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

개별적 민족 전통 추구

by 이건주

김수영은 시작(詩作) 초기인 1940년대 시에서부터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개별적 민족과 보편적 세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사회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기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보편적 세계 문명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민족의 통일과 완전한 독립을 위해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려는 의지도 분명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먼저, 해방 직후의 「묘정(廟庭)의 노래」(1945)에서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나타난다. 화자는 해방과 함께 “바람”처럼 몰아닥친 서양 세력들이 민족주의를 상징하는 공간인 “남묘”의 “굳은 쇠 문고리”를 열고 들어와서 결국 남편을 잃은 “과부” 신세처럼 민족의 절반을 상실한 비극적 현실을 한탄한다.

南廟 문고리 굳은 쇠문고리

기어코 바람이 열고

열사흘 달빛은

이미 寡婦의 靑裳이어라

날아가던 朱雀星

깃들인 矢箭

붉은 柱礎에 꽂혀 있는

半절이 過하도다

아아 어인 일이냐

너 朱雀의 星火

서리 앉은 胡弓에

피어 사위도스럽구나

寒鴉가 와서

그날을 울더라

밤을 반이나 울더라

사람은 영영 잠귀를 잃었더라 ― 「廟庭의 노래」 1부

여기서 한아(寒鴉), 즉 까마귀가 달빛 아래에서 밤새 울고 있었다는 “그날”은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신탁통치가 결정된 1945년 12월 28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이 시가 1946년 3월 1일 《예술부락》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이나, 외세를 상징하는 “바람”, 민족 절반의 상실을 상징하는 “과부” 그리고 남방의 수호신인 “주작성”이 북쪽으로 날아가다가 화살을 맞고 “반(半)절”이 되었다는 말이 암시하는 민족의 분단 등으로 뒷받침된다. 당시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는 한국에 임시 민주정부를 세우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창설하며, 5년 기한의 신탁통치를 미국, 영국, 중국, 소련의 4대국에게 제안한다는 내용의 모스크바협정을 체결하였다. 그는 “그날”을 울었다고 반복하면서 신탁통치가 결정된 날이 사실상 민족 분단의 시작이라며 한탄한다.


「묘정의 노래」2부에서 화자는 민족 분단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통적 공간인 남묘에서 민족의 “얼”을 깨우려고 한다. 그는 “백화(百花)”와 “만화(萬華)”, 즉 자연적이고 아름다운 전통을 상징하는 꽃들의 “거동”이 민족의 “얼”을 흔들고, “향로”의 “향연”이 “관공”의 “색대”를 감돈다고 하면서, 강인한 민족정신으로 외세가 강요하는 민족 분단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애쓴다.

百花의 意匠

萬華의 거동이

지금 고요히 잠드는 얼을 흔드며

關公의 色帶로 감도는

香爐의 餘烟이 神秘한데

어드메에 담기려고

漆黑의 壁板 위로

香烟을 찍어

白蓮을 무늬놓는

이 밤 畵工의 소맷자락 무거이 적셔

오늘도 우는

아아 짐승이냐 사람이냐. ― 「廟庭의 노래」 2부(초판:13-14)

여기서 “관공(關公)”은 삼국지로 유명한 중국의 관우(關羽) 장군이고, “남묘”는 조선시대에 그를 무왕(武王)으로 모신 사당인 남관왕묘를 가리킨다. 조선에서는 임진왜란 때 파병된 명나라 장군들이 대일본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관우 장군이 도왔기 때문이라고 믿고 관왕묘를 건립하였다. 이후 정조는 무왕(武王)인 관왕묘를 문왕(文王)인 공자의 문묘에 버금가는 국가적 제례로 정착시켜서 문무겸치(文武兼治)를 달성하고자 했다.


김수영은 산문 「연극 하다가 시로 전향」(1965)에서 동대문 밖에 있는 동묘(東廟)가 “명절 때마다 참묘를 다닌 어린 시절의 성지”였다며, 거대한 관공(關公)의 입상(立像)이 어린 정신에 “이상한 외경과 공포”를 주었다고 회고했다.(3판:423) 이 시에서는 남과 북의 분단 상황을 암시하기 위해 동묘를 “남묘”로 바꾸고, 관공의 “거대한 입상”처럼 외세에게 외경과 공포를 자아낼 정도로 민족의 얼이 떨쳐 일어나기를 기원하고 있다.


시의 끝부분에서는 “향로의 여연(餘烟)”을 찍어 “백련”을 무늬 놓는 “화공”으로 시인인 자신의 위치를 설정한다. 그리고 “아아 짐승이냐 사람이냐”라는 탄식으로 시를 마무리하면서, 분단을 강요하는 외세에 맞서는 자신의 힘이 너무도 미약하다는 한탄과 함께 민족의 얼을 잃으면 짐승으로 전락한다는 경고를 남긴다. 여기의 울음은 그의 초기 시에서 주로 나타나는 “설움”과 마찬가지로 절망적인 한탄에 그치지 않고 부정적인 현실을 극복하는 내면적 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시인으로서 민족 분단을 강요하는 외세에 맞서기 위해 관공처럼 강인한 민족정신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김수영은 산문 「연극 하다가 시로 전향-나의 처녀작」(1965)에서 모더니스트 시인들의 묵살의 대상이었던 ≪예술부락≫에 실린 이 텍스트 때문에 당시에 박인환으로부터 낡았다는 수모를 받았으며, “무슨 불길한 곡성” 같은 것이 배음으로 흐르고 있는 “의미 없는 시”이므로 자신의 텍스트 목록에서 지워 버렸다고 고백했다.(3판:423) 하지만 이 시에 대한 그의 부정적 평가는 “대체로 시인들이 자신의 옛 작품을 낯부끄러워하는 것”이거나, 이후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다원주의적 입장에서 자신의 처녀작에 민족주의가 과도하게 노출되었다는 자기비판이지 민족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것은 그가 이후에도「더러운 향로」(1954),「거대한 뿌리」(1964) 등 민족주의적 시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던 사실로 뒷받침된다.


이후 「웃음」(1948)에서도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찾아볼 수 있다. 화자는 “웃음”이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면 얼마나 서러운 것일지 묻는다. 그리고 외세의 “기계주의적 판단”에 의해 민족이 분단되었기 때문에 “푸른 목”, “귀여운 눈동자”를 잊어버린 채 우리 민족이 시들어간다고 서러움을 토로하면서, 이제는 웃으면서 “마차”를 타고 북으로 가는 사람이 “그림”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어버린 분단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이것은 당시 단독정부 수립으로 인해 민족이 분단되었으니, 웃을 수 있는 통일의 상태를 우리 민족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외세에 의해 분단된 민족적 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이 주체적으로 “웃음=통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웃음은 自己自身이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은 얼마나 서러운 것일까

푸른 목

귀여운 눈동자

진정 나는 機械主義的 判斷을 잊고 시들어갑니다.

馬車를 타고가는 사람이 좋지 않어요

웃고 있어요

그것은 그림

토막방 안에서 나는 宇宙를 잡을듯이 날뛰고 있지요

고운 神이 이 자리에 있다면

나에게 무엇이라고 하겠나요

아마 잘있으라고 손을 휘두르고 가지요

문턱에서.

이보다 더 추운 날처럼 나는 여기서 겨울을 맞이하다가

오랜 時間이 經過된 후에도

이 웃음만은 痕迹을 남기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

時間에 달린 기이다란 時間을 보시오

내가 어리다고 恨歎하지 마시오

나는 내 가슴에

또하나의 終止符를 찍어야 합니다. - 「웃음」 전문(초판:19)

그는 단독정부 수립과 분단으로 인해 반 토막이 된 한반도를 상징하는 “토막방”에서 “우주”를 잡을 듯이 날뛰고 있지만, “고운 신”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손을 휘두르면서 가버렸다고 한탄한다. 여기서 “우주(cosmos)” “우주적 도시”나, “우주에 속한 세계시민”으로 표현되는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고운 신”은 세계시민주의의 바탕이 되는 사랑의 신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당시 김수영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백범 김구가「나의 소원」에서 “천지와 같이 넓고 자유로운 나라, 그러면서도 사랑의 덕과 법의 질서가 우주 자연의 법칙과 같이 준수되는 나라”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도 연결된다.


그가 “문턱”을 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민족 분단으로 인해 우주적이고 세계시민적인 사랑으로 나가는 문턱인 민족적 사랑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는 한탄으로 볼 수 있다. 이후에 그가 산문 「반시론」(1968)에서 남북통일을 “참여시의 종점이 아니라 시발점”(3판:515)이라고 했듯이 민족적 사랑은 세계시민적인 사랑으로 들어가는 문턱이라는 것이다.


그는 분단된 “토막방”에서 민족적 사랑이 사라진 추운 “겨울”을 지내다가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도 “웃음”의 흔적, 즉 통일에 대한 의지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지적한다. 분단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민족 통일의 의지는 자연히 사라질 수밖에 없으니 “웃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독정부가 이제 막 수립되어 어리다고 한탄하지 말고, “시간”에 달린 “기-다란 시간”을 보고, 가슴에 “또 하나의 종지부”를 찍으면서 새로 태어난다는 각오로 다시 통일을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계시민적 사랑을 위한 전제 조건인 민족적 사랑을 끝까지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더러운 향로」(1954)에서도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계속 나타난다. 화자는 “길”이 끝이 나기 전에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적진을 돌격하는 전사”, “나무에서 떨어진 새”와 같이 “적”, “벗”, “땅” 등 모든 것에서부터 자신을 감추겠다고 덧붙인다. 이것은 “나무에서 떨어진 새”와 같이 민족이 분단된 위기 상황에서 민족 통일로 가는 “길”이 끝나기 전에는 “그림자”로 상징되는 이기적 욕망을 버리고, “적진을 돌격하는 전사”처럼 서양의 물질문명에 맞서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겠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길이 끝이 나기 전에는

나의 그림자를 보이지 않으리

적진을 돌격하는 전사와 같이

나무에서 떨어진 새와 같이

적에게나 벗에게나 땅에게나

그리고 모든 것에서부터

나를 감추리

검은 철을 깎아 만든

고궁의 흰 지댓돌 위의

더러운 향로 앞으로 걸어가서

잃어버린 愛兒를 찾은 듯이

너의 거룩한 머리를 만지면서

우는 날이 오더라도

철망을 지나가는 비행기의

그림자보다는 훨씬 급하게

스쳐가는 나의 고독을

누가 무슨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잡을 수 있겠느냐 - 「더러운 香爐」 부분(초판:50)

그는 “고궁”에 있는 “더러운 향로” 앞으로 걸어가서 잃어버린 “애아(愛兒)”를 찾은 듯이 “우는 날”, 즉 분단으로 잃어버린 반쪽을 찾은 민족 통일의 날이 오더라도 “비행기”로 상징되는 물질문명 속에서 이기적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독”한 노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밝힌다. 그리고 “나”는 “너”와 같이 “자기의 그림자”를 마시고 있는 “향로”라고 하면서, 자신이 향로를 좋아하는 이유가 “긴 역사”였다고 생각한 것은 “과오”였다고 지적한다. 자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물질문명에 맞서 인간성을 회복하는 세계시민주의라는 것이다.


그는 향로와 같이 있을 때 향로도 살아 있고, 자신도 소생한다고 하면서, 이 길로 마냥 가면 어디인지 아느냐고 거듭 묻는다. 그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길이 “더러운 것”일수록 “더한층 아까운” 길이자, “더러운 것” 중에도 가장 더러운 썩은 것을 찾는 “더러운 길”이라고 되풀이한다.

이 길로 마냥 가면

이 길로 마냥 가면 어디인지 아는가

티끌도 아까운

더러운 것일수록 더한층 아까운

이 길로 마냥 가면 어디인지 아는가

더러운 것 중에도 가장 더러운

썩은 것을 찾으면서

비로소 마음 취하여 보는

이 더러운 길 - 「더러운 香爐」 부분(초판:51)

이것은 “이 길로 마냥 가면” 나오는 종점인 세계시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민족주의는 “더러운 향로”처럼 깨끗하지 못하고 더럽더라도 “더한층 아까운” 것으로 긍정해야 하는 시발점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런 해석은 그가 「반시론」에서 “우리 시단의 참여시의 후진성은, 이미 가슴속에서 통일된 남북의 통일선언을 소리높이 외치지 못하고 있는 데에 있다. 이것은 우리의 참여시의 종점이 아니라 시발점이다. 나는 천년 후의 우주탐험을 그린 미래의 과학소설의 서평 같은 것을 외국잡지에서 읽을 때처럼 불안할 때가 없다. 이런 때처럼 우리들의 문화적 쇄국주의가 저주스러울 때가 없다. 이런 미래의 꿈을 그린 산문이 시를 폐멸시키고 말 시대가 불원간 올는지도 모른다.”(3판:515)라고 말했던 것으로 뒷받침된다. 개별 민족의 역사와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것일지라도 종점인 세계시민주의로 가는 시발점으로서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는 이후 「거대한 뿌리」(1964)에서 “역사는 아무리/더러운 역사라도 좋다”라는 말로 이어진다.

한편, 김수영은 후기인 1960년대 시에서도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개별적 민족과 보편적 세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사회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기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보편적 세계 문명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민족의 통일과 완전한 독립을 위해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려는 의지도 지속적으로 드러냈던 것이다.


먼저, 「가다오 나가다오」(1960)에서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나타난다. 화자는 민족 분단을 강요하는 외세인 “미국인과 소련인” 모두에게 나가라고 반복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혁명”이 끝나고 시작되는 것이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는 “카운터” 같은 것이라고 하면서, “너희들”이 나가는 것은 날이 저물면 “석양”이 비치는 “적막”이 오는 자연적 원리나,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는 자본주의 교환 원리에도 맞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당시 사월혁명으로 인해 민족 통일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다시 도래했으니 분단을 강요하는 낯선 서양 세력이 나가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이유는 없다-

나가다오 너희들 다 나가다오

너희들 美國人과 蘇聯人은 하루바삐 나가다오

말갛게 행주질한 비어홀의 카운터에

돈을 거둬들인 카운터 위에

寂寞이 오듯이

革命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

革命이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은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는

夕陽에 비쳐 눈부신 카운터 같기도 한 것이니 - 「가다오 나가다오」 부분(초판:153)

그는 “글 모르는 백성”들의 마음에는 “미국인”과 “소련인”도 똑같은 놈들이라며, 서양의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이 우리 민족에게는 의미 없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4월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을 “강변 밭”에 계속해서 “씨”를 뿌리는 것에 비유하면서, 당시 사월혁명이 일회적인 정치혁명으로 그치지 않고, 민족 통일의 씨앗이 되어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이어서 그는 지나치게 “풍년”이 들어서 헐값으로 넘겨야 하는 상황을 제시하면서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폐단을 비판한다. 그리고 “너희들”이 “피지” 섬을 침략하듯이 우리나라에 서양 문명을 강제로 이식했기 때문에 이런 비극이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초콜릿, 커피, 페티코트” 등의 물질문명과 “군복, 수류탄, 따발총” 등 살인적인 전쟁무기들을 모두 가지고 “아주” 가라고 외친다. 그들은 민족 분단을 불러온 침략자일 뿐만 아니라 “생명을 파괴하는” 죽음의 문명을 퍼뜨린 인류의 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소련이 이 땅에서 나가는 것은 분단된 민족의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는 물론이고, 물질문명으로 인해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인간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선잠이 들어서

그가 모르는 동안에

조용히 가다오 나가다오

서푼어치 값도 안 되는 미·소인은

초콜릿, 커피, 페티코트, 軍服, 手榴彈

따발총……을 가지고

寂寞이 오듯이

寂寞이 오듯이

소리없이 가다오 나가다오

다녀오는 사람처럼 아주 가다오! - 「가다오 나가다오」 부분(초판:155)

이후 「거대한 뿌리」(1964)에서도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찾아볼 수 있다. 화자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고 하면서, 술자리에서도 “남쪽식”으로 앉았다가 “이북 친구”들과 만날 때는 “앉음새”를 고친다고 말한다. 그리고 “김병욱”이라는 시인이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强者)”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하였다고 소개한다. “앉는 법” 하나에도 이북식, 남쪽식, 일본식 등으로 전통과 역사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南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때는 이 둘은 반드시

以北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八·一五 후에 김병욱이란 詩人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四年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强者다 - 「巨大한 뿌리」 부분(초판:225)

그는 영국의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와 연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에 나오는 조선시대의 “극적인 서울” 풍경과 “기이한 관습”을 인용한다. 그리고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며, “시구문의 진창”이나 “개울”처럼 더럽고 “우울한 시대”마저 오히려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또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고 오히려 황송하다고 하면서,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렇게 그가 “더러운” 전통과 역사마저 찬양하는 이유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과 “사랑”이 “영원”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인간과 사랑의 영원성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버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숍 여사”로 대표되는 서구 중심적 세계시민주의를 반대하면서 아무리 더럽더라도 개별적 민족 전통과 역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고,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라고 비난하면서, “은밀”, “심오”, “학구”, “체면”, “인습”도 “치안국”으로 가라고 외친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부정하는 서양의 근대적 이념이나 통일 논의, 학문 등은 모두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파스칼 카자노바는 “구어의 문학화”, “외설 또는 조잡성의 언어적 특색을 원용하는 행위”는 “민족적 요구의 특수한 형태”로서 “문학적이고 언어적인 품위, 정치와 언어 그리고 문학에 대한 지배를 통해 강요된 불가분하게 문법적이고 의미론적이고 통사론적이고 사회적 교정의 기존 코드를 문제시하고 정치적이고 동시에 사회적이고 문학적인 격렬한 단절”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드러나듯이 김수영도 “구어의 문학화”, “외설 또는 조잡성의 언어적 특색을 원용하는 행위” 등을 통해 민족문학을 추구하고 실천했다고 볼 수 있다.

비숍女史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進步主義者와

社會主義者는 네에미 씹이다 統一도 中立도 개좆이다

隱密도 深奧도 學究도 體面도 因習도 治安局

으로 가라 東洋拓殖會社, 日本領事館, 大韓民國官吏,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種苗商,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無識쟁이,

이 모든 無數한 反動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第三人道橋의 물 속에 박은 鐵筋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怪奇映畵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想像)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 「巨大한 뿌리」 부분(초판:226)

그는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 관리” 등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부정하는 세력들을 비판하면서,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등 “무수한 반동”이 더 좋다고 말한다. 민족의 역사와 전통은 보편적 세계 문명에 역행하는 “반동”이지만, 인간과 사랑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므로 좋다는 말이다. 그리고 “제3인도교”의 “철근 기둥”으로 상징되는 보편적 세계 문명은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면서, 민족의 역사와 전통은 “맘모스” 같은 힘을 가졌기 때문에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거대한 뿌리”로 상징되는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그가 세계시민주의를 배제하는 편협한 민족주의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김병욱” 시인을 통해 “일본”을, “버드 비숍” 여사를 통해 “영국”이라는 세계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더러운 전통”이 좋아지고, “우울한 시대”가 “파라다이스”처럼 생각되고,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고 황송하다고 재인식하게 된 계기는 “일본”, “영국” 등 세계적 관점에서 대한민국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특히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 “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 즉 “비숍 여사”로 대표되는 세계적 관점에서 보게 되자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던 민족의 역사와 전통이 긍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비숍 여사”로 대표되는 서구 중심적 세계시민주의를 비판하면서, 「더러운 향로」(1954)와 마찬가지로 개별적 민족 전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족의 역사와 전통이 개별 국가적 차원에서는 더럽고 썩어빠진 것일지라도, 세계시민주의적 차원에서는 반드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김수영의 시에서는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전기의 「묘정의 노래」(1945), 「웃음 」(1948), 「더러운 향로」(1954)과 후기의 「가다오 나가다오」(1960), 「거대한 뿌리」(1964) 등 여러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민족의 통일과 완전한 독립을 위해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전기부터 후기까지 일관성 있게 제시했던 것이다.


- 이건주 문학박사/K-문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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