)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제시된다. 여기서 그는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 / 혁명을 하는 자는 바보”라고 규정하면서 “혁명이란 /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과거 자유당이 제정한 “구육법전서”가 백성들에게 “천국”을 가져다 줄 수 없기 때문에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혁명정부가 “합법적으로 불법”을 해야 된다고 덧붙인다. 혁명을 완수하려면 자유당이 제정한 ‘구육법전서’가 아니라 “대자연의 법칙”(「기도」)에 근거해야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당시의 정치 상황과 관련지어 보면, 사월혁명 이후 허정 과도정부와 민주당이 자유당 의원들과 타협하여 개헌안을 통과시키는 상황을 비판하면서 국회 해산과 총선거 이후 개헌을 주장하던 국민적 요구를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혁명정부가 자유당과 타협해서 구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혁명 이후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던 “불쌍한 백성들”만 배를 곯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과거에 배불리 먹던 “그 놈들”, 즉 자유당이 아직도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권력자들의 부유한 생활을 상징하는 “금값”이 오르고 있는 반면에 백성들의 생활을 상징하는 “달걀값”이 여전히 낮다고 한탄한다.
그래서 “새까맣게 손때 묻은” 과거의 육법전서를 “표준”으로 삼고 합법적인 혁명을 주장하는 당시의 학생, 학자, 문인, 언론 등을 향해서 차라리 혁명이란 말을 걷어치우라고 비난한다.
그는 “창자가 더 메마른” 백성들을 더 이상 속이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혁명의 육법전서는 혁명”밖에는 없다고 단언한다. 혁명은 과거의 육법전서가 아니라 인간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진정한 ‘혁명’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혁명이라는 단자가 “학생들의 선언문하고 / 신문하고 / 열에 뜬 시인들이 속이 허해서 / 쓰는 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도 사월혁명이 백성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혁명, 인간 모두가 여유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완전한 혁명으로 승화되어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는 이후의 산문 「들어라 양키들아」(1961)에서도 “혁명의 근본 요청이 빈곤의 해방”이기 때문에 “자주경제 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경제혁명”이 중요한데 사월 혁명이 이에 실패했다고 직접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한편, 김명인 교수는 「사랑의 변주곡」에서도 김수영이 시와 혁명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현실적인 욕망과 초월적인 사랑 사이의 긴장과 균형이 주로 나타나 있다.
그래서 「푸른 하늘을」에서 제시했던 혁명과 고독 사이의 긴장을 통한 ‘혁명의 절도’가 여기서는 사랑과 욕망 사이의 긴장을 통한 ‘사랑의 절도’로 변주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에서 그는 첫머리에서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라고 선언한다. 이것은 현실적인 욕망을 긍정하면서 그 속에서 인간의 자연적 본성인 사랑을 추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그가 “도시의 끝”에서는 사그러져 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삼월을 바라보는 마른 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는 “쪽빛 산”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도시 너머에 자연이 있는 것처럼 현실적인 욕망 속에 내재하는 자연적인 인간 본성인 사랑을 발견하겠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여기서 “사랑하는 암흑”이 현실적인 낮의 시간과 대립되는 초월적인 밤의 시간을 상징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욕망의 입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는 말은 현실적인 시간인 낮에는 도시의 욕망을 추구하더라도, 초월적인 시간인 밤에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인 사랑을 추구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낮과 밤, 도시와 자연, 욕망과 사랑 사이에서 긴장과 균형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쪽빛 산이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초월의 시간인 밤에는 욕망을 추구하느라 겪었던 낮의 슬픔이 산처럼 커지므로 돼지우리의 밥찌끼처럼 먹고사는 문제에만 골몰했던 서울이라는 도시를 무시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래서 그는 “이제”, 즉 초월의 시간인 밤에는 “가시밭, 넝쿨장미의 기나긴 가시 가지까지도 사랑이다”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라고 감탄하면서 초월적인 밤의 시간에 숲처럼 밀려닥치는 사랑을 만끽한다.
그는 “사랑의 음식은 사랑”이라고 하면서,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는 열렬하다고 말한다.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면, 욕망의 음식은 욕망이다. 이렇게 사랑과 욕망은 각각의 음식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절도가 있어야 한다.
즉, 낮에는 욕망의 음식을 구하기 위해서 현실적인 욕망을 열렬히 추구하면서, 밤에는 사랑의 음식을 구하기 위해 초월적인 사랑을 열렬히 추구하는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는 절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는 “간단(間斷)도 사랑”이라고 하면서, “암흑” 속을 “사랑이 이어져 가는 밤”을 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눈을 떴다 감는 기술”이라고 덧붙인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사랑의 기술은 간단의 기술, 즉 눈을 떴다가 감았다가 하면서 사랑의 절도를 지키는 기술이다. 현실의 시간인 낮에는 사랑을 잠시 그치고 눈을 떠서 욕망을 추구하고, 초월의 시간인 밤에는 눈을 감고 다시 사랑을 이어나가는 절도 있는 태도가 바로 사랑을 만드는 기술이라는 말이다.
첫머리에서 그가 욕망의 입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고 선언했던 것도 현실적인 욕망과 초월적인 사랑을 모두 긍정하면서 그 사이에서 긴장과 균형을 추구하는 절도를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는 이러한 사랑의 기술을 “불란서 혁명”과 “4·19” 혁명에서 배웠다고 덧붙인다. 이것은「푸른 하늘을」에서 제시했던 혁명과 고독 사이의 절도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월혁명 당시에도 현실의 시간인 낮에는 눈을 뜨고 사회적 혁명을 사랑하다가 초월의 시간인 밤에는 눈을 감고 시적인 고독을 사랑하면서 사랑의 절도를 실천했었다는 말이다.
다만 사월혁명 당시에는 소리 내어 외쳤다면 지금은 생활 속에서 사랑의 절도를 조용히 실천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그는 사랑과 욕망, 혁명과 고독을 모두 긍정하면서 그 사이에서 절도 있게 긴장과 균형을 추구하는 다원주의적인 방법을 사랑의 기술이라고 명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 놓은 폭풍의 간악한 신념”을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에 비유해서 예찬한다. 여기서 ‘간악(侃諤)’이라는 말은 성격이 곧아 거리낌 없이 바른말을 하다는 뜻이다.
마치 달콤한 과육 속에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가 들어 있는 것처럼 현실적 욕망의 도시 속에도 초월적인 고요함과 사랑이 만들어 놓은 곧고 아름다운 신념이 단단하게 들어 있다는 말이다.
그는 자신이 들어가서 묻혀 사는 초월적인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현실적인 욕망의 도시인 “봄베이”, “뉴욕”, “서울” 개미에 불과하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자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현실적인 욕망의 도시에 속에 내재해 있는 초월적인 사랑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그는 아들에게 “광신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라고 당부한다. 이것은 초월적인 사랑만을 추구하는 광신적인 태도를 버리고, 초월적인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는 현실적인 욕망에도 충실해야 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지금은 현실적인 욕망을 부정하면서 초월적인 사랑만 추구하는 광신에 빠지지 말고, 현실적인 욕망을 긍정하면서 그 욕망의 입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절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는 미래 언젠가 “인류의 종언”의 날이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 “미대륙에서 석유가 고갈되는 날”에는 “도시의 피로”에서 이 “단단한 고요함”인 사랑을 배울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라고 외치면서, 문명이 고도로 발달된 미래에는 인류의 종언을 막기 위해 사랑을 추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는 이러한 날을 상상하는 것이 “아버지 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명상”이 아닐 것이라고 하면서 시를 마무리한다.
지금 문명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아버지의 시대에는 욕망 대신에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그릇된 명상일지도 모르지만, 미래 문명이 고도로 발전하게 될 아들의 시대에는 인류의 종언을 막기 위해 사랑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지금은 문명과 정신, 욕망과 사랑 사이에서 절도 있게 긴장과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는 사월혁명에 적극 개입했던 혁명시인이었다. 그런데 그는 상대적인 혁명을 절대적인 시의 경지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했던 순수 시인이기도 했다. 김수영은 문명과 자연, 사랑과 욕망, 브레히트와 릴케 사이에서 긴장과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했던 다원주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