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영의 다원주의(15)
김수영은 지식인으로서는 위대하게 적과의 도덕적이고 지적인 싸움을 벌이면서도 시인으로서는 비루한 일상을 끝까지 미워하지 못하고 찌질하게 부여잡고 있었던 시인이라는 평가이다.
“세상을 ‘적과의 싸움’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 그 관점이 하도 집요해서 자신의 일상과 이웃에서 적을 발견하는 이, 하지만 그 적을 끝까지 미워할 수 없는 이, 그런데 그 관점이라는 것이 결국엔 생활이 아닌 서양 물이 든 책과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자기 나라의 ‘거대한 뿌리’를 남의 나라의 ‘종이 나부랭이’로 사유하며 (자기)연민과 (자기)환멸에 젖는 이, 그가 김수영이다. 장담컨대 그런 종류의 “위대하게 찌질한” 시인은 다시는 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