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

보편적 세계 문명 추구

by 이건주

김수영은 1940년대 시에서부터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개별적 민족과 보편적 세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사회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기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민족의 통일과 완전한 독립을 위해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보편적 세계 문명을 추구하려는 의지도 분명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먼저, 「공자의 생활난」(1945)에서 보편적 세계 문명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나타난다. 화자는 당시 현실을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어 있는 상황으로 파악한다. 여기서 “꽃”은 아름다운 전통적 정신을 상징하는 반면에, “열매”는 먹고사는 생활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물질문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어 있다는 말은 「이」(1947)에서의 “도립(倒立)”이라는 말처럼 꽃과 열매의 위치가 거꾸로 서 있는 전도된 상태를 의미한다. 해방 직후 당면한 생활난 해결을 위해서는 먹을 수 있는 “열매(물질문명)”가 무엇보다 중요한데도 과거의 아름다운 “꽃(정신)”이 여전히 그 위에서 군림하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꽃이 열매의 上部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作亂을 한다

나는 發散한 形象을 求하였으나

그것은 作戰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伊太利語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叛亂性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事物과 事物의 生理와

事物과 數量의 限度와

事物의 愚昧와 사물의 明晰性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 「孔子의 生活難」 전문(초판:15)

그는 꽃이 열매의 상부 피어 있는 상황에서도 줄넘기 장난 수준에 머물러 있는 동무를 비판한다. 여기서 “동무”는 아름다운 개별적 민족 전통만 추구하면서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보편적 세계 문명을 배척했던 편협한 민족주의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제목인 “공자의 생활난”처럼 해방 직후 “쌀값 폭등”으로 인해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과거의 “공자”만 찾으면서 현재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난”을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민족주의자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발산한 형상”도 제자리에서 뛰기만 하는 “줄넘기”와 달리 미래를 향해 나가는 문명의 발전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은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물질문명의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작전(作戰)”처럼 어렵다는 말은 당시 해방 직후 미군정 시대에 보편적 세계 문명을 추구하다 보면 자칫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민중의 생활난 해결을 위해 보편적 세계 문명을 수용하면서도 그들에 맞서 개별적 민족 전통을 지킬 수 있는 “작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곧바로 그가 서양의 “마카로니”보다는 전통적인 “국수”가 먹기 쉽다고 말하는 것은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는 “반란성”을 통해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반란성”은 낯선 외래 문명을 거부하게 마련인 민족의 자연적 “습성”(「아침의 유혹」)으로서의 “반란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중국의 손문은 민족을 형성하는 다섯 가지 힘으로 혈통, 생활, 언어, 종교, 풍속·습관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런 힘들이 “자연히 진화되어 생긴 것”이라며 민족의 자연성을 강조했다. 이 시에서 제시하는 “반란성”도 보편적 세계 문명에 대항할 수 있는 민족의 자연적 힘으로 볼 수 있다. 보편적 세계 문명을 수용해도 이에 대항할 수 있는 민족적 습성인 반란성이 있으므로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파스칼 카자노바 식으로 말하면, 보편적 세계문학을 추구하면서도 “종속에 맞서 투쟁하고 경쟁 관계를 확립”하기 위해 “특수하고 민족적인” “차이”를 창출하는 반란을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자신감을 근거로 마침내 그는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라고 당당히 선언한다. 이제부터는 “사물의 생리”, “사물과 수량의 한도”, “사물의 우매”, “사물의 명석성”, 즉 ‘사물’이 가리키는 세계적 물질문명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나는 죽을 것이다”라는 말로 시를 마무리하는 것도 실제로 죽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공자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은 것이다.(朝聞道夕死可矣,)”라는 말대로 이제는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보편적 세계 문명을 추구하는 것을 새로운 도(道)로 삼겠다는 “행복”한 선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그가 개별적 민족 전통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보편적 세계 문명만을 추구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가 “사물의 명석성(明晰性)”과 함께 “사물의 우매(愚昧)”를 제시하는 것은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적 물질문명을 수용하더라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우매”한 폐단도 함께 직시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이 열매의 상부에 있다고 해서 반대로 열매를 꽃의 상부에 놓는 것이 아니라, 양극의 가치를 모두 긍정하면서 다원적 균형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헤겔이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꽃과 열매의 “동등한 필연성”을 강조한 것으로 뒷받침된다. 헤겔은 “꽃이 피어나면 꽃봉오리는 사라지는데, 이를 두고 꽃봉오리가 꽃에 의해 반박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터이고, 마찬가지로 꽃이 식물의 거짓된 현존재임이 열매를 통해 밝혀지면서 꽃 대신 열매가 식물의 진리로 등장했다고 선언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형식들은 서로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서 서로를 배척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유기적 통일 속에서 그것들은 상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하나가 다른 하나 못지않게 필연적이며, 이런 동등한 필연성이 비로소 전체의 생명을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자의 생활난」은 민족의 분단에 맞서서 전통적인 관공의 얼을 추구하는 「묘정의 노래」와 달리,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서양의 물질문명을 추구하고 있다. 해방 이후 비슷한 시기에 창작된 두 작품에서 나타나는 이런 간극은 그가 시작(詩作) 초기부터 개별적 민족과 보편적 세계를 모두 긍정하면서 그 사이에서 다원적 긴장을 추구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이후 「네이팜 탄」(1954)에서도 보편적 세계 문명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찾아볼 수 있다. 화자는 “너”, 즉 미국의 대량 살상무기인 “네이팜탄”(Napalm bomb)을 “딛고” 일어서겠다고 하면서, “너”가 “먼 나라”의 일이 아니라 “나”의 가슴속에 “흐트러진 파편들”을 남겼다고 말한다. 네이팜 탄이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에서 사용되어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뼈아픈 “파편”들을 남겼던 대량 살상무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정하는 대신 “딛고” 일어서겠다는 것이다.

너를 딛고 일어서면

생각하는 것은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나의 가슴속에 흐트러진 파편들일 것이다

너의 表皮의 圓滑과 角度에 이기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나의 발을

나는 미워한다

방향은 애정-

구름은 벌써 나의 머리를 스쳐가고

설움과 과거는

오천만분지 일의 俯瞰圖보다도 더

조밀하고 망막하고 까마득하게 사라졌다

생각할 틈도 없이

애정은 절박하고

과거와 미래와 誤謬와 혈액들이 모두 바쁘다 - 「레이판 彈」 부분(초판:78)

그는 네이팜 탄의 “표피의 원활”과 “각도”에 이기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자신의 “발”을 미워한다고 하면서, 네이팜탄으로 대표되는 보편적 세계 문명을 쫓아가지 못하는 우리의 낙후된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물질문명을 상징하는 네이팜탄을 살상 무기라고 단순히 부정만 할 것이 아니라,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해 주는 “애정”의 도구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그도 네이팜탄으로 인해 “구름”, “설움”, “과거”가 가리키는 정신이 까마득하게 사라졌다고 한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해야 하는 “애정”이 “절박”하기 때문에 “과거”의 전통과 “미래”의 문명 그리고 문명의 “오류(誤謬)”와 민족을 상징하는 “혈액”이 모두 바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파괴와 폭력에 쓰이는 상징에 대한 문제의식은 결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문명의 폐단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를 부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근지러운 “나의 살”, 즉 먹어야 살 수 있는 육체를 위해 거대한 “파티” 같은 풍성하고 여유 있는 물질문명의 풍경을 상상한다. 하지만 투명하고 가볍고 쇳소리 나는 가벼운 “잔”이 없는 우리의 낙후된 현실과 문명의 방향을 “죽음”에서 “애정”으로 돌릴 수 있는 “지휘편(指揮鞭)”이 자신에게 없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래도 물질문명이 파괴적인 살상 무기로 활용되는 “정치의 작전”이 아니라,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해 주는 “애정의 부름”에 따라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조심”을 다하여 “너=네이팜탄”의 “내부”를 살펴보겠다고 밝힌다. 그리고 그 내부에는 인간적인 “이브의 심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물질적 “기계”만 있는 것도 아니고, 민족의 유구한 전통을 상징하는 “시간의 퇴적”이 “준엄한 태산”처럼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이것은 보편적 세계 문명도 개별적 민족 전통과 균형을 이루면서 추구한다면, “이브의 심장”처럼 “애정”의 방향으로 향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브의 심장이 아닌 너의 내부에는

「시간은 시간을 먹는 듯이 바쁘기만 하다」는

기계가 아닌 자옥한 안개 같은

준엄한 태산 같은

시간의 堆積뿐이 아닐 것이냐

죽음이 싫으면서

너를 딛고 일어서고

시간이 싫으면서

너를 타고 가야 한다

창조를 위하여

방향은 현대 - - 「레이판 彈」 부분(초판:79)

그는 “죽음”이 싫지만 “너(네이팜탄)”를 딛고 일어서고, 오랜 “시간”이 걸려서 싫지만 너를 타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새로운 “창조”를 위하여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은 “현대”의 물질문명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한다. 살상 무기로 악용될 수 있는 물질문명의 폐단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정하지 말고,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해 줄 수 있도록 애정과 창조의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헬리콥터」(1955)에서도 보편적 세계 문명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계속 나타난다. 화자는 “우매(愚昧)한 나라”의 “어린 시인들”이 “헬리콥터”가 “풍선”보다도 가볍게 상승하는 것을 보면서, “어두운 대지(大地)”를 차고 이륙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물질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가난한 나라의 “어린 시인”들은 “대지”로 상징되는 생활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헬리콥터로 대표되는 보편적 세계 문명을 수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보편적 세계 문명을 부정하고 개별적 민족 전통만 추구하는 기성 시인들과 달리 젊은 시인들은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보편적 세계 문명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란 사람이 모두 苦悶하고 있는

어두운 大地를 차고 離陸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은

愚昧한 나라의 어린 시인들이었다

헬리콥터가 風船보다도 가벼웁게 上昇하는 것을 보고

놀랄 수 있는 사람은 설움을 아는 사람이지만

또한 이것을 보고 놀라지 않는 것도 설움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自己의 말을 잊고

남의 말을 하여 왔으며

그것도 간신히 더듬는 목소리로밖에는 못해왔기 때문이다

설움이 설움을 먹었던 時節이 있었다

이러한 젊은 時節보다도 더 젊은 것이

헬리콥터의 永遠한 生理이다 - 「헬리콥터」 부분(초판:62)

그는 근대적 일상생활 속에서 먹고살기 위해 “자기의 말”을 잊고 “남의 말”을 하는 “설움”을 당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이 갇혀 있는 현실 생활을 “헬리콥터”가 가볍게 초월하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지만, 물질문명이 발달하면 생활난으로 인한 설움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설움이 설움을 먹었던 시절”, 즉 먹고살기 위해 설움을 감내했던 시절보다도 더 “젊은 것”이 헬리콥터로 상징되는 문명의 영원한 생리라고 강조한다. 물질문명은 가난한 생활로부터 자유롭게 비상할 수 있도록 해주므로 영원히 새롭고 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보편적 세계 문명을 전적으로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헬리콥터가 “1950년 7월”, 즉 한국전쟁 때에 파괴적인 전쟁 무기로 우리나라에 나타났다는 문제점도 함께 지적한다. 그리고 “린드버그”가 “대서양”을 횡단하면서 물질문명의 우수성을 증명했던 여객용 “제트기”나 화물용 “카고”와 달리 헬리콥터는 주로 사람을 죽이는 전쟁 무기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비판적인 “동양의 풍자”를 느낀다.


그가 헬리콥터를 “설운 동물”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대지를 차고 오르지만 다시 대지로 내려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니라, 물질문명이 “좁은 뜰”, “항아리 속”처럼 협소하게 전쟁 무기로 사용되면 인간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헬리콥터는 생활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를 가져다 주면서도 인간을 살상하는 “비애”를 초래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自由

―悲哀

더 넓은 展望이 必要 없는 이 無制限의 時間 우에서

山도 없고 바다도 없고 진흙도 없고 진창도 없고 未練도 없이

앙상한 肉體의 透明한 骨格과 細胞와 神經과 眼球까지

모조리 露出落下시켜가면서

안개처럼 가벼웁게 날아가는 果敢한 너의 意思 속에는

남을 보기 전에 네 자신을 먼저 보이는

矜持와 善意가 있다

너의 祖上들이 우리의 祖上과 함께

손을 잡고 超動物世界 속에서 營爲하던

自由의 精神의 아름다운 原型을

너는 또한 우리가 發見하고 規定하기 전에 가지고 있었으며

오늘에 네가 傳하는 自由의 마지막 破片에

스스로 謙遜의 沈默을 지켜가며 울고 있는 것이다 - 「헬리콥터」 부분(초판:63)

마지막 연에서는 더 넓은 전망이 필요 없는 “무제한의 시간”을 제시한다. 그리고 “산”, “바다”도 없는 생활의 한복판으로 들어가서 앙상한 “육체”의 투명한 골격과 세포와 신경과 안구까지 모조리 노출 낙하시켜 가면서 자유롭게 날아가는 헬리콥터에게서 “긍지와 선의”를 느낀다. 생활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미래를 선사해 주는 물질문명을 부정하지 말고 반대로 긍지와 선의를 느끼라는 것이다. 그가 헬리콥터에게서 “너의 조상들”이 “우리의 조상”과 함께 영위했던 “자유의 정신”의 “아름다운 원형”을 발견하는 것도 진정한 자유는 생활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물질문명으로 가능하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은 물질문명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잘 드러나듯이 김수영의 전기 시에서 ‘자유’는 일차적으로 경제적 생활의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1960년 사월혁명 직후의 시에서는 언론과 사상의 자유 등 사회정치적이고 자유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경제적 자유가 그의 시에서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가 “겸손의 침묵”을 지켜가며 울고 있다는 말로 시를 마무리하는 것은 물질문명이 “자유”를 선사하면서 “비애”를 초래하는 폐단도 함께 가지고 있으므로 겸손하게 절제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헬리콥터로 대표되는 물질문명을 인간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것으로 예찬하면서도 인간에게 비애를 가져다주지 않도록 겸손하게 절제해야 한다는 경고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한편, 김수영은 1960년대 시에서도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개별적 민족과 보편적 세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사회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기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민족의 통일과 완전한 독립을 위해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보편적 세계 문명을 추구하려는 의지도 분명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먼저, 「꽃」(1960)에서 보편적 세계 문명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나타난다. 화자는 “심연(深淵)”이 자신의 “붓끝”에서 퍼져가고, “세계의 노예”들을 “멀리” 바라본다고 하면서, “진개(塵芥)와 분뇨(糞尿)”를 “꽃”으로 “마구” 바꿀 수 있는 나날을 얘기한다. 이것은 그동안 “시대의 궁핍함으로 인해 빚어진 존재 자체의 위기의식”을 뜻하는 정신적 “심연(深淵)”만 추구하다 보니, “진개(塵芥)와 분뇨(糞尿)” 같이 더러운 생활에 구속되어 있는 “노예” 같은 인간들을 그저 “멀리” 바라보면서 “꽃”처럼 아름다움만 추구해 왔다는 자기비판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민중의 생활난 해결을 위해 필수적인 보편적 세계 문명을 외면하고 과도하게 전통적 정신만 추구해 왔다는 것이다.

深淵은 나의 붓끝에서 퍼져가고

나는 멀리 世界의 奴隸들을 바라본다

塵芥와 糞尿를 꽃으로 마구 바꿀 수 있는 나날

그러나 深淵보다도 더 무서운 自己喪失에 꽃을 피우는 것은 神이고

나는 오늘도 누구에게든 얽매여 살아야 한다

도야지우리에 새가 날고

국화꽃은 밤이면 더 한층 아름답게 이슬에 젖는데

올 겨울에도 산 위의 초라한 나무들을 뿌리만 간신히 남기고 살살이 갈라갈 동네아이들……

손도 안 씻고

쥐똥도 제멋대로 내버려두고

닭에는 발등을 물린 채

나의 宿題는 微笑이다

낮과 밤을 건너서 都會 저편에

영영 저물어 사라져버린 微笑이다 - 「꽃」 전문(초판:111)

그는 현실 생활을 부정하는 “자기 상실”에도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존재는 “신(神)”뿐이고, 자신을 비롯한 인간은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누구”에게든 “얽매여”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헤겔은 신이 “자기 상실과 타자화, 그리고 타자로서의 자기 자신의 지양이라는 격렬하고 고통스러운 변증법적 운동”을 거치면서야 비로소 거룩한 정신이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이 바로 신의 인간화와 신을 향한 인간의 고양을 통해 신과 인간, 무한자와 유한자, 이념과 현실, 무상(無常)과 영원이 서로 화해하고 합일되는 신비의 정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육체를 가진 인간은 신과 달리 물질적 생활을 부정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는 더러운 현실 공간인 “돼지우리” 위에도 자연적 정신을 상징하는 “새”가 날고, “국화꽃”도 “밤”이면 이슬에 젖어 더 아름다워지는데, “동네 아이들”은 “올겨울”에도 먹을 것이 없어서 “나무들”을 갈라가고, “손”도 안 씻고, “닭”에게 발등을 물린 채 가난하게 살고 있다며 한탄한다. 그래서 시골에도 “도회”처럼 물질문명의 혜택을 베풀어서 가난으로 인해 “영영” 사라져버린 “미소”를 되찾아 주는 것을 자신의 “숙제”로 삼는다. 가난한 사람들이 생활난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국화꽃”을 보고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해주는 보편적 세계 문명의 발전을 자신의 “숙제”로 삼겠다는 것이다.


같은 해의 「라디오 계(界)」(1967)에서도 보편적 세계 문명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계속 나타난다. 화자는 라디오 주파수를 나열하다가 “이북(以北) 방송”인 “10점 5”를 만나자 몸서리치며 놀란다. 당시 청취가 금지된 북한 방송을 통해 민족 분단의 아픔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 일본 방송이 들리지 않을 때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낭랑한 일본 말”의 “달콤한 억양”이 “금덩어리”처럼 소중했지만, 지금 “HiFi”로 들을 수 있게 되자 “값없게 발길에 차이는” “시시한” 소리로 전락하여 안 듣게 된 “이상한” 일을 얘기한다.

6이 KBS 二방송

7이 동 제 一방송

그 사이에 시시한 周波가 있고

8의 조금 전에 동아방송이 있고

8점 5가 KY인가 보다

그리고 10점 5는 몸서리치이는 그것

이 몇 개의 빤떼온의 기둥 사이에

딩굴고 있는 廢墟의 돌조각들보다도

더 값없게 발길에 차이는 隣國의 음성

- 물론 낭랑한 일본 말들이다

이것을 요즘은 안 듣는다

시시한 라디오 소리라 더 시시한 것이

여기서는 판을 치니까 그렇게 됐는지 모른다

더 시시한 우리네 방송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지금같이 HIFI가 나오지 않았을 때

비참한 일들이 라디오 소리보다도 더 發狂을 쳤을 때

그때는 인국방송이 들리지 않아서

그들의 달콤한 억양이 금덩어리 같았다

그 금덩어리 같던 소리를 지금은 안 듣는다

참 이상하다

이 이상한 일을 놓고 나는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한참이나 생각해 본다

지금은 너무나 또렷한 立體音을 통해서

들어오는 以北 방송이 不穩 방송이

아니 되는 날이 오면

그때는 지금 일본 말 방송을 안 듣듯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 미련도 없이

회한도 없이 안 듣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써도 내가 反共産主義者가

아니 되기 위해서는 그날까지 이 엉성한

粗惡한 방송들이 어떻게 돼야 하고

어떻게 될 것이다

먼저 어떻게 돼야 하고 어떻게 될 것이다

이런 극도의 낙천주의를 저녁밥상을

물리고 나서 해본다

- 아아 배가 부르다

배가 부른 탓이다 - 「라디오 界」 전문(초판:285)

그는 “HIFI”가 나오지 않았을 때를 “비참한 일들”이 라디오 소리보다도 더 발광(發狂)을 쳤을 때와 병치시키고, “일본말”을 돈을 상징하는 “금덩어리” 같던 소리에 비유하면서 HIFI로 대표되는 물질문명의 가치를 강조한다. 과거에 우리가 일본 방송을 금덩어리처럼 소중하게 여겼던 것은 일본의 높은 과학 문명 수준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비참”했던 우리도 “HIFI”가 나오는 수준에 도달했으므로 일본에 대한 동경이 그만큼 줄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이북(以北) 방송”도 “불온(不穩) 방송”이 안 되어 쉽게 들을 수 있는 날이 오면 그때는 아무런 “미련”이나 “회한”도 없이 북한 방송을 안 듣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HiFi 덕분에 일본 방송을 안 듣게 된 것처럼 배부르게 “저녁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남한의 물질문명이 발전하면 북한 방송을 “불온 방송”이라고 금지하지 않아도 남한 사람들이 듣지 않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마지막 연에서는 북한 방송이 불온 방송이 안 되는 날까지는 이 “엉성한 조악한” 방송들이 “어떻게” 돼야 하고 “어떻게” 될 것이라는 “극도의 낙천주의”를 가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저녁 밥상”을 물리고 나서 “배가 부른 탓”이라고 밝힌다. 북한 방송을 못 듣게 하려고 금지할 것이 아니라, 배가 불러서 북한 방송을 들을 필요가 없도록 물질문명을 발전시키는 일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시작 노트라고 할 수 있는 「반시론」에서 “우리의 미래에도 과학을 놓아야 한다.”(3판:515)라는 주장으로 뒷받침된다. 여기서 그는 민족 통일이 “참여시의 종점이 아니라 시발점”이라고 하면서, 이제는 참여시의 시발점인 민족 통일만 강조하지 말고, 참여시의 종점인 “미래의 과학 소설”, 거대한 스케일의 “과학시”, “지구”를 고발하는 “우주인”의 시로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북한 방송이 불온 방송이 안 되는 날, 더 나가서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배부르게 해주는 보편적 세계 문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김수영의 시에서는 보편적 세계 문명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전기의 「공자의 생활난」(1945), 「네이팜 탄」(1954), 「헬리콥터」(1955)와 후기의 「꽃」(1960), 「라디오 계(界)」(1967) 등 여러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보편적 세계 문명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전기부터 후기까지 일관성 있게 제시했던 것이다.


- 이건주 문학박사/K-문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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