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의 양상과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김수영은 산문 「생활 현실과 시」(1964)에서 ‘긴장’이라는 개념을 직접적으로 제시했다. 여기서 그는 “새로운 자유”를 행사하는 진정한 시는 어디엔가 “힘”이 맺혀 있다고 하면서, 이것이 “시의 긴장”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3판:358) 그리고 “언어의 서술”과 “언어의 작용”은 시의 본질에서 볼 때 당연히 동일한 비중을 차지해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대립하는 양극을 종합하기 위해 “전자의 경향의 시인에게 후자의 경향을 강매하거나 후자의 경향의 시인에게 전자의 경향을 강매하는 일”(3판:352)보다는 양극의 차이를 긍정하면서, “제각기 가진 경향” 속에서 “양심”이 살아 있는 시를 창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후 1966년의 「눈」 시작 노트에서는 자신이 앨런 테이트의 “Tennyson(긴장)의 시론”(3판:555)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테이트의 긴장론은 “언어의 기능을 외연과 내포로 나누고 시의 언어로는 내포의 언어만이 적합하다는 종래의 리처즈의 주장을 이론적으로 반박한 것”으로서 시에서 “자의(字義)대로의 기술인 외연과 비유적 의의인 내포가 공존하면서 긴장하는 결합체”를 중시하는 시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시여 침을 뱉어라」(1967)에서는 하이데거의 “세계와 대지의 긴장” 개념을 인용하면서,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내용이 반, 형식이 반이라는 식으로 도식화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시의 본질은 “개진과 은폐의, 세계와 대지의 양극의 긴장 위에 서 있는 것”이므로 “예술성의 편에서는 하나의 시 작품은 자기의 전부이고, 산문의 편, 즉 현실성의 편에서도 하나의 작품은 자기의 전부”(3판:499)라고 강조했다.
하이데거는「예술작품의 근원」(1935)에서 “예술이란 작품-속으로의-진리의 정립으로서 시 짓기”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예술의 본질을 존재자의 존재를 드러내는 “진리의 수립”이라고 하면서, 예술작품에 존재가 드러나는 것을 “세계와 대지”의 투쟁으로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세계(Welt)”는 “탄생과 죽음, 불행과 축복, 승리와 굴욕, 흥망과 성쇠”라는 인간 존재의 숙명적 연관들이 편재하는 넓은 터전이고, “세계의 건립”이란 도구적 용도성에서 벗어나 존재자(사물)들이 존재를 드러낼 수 있도록 순수하게 연관된 세계인 “열린 장”을 세우는 것이다. 결국 세계와 대지의 긴장은 예술작품이 근대 기술문명의 도구적 용도성에서 벗어난 “순수 연관”의 세계를 건립함으로써 대지(Erde) 속에 은폐되어 있는 사물(존재자)의 본질(존재)을 드러내는 과정을 의미한다.
"어떤 하나의 건축작품, 예를 들어 그리스의 신전은 아무것도 모사하고 있지 않다. […] 신전으로서의 작품이 비로소 자기 주변에 행로와 연관들을 모아들여 이어주는 동시에 통일한다. 이러한 행로와 연관들 속에서 탄생과 죽음, 불행과 축복, 승리와 굴욕, 흥망과 성쇠가 인간 존재에게는 숙명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 열려진 연관들이 편재하는 넓은 터전이 이러한 역사적 민족의 세계이다. 이러한 세계로부터 그리고 이러한 세계 속에서만 비로서 이 민족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간다. […] 대지란, 피어오르는 모든 것들의 피어남이 그러한 것으로서 ‘되돌아가 간직되는’ 그런 터전이다. 피어오르는 것 속에서 대지는 간직하는 것으로서 현성한다. 신전이라는 작품은 거기에 서서 세계를 열어 놓는 동시에 되돌아가 그 세계를 대지 위에 세운다. 이렇게 해서 대지 자체는 비로소 고향과도 같은 아늑한 터전으로서 솟아나온다."
김수영이 제시한 내용과 형식 사이의 긴장은 “자유”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개시성과 폐쇄성의 긴장을 통해 드러나는 “진리”에 강조점이 있는 하이데거의 세계와 대지의 긴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김유중도 김수영의 자유와 혼란에 대한 강조가 하이데거 존재론의 기본 관점과 상치된다고 보았다. 하이데거는 근대라는 궁핍한 시대에 처한 모든 존재자들의 존재론적 위험과, 이러한 위험성에 대해 일찌감치 예감한 시인의 “예언자적 고독 및 그것의 극복을 위한 모험” 문제를 심각하게 거론하기는 했어도, 이런 모험을 혼란에로 연결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세계-대지론은 시 작품 내에서 진리를 드러내는 것인데, 김수영의 내용-형식론은 시와 시론(산문)을 대립시키고 있다는 점도 차이가 있다. 곽명숙은 하이데거의 “세계와 대지”나 이를 치환한 엘리어트의 “의미와 음악”은 그가 말한 “내용과 형식” 사이의 긴장처럼 “한 편의 시 텍스트나 한 시인의 창작과정과 관련해서 설명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가 “산문은 자신의 의식적이고 명석한 사고나 사유를 대변하는 것”인데 비해 “시의 예술성은 무의식적이라는 구도”를 그리게 됨으로써 지시하는 층위가 달라지는 것을 모호한 채로 남겨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김수영이 제시한 긴장론은 하이데거가 말한 세계와 대지의 긴장과 마찬가지로 “상대방을 인정하는 한에서만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킬 수 있는 상보적인 관계”로서 “끊임없는 대립과 긴장 관계”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김수영은 「반시론」(1968)에서 “대극의 긴장”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싸움, 더 큰 싸움, 더, 더, 더, 큰 싸움……”을 통해 끊임없이 긴장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무한한 순환”, “원주의 확대”를 제시했다. 그는 대립적인 양극 가운데 어느 한 극점에 머무는 이분법이나, 양극을 고차원적으로 종합하는 변증법이 아니라, 각각의 독자성을 긍정하면서 양극 사이에서 끊임없이 긴장을 추구했던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그의 시 작품에 주로 나타나 있는 긴장의 양상을 살펴봄으로써 그가 세계시민주의 논의의 하나인 개별적 민족과 보편적 세계 사이의 긴장을 사회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개별적 가족과 보편적 인간 사이의 긴장을 개인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기했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세계시민주의 논의는 과거 칸트의 고전적 세계시민주의처럼 개별성보다 보편성을 우선시하는 보편적 세계시민주의와 현대 울리히 벡, 마사 누스바움, 샹탈 무페, 콰메 앤터니 애피아처럼 개별성과 보편성을 모두 긍정하고 양극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보편적 세계시민주의를 대표하는 칸트는 “공화적 정부와 계몽된 시민이야말로 지속적 평화를 위한 두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영구 평화를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통일된 의지의 집합적 통합을 의욕하는 것”이 요구되며, 이것이 이루어짐으로써 “시민 사회” 전체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각 개인이 자유의 원리에 따라 합법적인 체제 아래에서 생활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해서, 영원한 평화의 실현이라는 목표가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곤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이런 상황을 의욕하는 것이 요구되며, 이것이 이루어짐으로써 시민 사회 전체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의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다양한 의지를 총괄할 수 있는 통합적 원인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 의지의 형성은 집단 속의 개개인이 단독적으로 할 수 있는 성격의 일이 아니다."
칸트는 “각 개인이 자유의 원리에 따라 합법적인 체제 아래에서 생활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해서, 영원한 평화의 실현이라는 목표가 달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게 할 수 있도록 행동하라.”라는 말로 대표되는 보편적 세계시민주의를 제시했다.
"실천 이성의 문제에서 우리가 이성의 실질적 원리에서 즉 목적에서 출발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순수 이성의 형식적 원리, 말하자면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게 할 수 있도록 행동하라”고 하는 원리에서 출발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의심할 여지 없이 후자의 원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후자의 원리는 법의 원리로서 무제약적 필연성을 지니고 있지만, 전자의 원리는 우리가 설정한 목적의 경험적 조건, 즉 그것의 실현을 전제로 할 경우에만 강제성을 띨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따라서 이 목적(이를테면 영원한 평화와 같은 것)이 의무적인 것이라면, 이러한 목적은 외적인 행동에 관한 준칙의 형식적 원리에서부터 도출되어야만 한다."
이와 달리 현대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를 대표하는 울리히 벡은 세계시민주의의 핵심이 “타자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신자유주의적 지구촌주의, 보편주의 또는 다문화주의”처럼 타자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서구 중심적 보편주의에 반대하면서, 세계시민주의는 “좌우를 막론하고 종족 중심주의와 민족주의에 처방하는 해독제”일 뿐만 아니라, “서구의 종족 중심적 보편주의 역시 극복할 수 있는 시대착오일 뿐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책에서는 세계시민주의의 핵심이란 타자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 즉 타자란 다르며 또한 동등하다고 긍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인종주의와 보편주의 두 입장이 똑같이 거부되었다. 세계시민주의란 시간에 구속되지 않는, 그래서 미래에도 타당할 것 같은 인종주의에 미래를 담보로 싸움을 거는 것이다. 그러나 또 상대주의라는 그물코에 걸리지 않도록 서구의 종족 중심적 보편주의 역시 극복할 수 있는 시대착오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세계시민주의는 좌우를 막론한 종족중심주의와 민족주의에 처방하는 해독제이다. 종족중심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으로 뭉친 추악한 세계공동체를 면밀하게 연구해 들여다봄으로써 이미 세계시민적 상식을 향한 현실주의의 첫 걸음을 뗄 수 있다."
마사 누스바움도 세계시민주의란 “세계 공동의 시민권이 존재한다는 뜻”이라고 하면서, 칸트의 보편적 세계시민주의를 “모든 인간은 평등한 존엄성과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출생이나 국적 같은 우연이 공동의 책임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상”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일찍이 디오게네스가 출신지가 어디냐는 질문에 “세계의 시민”이라는 뜻의 코스모폴리테스(kosmopolitês)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사람들을 서로 구분하는 출신지, 지위, 계급, 성별 등의 특징보다는 공통된 인간성에 초점을 맞추는 정치, 혹은 그런 정치에 대한 도덕적 접근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이것이 모든 이성적 존재를 단결시키는 가상의 도덕적 공동체로서 칸트가 제시한 “인륜의 왕국”으로 이어지는 첫걸음이라고 설명했다.
"디오게네스는 출신지가 어디냐는 질문을 받고 자기는 -‘세계의 시민’이라는 뜻의- '코스모폴리테스'라고 한마디를 던졌다. […] 그는 남자와 여자, 그리스인과 비(非)그리스인, 노예와 자유민을 포함한 모든 이와 공유하는 특징으로 고집스럽게 자신을 정의한다. 동시에 그는 자신을 단순한 세계의 거주자가 아니라 세계의 시민이라고 지칭함으로써 사람들을 서로 구분하는 출신지, 지위, 계급, 성별 등의 특징보다는 공통된 인간성에 초점을 맞추는 정치, 혹은 그런 정치에 대한 도덕적 접근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큰 반향을 일으킨 칸트의 ‘인륜의 왕국(kingdom of ends)’, 즉 모든 이성적 존재를 단결시키겠다는 야심찬 가상의 도덕적 정치공동체로 향하는 첫걸음이자 모든 인간이 관습이나 계급이 아닌 자유로운 도덕적 선택에 따라 만들어진 법률로 연결되는 세계시민주의적 정치에 대한 칸트의 비전으로 가는 첫발이기도 하다."
누스바움은 인간이 “언어와 이성을 통해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 “깊은 의미에서 상호의존적이고 상호작용하는 존재들이라는 사실” 덕분에 “세계적인 도덕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과거 보편적 세계시민주의자들이 인간과 상호작용을 할 때는 그들을 착취하거나 단순한 도구로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아주 일반적인 이념을 통해 현대에서도 “인간 존엄성과 평등의 연관성, 또 인간 존엄성과 인간을 그 자체의 목적으로 대하는 정책의 연관성”에 관한 깊은 통찰을 남겨주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우주적 도시”에서 “동료 시민을 존중한다는 건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교설에 따라 삶을 살아갈 선택을 존중한다는 뜻”이라고 하면서, “다원주의적 사회의 모든 시민이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입증될 원칙”으로 “역량 접근”(Capabilites Approach)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강남순도 코즈모폴리터니즘은 “국적과 문화가 달라도, 종교나 신념이 달라도, 젠더나 인종이 달라도, 성적 지향이나 육체적·정신적 능력이 달라도 ‘인간’이라는 공통성을 가지고 이 세계에 속한 ‘동료 시민’으로서의 동질성을 인식함으로써 친구·이웃의 범주를 확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누스바움은 과거 보편적 세계시민주의의 전통은 “정의의 의무”에만 초점을 맞추고 “물질적 원조의 의무”라는 동일하게 중요한 의무는 간과하는 방식으로 물질적 불평등에 충분한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고, “단일한 세계정부”보다는 “협력하는 공화주의적 민족국가로 이루어진 세계”를 선호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도 점진적인 의견만을 개진할 뿐이며, 공동의 세계시민권이라는 이념과 정치적 원칙을 제약하는 “종교적 다원주의”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세계시민주의의 전통은 ‘정의의 의무’에만 초점을 맞추고 물질적 원조의 의무라는 동일하게 중요한 의무는 간과하는 방식으로 물질적 불평등에는 충분한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세계시민주의 전통은 국제사회가 취해야 할 제도적 형태에 대해서 거의 논의하지 않으며, 단일한 세계정부보다 협력하는 공화주의적 민족국가로 이루어진 세계를 선호해야 할 이유에 관해서도 점진적인 의견만을 개진할 뿐이다. 세계시민주의 전통은 이민이나 시민권의 조건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한 모든 종교에 회의적이기 때문에, 공동의 세계시민권이라는 이념과 정치적 원칙의 형태를 여러 방면에서 조형하고 제약하는 종교적 다원주의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다. 인도주의적 합리주의의 한 가지 형태로서, 세계시민주의 전통은 인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을 보이지 않으며 이들을 포용하지 못한다."
특히 누스바움은 과거의 보편적 세계시민주의가 “지역적·가족적 애착” 같은 “국지적 사랑”조차도 단념시키려 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국지적 사랑이 세계시민주의처럼 “보편적 정의”를 추구하는 일과 “긴장 관계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사랑을 벗겨낸 정의에 대한 추구는 창백하며, 인간을 지탱해 줄 수 없기” 때문에 “감수할 만한 위험”이라고 주장했다. 민족주의나 가족주의 같은 국지적 사랑이 “종족 중심적이거나 순전히 탐욕에만 토대를 두고 있지 않다면”, 세계시민주의나 인간주의처럼 “품위와 존중을 실행하기 위한 균형 잡힌 행위”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스바움은 사람들에게 가족이나 민족 등에 대한 “배타적 사랑을 함양하는 정치”를 만들어냄으로써 “스토아주의자들이 거부했던 힘과 애착, 기쁨의 원천”을 다시 들여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토아주의자들은 현실의 인간이 세계적 정의에 관심을 두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 키케로는 인간 존엄성의 존중이라는 기본적 원칙에 대한 관심이, 내재적인 가치도 가지고 있는 다양하고 특수한 애착-특히 가족, 친구, 자신이 속한 공화정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자양분과 깊이를 얻는다는 점을 보이며 더 나은 모형을 제시한다. 키케로가 우정에 대한 것을 비롯한 여러 글에서 자주 지적했듯이 그런 애착이 정의를 추구하는 일과 긴장관계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이는 감수할 만한 위험으로 보인다. 사랑을 벗겨낸 정의에 대한 추구는 창백하며, 인간을 지탱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반시론」(1968)에서 긴장의 양상으로 “귀납과 연역, 내포와 외연, 비호(庇護)와 무비호, 유심론과 유물론, 과거와 미래, 남과 북, 시와 반시의 대극의 긴장”(3판:516)을 다양하게 제시했다. 여기서 유심론과 유물론는 보편적 인간 정신과 개별적 가족 생활의 긴장을, 과거와 미래는 과거 개별적 민족 전통과 미래를 위한 보편적 세계 문명 사이의 긴장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무한한 순환”, “더 큰 싸움, 더 큰 싸움, 더, 더, 더, 큰 싸움……”은 민족과 세계, 가족과 인간 사이에서 끊임없이 긴장과 균형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김수영의 시 작품에서 나타나는 세계시민주의의 양상은 크게 사회적 차원에서 민족과 세계의 긴장과 개인적 차원에서 가족과 인간의 긴장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시작 초기인 1940년대 해방 직후의 시에서는 개별적 민족과 보편적 세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이 사회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서 나타난다. 그는 한편으로 해방 직후 서양 세력에 의한 민족 분단의 위기 상황에서 민족의 통일과 완전한 독립을 위해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보편적 세계 문명도 함께 추구했다.
울리히 벡은 현대 세계시민주의의 핵심 문제로서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 사이의 긴장을 제시했다. 특히 유럽에서 “세계시민화”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국민국가들이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시민화를 민족주의적으로 뒤집고자 애쓰는 “재민족화를 위한 공조”라는 역설이 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일국적 관점과 세계시민적 관점의 관계”는 상호 배제적인 “이거 아니면 저거”가 아니라, 상호 공존적인 “이도 저도 다”의 원칙에 의거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시민주의와 일국적 관점은 서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고 갈등하며 겹쳐지거나 연결”된다는 것이다.
"일국적 관점과 세계시민적 관점의 관계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을 구별할 수 있다. 요약하면 ‘이거 아니면 저거’ 또는 ‘이도 저도 다’라는 두 입장이다. ‘이거 아니면 저거’의 각본을 따르면, 일국적 관점과 세계시민적 관점에서 보는 제도와 정당은 상호 배제적이다. 또 일국적 관점의 논리를 세계시민적 관점의 논리가 대체한다. […] 세계시민적 시대는 오히려 ‘이도저도 다’의 원칙에 의거해서 생각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정치적 사고와 행위에서 두 겹이 서로 나란히 존재하고 서로 흡수하며 서로 연결하고 서로 주변으로 밀어낸다. 일국적인 것과 초국적인 것, 기성과 대안, 폐쇄적인 것과 개방적인 것들이 말이다. 따라서 세계시민적 관점은 일국적 관점을 대체하지 않고, 두 개의 논리가 공존하고 갈등하며 겹쳐지거나 연결된다. 아니면 두 논리가 각각 따로 분리된 공간과 세상에서 활동한다."
울리히 벡은 “지구적 긴장 관계 속에서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라는 상반되는 두 자기장으로부터 새로운 모순들과 정책적 정치합성”이 생성될 수 있는 개연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모순으로 가득 찬 문화적 조류들이 비좁은 공간에서 서로 마주치며 결합”된다고 하면서, “뿌리와 날개를 함께 갖기” 즉, 민족주의적 “뿌리”와 세계시민주의적 “날개”를 ‘함께 갖기”가 “세계문화에서 이질적인 사회들을 묶는 공통분모”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세계시민계급으로 사는 보석 같은 경험에 밀착된 지방주의”를 제시했다. 이것은 김수영이 1961년의 「시작 노트」에서 당시 한국문학의 과제로 제시한 “멋진 세계의 촌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모순으로 가득 찬 문화적 조류들이 비좁은 공간에서 서로 마주치며-종종 여러 갈등을 안고-결합된다. 이중언어 사용, 즉 친숙한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능력, 또 여러 장소에 걸친 존재, 지속적 이동성, 점점 더 많아지는 이중국적자들, 국경을 초월한 삶 등이 쪼개진 충성심들을 엮어서 그물을 만든다. 본래 가지고 있던 정체성이 포기되지는 않는다. 뿌리와 날개를 함께 갖기, 즉 실제로는 세계시민계급으로 사는 보석 같은 경험에 밀착된 지방주의, 이것이 세계문화에서 이질적인 사회들을 묶는 문명의 공통분모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사 누스바움도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세계시민의 역량”이라는 보편성과 이를 위한 해당 국가의 구체적 실행이라는 특수성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세계시민주의의 핵심 문제로 제기했다. 그리고 국제사회에는 “국가적 문화의 다원성”이 담겨 있기 때문에 국가의 “정치적 자율성”과 “자결권”을 보장하는 “정치적 자유주의”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세계시민의 인간 역량을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은 개별 국가가 선택할 문제이므로 “최소한의 합법성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는 주권 국가의 정치에 대한 온정주의적 간섭”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국가는 “원조와 도움을 집중시킬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인간의 자율성과 그들에 대해 국가가 지고 있는 법적 책임성을 실현할 수단”으로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국가들은 정치적 자율권과 자결권을 유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나는 유럽과 북미에서 정치적 자유주의가 매력적인 선택이 되는 이유가 다른 모든 국가에도 동일하게 정치적 자유주의를 권장한다고 주장해왔다. 오늘날 세계의 모든 국가는 미국처럼 거대한 단일 서구 국가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종합 목록과 기본적으로 숫자가 같은, 심지어 아예 같은 목록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 국제사회에 접근할 때에도 같은 사실들이 적용된다. 아니 오히려 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국제사회에는 수많은 종교적‧세속적인 종합적 교설에 더해 국가적 문화의 다원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 우리의 국제사회 구상에서 국가가 수행하는 중심적 역할을 생각해 보면 이런 절제는 더욱 중요하다. 국가들은 정치적 자율권과 자결권을 유지해야 한다."
샹탈 무페도 “전 지구적 인류 공동체”에 우선적으로 충성해야 한다고 보는 칸트의 보편적 세계시민주의를 비판하면서, “모든 국가가 복종의 계약 속에서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동의함으로써 창출된 민주주의적인 국제적 리바이어던”도 결국 전 지구적 패권국의 형상을 띨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모든 차이를 넘어선 공통의 소속을 강조하면서 특정한 공동체에 대한 개별적 애착”을 약화시키는 보편주의적 관점은 “서구적 근대성의 헤게모니”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페는 세계를 “보편적 단일체”가 아니라 “다원체”로 보는 “경합적 다원주의 접근법”을 제시했다. 세계 질서는 “중심적 권위를 가지지 않은 채 서로 다른 경제적·정치적 모델에 따라 조직화된 복수의 지역 축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경합적”이므로 정치적으로 통일된 세계에 대한 “망상 같은 희망”을 버리고, 다극적 세계의 수립을 옹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대 차원에서 정치적인 것을 고려하려면 세계가 보편적 단일체가 아니라 다원체라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일어난다. 즉, 우리가 범세계주의 이론가들과는 반대로, 모든 질서는 헤게모니적 질서이며 ‘헤게모니를 넘어선’ 질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또한 초강대국의 헤게모니를 중심으로 조직화된 일극적 세계의 부정적인 결과들을 인정한다면, 과연 그 대안은 무엇인가? 나의 제안은, 헤게모니를 복수화하는 데 유일한 해결책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통일된 세계에 대한 망상 같은 희망을 버리고, 다극적 세계의 수립을 옹호해야 한다. 그와 같은 세계 질서는 중심적 권위를 가지지 않은 채 서로 다른 경제적‧정치적 모델에 따라 조직화된 복수의 지역 축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경합적’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무페는 복수의 헤게모니 블록 간의 “경합적 대결”은 “문명의 충돌”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충돌을 피할 수 있는 “다극적 세계”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전 지구적 수준에서는 공유된 윤리적-정치적 원칙들의 다양한 해석에 근거해서 “갈등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적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복수의 헤게모니 블록”이라는 다극적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옹호하고 있는 경합적 접근법이 제공하는 다원주의적 관점은 변별성이 갈등의 원인일 수 있음을 인식하지만, 그 갈등이 반드시 ‘문명의 충돌’을 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이 다원주의적 관점은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다극적인 제도적 틀의 설립을 제안한다. 그 갈등이 적들 사이의 적대적 투쟁 형태를 취하는 대신, 대결자들 사이의 경합적 대결로 나타날 수 있는 조건들을 창출하게 될 그런 제도적 틀을 말이다. […] 이 경합적 마주침은 그 과정에서 상대의 소멸이나 동화를 목표로 삼지 않으며, 상이한 접근법들 간의 긴장이 다극적 세계의 특징인 다원주의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는 대결이다."
콰메 앤터니 애피아도 다원주의를 세계시민주의의 신조로 제시하면서, “지역적 헌신을 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를 강조하였다. 지역 정체성을 통한 민족적 유대 관계는 인간성을 통한 세계시민적 유대 관계와 함께 우리가 가지는 가장 현실적인 유대 관계에 속하기 때문에, 모든 외국인들을 저버리는 민족주의자나, 자신의 친구나 동료 시민을 냉담하고 공평무사하게 대우하는 극단적인 세계시민주의자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명백한 세계시민주의의 신조로 ‘다원주의(pluralism)’를 들 수 있다. 세계시민주의자들은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많은 가치들이 있지만 그 가치들 모두를 따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과 사회가 다양한 가치들을 구현하기를 희망하고 기대한다. […] 반세계시민주의자들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올바른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며, 사소한 부분에서만 차이를 인정한다. 만일 우리의 관심이 세계적 동질성에 있다면 이런 유토피아야말로 바로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세계다."
김수영은 여러 산문에서 개별적 민족과 보편적 세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사회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서 제기했다. 한편으로 그는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는 민족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특히 「신비주의와 민족주의의 시인 예이츠」(1964)에서 “예이츠가 전개한 자기 나라의 민화를 소재로 한 극운동은 민족 문화를 융성시키는 데는 다시 없는 촉진제였던 것”(3판:298)이라며 민족주의를 대단히 긍정했다. 하지만 보편적 세계 문명을 배격하는 편협한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그는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1966)에서 당시 “참여파의 신진들”의 사회참여 의식이 “너무나 투박한 민족주의”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미국의 세력에 대한 욕이라든가, 권력자에 대한 욕이라든가, 일제시대에 꿈꾸던 것과 같은 단순한 민족적 자립의 비전”만으로는 오늘의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는 독자의 감성에 영향을 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3판:464) 그는 민족주의를 긍정하면서도 편협하게 민족주의에 갇히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보편적 세계 문명을 추구하는 세계시민주의자로서의 면모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는 산문 「들어라 양키들아」(1961)에서 “혁명의 근본 요청이 빈곤의 해방”이라고 하면서, “진정한 혁명세력이란 이와 같은 ‘처지’ 내지는 이러한 ‘처지’의 창조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4월’은 원통하게도 이것을 포착하지 못하였다.”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농지 개혁, 공장 건설, 교역 촉진, 산업 진흥 등의 경제 혁명”을 당면 과제로 제시했다.(3판:251-252)
이후 「마리서사」(1966)에서도 자신이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가난의 구원”을 제시하면서, “길가에서 매일같이 만나는 신문 파는 불쌍한 아이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자책감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3판:177)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도시 생활자”, “아이들”, “식모”, “창녀” 등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물질문명의 발전을 지속적으로 추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김수영은 산문「생활현실과 시」(1964)에서 당시 장일우 평론가가 제시했던 관점을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보면서 이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장일우가 제시하는 “소셜리스틱 리얼리즘”은 일본의 시처럼 “프로이트적인 요소”를 상당히 도입한 “모던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마야코프스키 같은 것”이라서 어느 정도 “선구적인 것”인지 선명하지가 않다는 것이다.(3판:350-351) 그리고 “난해시”를 비판하는 장일우의 입장에 대해 “언어의 서술”만을 중시하면 “실패한 프롤레타리아 시”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언어의 작용”도 “동일한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3판:352)
이것은 파스칼 카자노바가 “민족적 또는 대중적 해석은 문학에서 모든 종류의 자율성을 배제하고 문학 저작물을 정치적 기능주의에 예속”시킨다고 하면서, “구소련에서 권장한 프롤레타리아 소설”이나 “신현실주의 미학 및/또는 “민족어”나 “통속어” 또는 “노동자”나 “농민” 언어의 사용에 대한 민족의 격려는 “정치가 감독하는 문학 공간에서 작가가 감내하는 문학적 타율성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비판했던 것과 유사하다. 김수영은 민중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처럼 과도하게 계급성만 강조하면 “실패한 프롤레타리아 시”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계한 것이다.
이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1966)에서도 당시 “참여파”의 신진들의 시가 상대로 하고 있는 “민중” 개념이 위태롭기 짝이 없다고 하면서, “세계의 일환으로서의 한국인”이 아니라, “우물 속에 빠진 한국인”, “시대착오의 한국인”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3판:464) 카자노바는 “헤르더 이래로 민족, 언어, 문학, 그리고 민중은 동등하고 서로 대체될 수 있는 용어”로 여겨졌지만, 공산주의 대두 이후 “민족으로서의 민중이라는 관념에서 계급으로서의 민중이라는 관념”으로 변화되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김수영은 민족이나 계급으로서의 민중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취하면서, “세계의 일환으로서의 한국인”이자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민중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그는 민족의 통일과 완전한 독립을 위한 개별적 민족 전통과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한 보편적 세계 문명 사이에서 다원적 긴장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사월혁명 당시의 「독자의 불신임」(1960)에서 “혁명이란 이념에 있는 것이요, 민족이나 인류의 이념을 앞장서서 지향하는 것이 문학인”(3판:238)이라고 하면서 민족과 인류를 모두 긍정했다. 이후「대중의 시와 국민가요」(1964)에서도 “남북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와 함께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현대 공업화”라는 세계적 과제를 제시했다.(3판:367) 이후 「반시론」(1968)에서도 남북통일을 참여시의 “종점”이 아니라 “시발점”이라고 하면서, “편협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지구를 고발하는 우주인의 시”, “미래의 과학시대의 율리시즈”를 종점으로 제시했다.(3판:515) 시발점인 개별적 민족 전통과 종점인 보편적 세계 문명 사이에서 끊임없이 긴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김수영이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개별적 민족과 보편적 세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사회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기했다는 사실을 해당 시 작품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밝혀보고자 한다. 이로써 그가 한편으로 해방 직후 서양 세력에 의한 민족 분단의 위기 상황에서 민족의 통일과 완전한 독립을 위해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보편적 세계 문명도 함께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를 지속적으로 추구했다는 사실이 입증될 것이다.
한편, 김수영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부터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개별적 가족과 보편적 인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개인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기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가장으로서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가족적 생활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자유와 사랑, 인류 복지와 세계평화 등 보편적 인간 정신도 함께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를 개인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시했던 것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세계시민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보장해야 할 최소한의 하한선으로 생명, 신체적 건강, 신체적 존엄성, 감각·상상·사고, 감정, 실용적 추론, 소속, 다른 종(동물/식물), 놀이, 자신의 (정치적/물질적) 환경에 대한 통제 총 10가지 ‘인간 역량’을 제시하였다.
김수영도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마사 누스바움의 세계시민주의와 마찬가지로 여러 산문에서 보편적 인간 정신을 매우 강조했다. 그는 1960년 9월 5일 일기에서 “인간적 이념의 무지”가 “과학적 무장(지성)의 결여와 동일한 의미”(3판:717-718) 갖는다며 “인간적 이념”을 강조했다. 그리고 「새로움의 모색-쉬페르비엘과 비어렉」(1961)에서 “현대시는 이제 그 ‘새로움의 모색’에 있어서 역사적인 경간(徑間)을 고려에 넣지 않으면 아니 될 필연적 단계”에 이르렀다고 하면서, “역사적 지주는 이제 개인의 신념이 아니라 인류의 신념을, 관조가 아니라 실천하는 단계”를 밟아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죽어가는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자기가 아니라, 죽어가는 자기-그 죽음의 실천-”에서 “현대의 순교”가 탄생한다고 강조했다.(3판:325-326) 현대시는 “개인의 신념”이 아니라 “인류의 신념”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새로운 포멀리스트들」(1967)에서는 “사회적 윤리나 인간적 윤리는 고사하고라도 언어의 윤리를 얼마 준엄하게 적극적으로 지키고 있는가를 우리나라의 포멀리스트들은 모르고 있는 것”(3판:654)이라며 “인간적 윤리”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인간적 이념”, “인류의 신념”, “인간적 윤리”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했던 것이다.
한편, 울리히 벡은 세계시민주의가 “일국적 원칙과 오만을 뛰어넘어 상호의존성과 호혜성을 새롭게 하려는 시도”인 동시에 “개인화를 전제, 강화, 긍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시민주의는 “서로 다른 삶, 일국적-영토적으로 분리된 삶의 기억들을” 누리는 개인화를 전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시민주의는 개인들의 차이를 “평균화”하지 않고, “타자를 근본적으로 재발견하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인들에게는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 다리를 놓고 그것들을 번역하는 것이 생존의 기술이다. 그렇게 하도록 강요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정체성들이 개인을 압도한다면 오히려 갈등만 쌓일 뿐이다. […] 세계시민주의는 따라서 모든 차이를 시간에 무관하게 평균화하거나 없애지 않는 것, 바로 그런 것이다. 정확히 그 반대로, 타자를 근본적으로 재발견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요컨대 결국 원칙적으로 상이한 다음의 다섯 개 수준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문화적 타자의 다름을 인정하기, 미래가 다름을 인정하기, 자연이 다름을 인정하기, 대상이 다름을 인정하기, 다른 합리성을 인정하기."
울리히 벡은 지구 수준의 “위험사회”에서는 “세계시민화”와 “개인화”가 핵심적인 문제로 제기된다고 주장했다. 기후 위기나 금융 위기, 감염병 위기, 테러 위기, 전쟁 위기 등 지구 수준의 위험이 세계시민화를 확대시키는 동시에 제도적 복지혜택이 감소하거나 직업의 안정성이 약화됨으로써 개인들이 홀로 위험을 해결해야 하는 개인화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위험은 개인화를 가져옵니다. 우선은 사람들이 기존의 제도적 틀에서 벗어납니다. 그러나 개인들은 전통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지금껏 자신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준 제도적 구조와 조건들에서도 벗어납니다. 이제는 그런 제도적 구조와 조건들이 위험을 개인에게 전가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구 수준의 위험으로 인해서, 그러나 제각각 다른 다양한 조건들에 처한 상태에서 위험이 점점 개인화됩니다. […] 개인화와 세계시민화는 이처럼 핵심적으로 연결됩니다. 이주의 예를 통해 그 관계를 가장 잘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주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들의 전통적 맥락과 민족적‧종교적 구조들로부터 벗어납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유로워짐으로써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다양한 문화적‧민족적 경계들을 넘나들며 이제는 말하자면 자신만의 생존을 꾸려야 합니다."
김수영도 여러 산문에서 “개인화”를 강조하는 울리히 벡의 세계시민주의와 마찬가지로 개별적 가족 생활을 매우 중시했다. 그는 「무제」(1955)에서 현실적 생활을 중시하는 것이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 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면서, “고독이나 절망이 용납되지 않는 생활이라도 그것이 오늘의 내가 처하고 있는 현실이라면 조용히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순수하고 남자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위도(緯度)에서 나는 나의 생활을 향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3판:86-87)라고 말했다.
이후 1968년의 「반시론」에서도 “항산(恒産)이 항심(恒心)이라고, 생활에 과히 불안을 느끼지 않으면 정신의 불필요한 소모가 없어진다.”라고 하면서, “약간의 사치를 하는 것도 싫지 않고, 남이 하는 사치도 자기의 사치보다 더 즐겁게 생각된다. 하늘은 둥글고 땅도 둥글고 사람도 둥글고 역사도 둥글고 돈도 둥글다. 그리고 시까지도 둥글다.”(3판:504)라고 말했다. 『맹자』의 「양혜왕」편에 일반 백성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정한 재산인 ‘항산(恒産)’이 없으면, 변하지 않는 일정한 마음인 ‘항심(恒心)’도 없다는 말이 나온다. 백성들이 일정한 수입이 있어야 생활의 안정을 얻을 수 있으며, 마음이 여유로워져 죄를 짓지 않고 양심을 지킬 수 있게 된다는 맹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먹고사는 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사 누스바움이 전통적 세계시민주의가 “정의의 의무에만 초점을 맞추고 “물질적 원조의 의무”라는 동일하게 중요한 의무는 간과하는 방식으로 “물질적 불평등”에 충분한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인간의 품위 있는 삶, 인간 존엄성에 어울리는 삶”은 그런 외적 재화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던 것으로도 연결된다.
"돈, 건강, 주거, 사회적 통합 등과 같은 다른 재화에 관해서는, 이에 대한 과도하고 우상화된 추종이 터무니없을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일이라는 마르쿠스의 의견에 동의해야 할 것이다. […] 하지만 어떤 외적 재화에 대해서는 그것이 가지는 도구로서의 가치에 신경쓰는 행위가 어느 수준까지는 옳은 일이라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품위 있는 삶, 인간 존엄성에 어울리는 삶은 그런 외적 재화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김수영은 가장으로서의 개별적 가족 생활과 세계시민으로서의 보편적 인간 정신을 모두 긍정하면서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긴장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여러 산문에서 개별적 가족과 보편적 인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직접 제시하기도 했다. 1960년의 일기에서는 “전체와 개인과의 사이에 이다바사미[사이에 끼여 꼼짝을 못한다]. 이것이 고작 ‘4월’ 이후에 틀려진 점(재산이라면 재산)이니…….”(3판:724)라며 한탄했다. 이것은 그동안 문제로 삼아 왔던 개인적 생활과 전체적 인간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사월혁명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후 1965년의「시작 노트」에서도 “요즈음 집에 들어앉아 있는 시간이 많고, 자연히 신변잡사에서 취재한 것이 많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그 반동으로 ‘우리’라는 말을 써보려고 했는데 하나도 성공한 것이 없는 것 같다.”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미역국」이나 「잔인의 초」 등에서 “진정한 우리”를 제시하려고 했었는데 해답을 찾지 못한 것 같다고 고백하기도 했다.(3판:541) 이것은 그가 개별적인 ‘나’와 보편적인 ‘우리’ 가운데 어느 하나가 아니라, 양극을 모두 긍정하면서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는 가장으로서 개별적인 “신변잡사”를 중시하는 개별적 가족 생활과 세계시민으로서 자유와 사랑, 인류 복지와 세계평화 등 ‘우리’를 중시하는 보편적 인간 정신 사이에서 끊임없이 긴장을 유지했던 것이다. 강신주가 김수영이 추구했던 것이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로서 “단독성이 실현되는 동시에 보편성도 확보되는 사회”라고 보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앞으로 김수영이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민족과 세계, 가족과 인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핵심 문제로 제기했다는 사실을 해당 시 작품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밝혀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그가 가족적 생활만을 추구하는 소시민 문학이 아니라, 민족적 전통과 세계적 문명, 가족적 생활과 인간적 정신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핵심 문제로 제기하는 다원적 세계문학을 추구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 이건주 문학박사/K-문학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