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이 책은 김수영의 시 작품에 나타난 긴장의 해법에 대해서 중용(中庸)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그가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의 긴장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양극을 고차원적으로 종합하는 변증법이 아니라, 양극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주의를 제시했다는 사실을 밝혀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그가 개별성과 보편성을 고차원적으로 종합하는 보편적 세계문학이 아니라, 양극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과 절제를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문학을 제시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김수영이 제시한 긴장의 해법을 헤겔의 변증법으로 이해하는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일찍이 김윤식은 1982년의 「김수영 변증법의 표정」에서 “이미지스트의 세련성 또는 ‘멋’이 참여시인으로 된 뒤에도 지양된 상태이긴 하나, 계속 남아 있음이 변증법의 원리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김수영이 「시여 침을 뱉어라」(1968)에서 제시한 내용과 형식의 긴장을 두고 끊임없이 부정하면서 생성하는 김수영 변증법의 “제2단서”라고 보았다.
그런데 그는 김수영의 변증법이 “변증법의 문턱”, “변증법적 묘사”에 그치고 그 작동을 시범해 보이는 단계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가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자유의 이행”과 “용기” 등을 강조하면서 내용에 치우친 참여시인에 그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특히 김수영이 「미인」(1967년)의 시작 노트에서 하이데거의 예술론과 릴케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시에서 “중요한 매개항”인 초월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알아차렸지만,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설명했다. “자유의 표현이 아니라 그 이행에 시적 완성이 있다는 기둥과 참다운 노래가 나오는 것은 다른 입김이라는 또 하나의 기둥이 갖춰졌더라면 김수영 신화는 복선적 성격을 띠었을 것”인데, 후기에 하이데거와 릴케의 초월성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단선적”으로 참여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변증법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김수영은 이미 1958년의 시 「모리배」에서 “나는 그들을 생각하면서 하이데거를 / 읽고 또 그들을 사랑한다.”라며 하이데거를 직접 언급하였다. 이것은 김수영이 1967년의 「미인」이 아니라, 이미 1958년의 「모리배」부터 하이데거의 초월성을 “중요한 매개항”으로 설정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김수영은 변증법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밝혀지듯이 헤겔의 변증법을 넘어서 다원주의적 긴장으로 한 발 더 나갔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오형엽은 김수영이 “첨단과 정지, 해탈과 풍자, 속력과 정돈, 탈주체와 주체의 양극을 모순과 균열을 안은 채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는 시적 추구를 통해 순수시 혹은 모더니즘 시와 참여시 혹은 리얼리즘 시를 접합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김수영 시의 구조화 원리이자 시적 지향 및 도약의 동력인 “양극의 길항과 접합”이 “첨단”에서 “정지”로 전이되고 “정지”와 “첨단”이 일치되었을 때 시적 도약을 통해 다시 무한대의 “첨단”으로 원주를 넓혀가면서 끊임없이 전진하는 “변증법적 지양과 접합”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김수영의 변증법을 “양극의 모순과 균열을 온몸으로 껴안고 전진하는” “정직한 변증법”이라고 규정했다.
김응교도 “정(正)과 반(反)이 충돌하여 합(合)으로 나아가는 변증법”을 “김수영 시의 원동력”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철학 이론 이전에 철저한 부정과 반동으로 자유를 향하는 김수영의 의지 자체가 변증법적”이라고 하면서, “A와 B가 대비되어 C가 생산되는 과정”은 김수영의 시 전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는 부조리한 현실을 “부정”하는 인식을 가진 김수영이 단순히 부정에 끝나지 않고, 부정의 부정을 극복하여 긍정으로 향하는 길을 찾았다고 하면서, 변증법적인 면은 있어도 “변증법의 틀에 가둘 수 없는”, 단순하지 않는 “변주곡”이 그의 시의 내부에 반복적으로 울린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김수영의 시에서는 “설움과 긍지”, “죽음과 생명”, “적과 혁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 통일체”로 함께 있다는 이유로 김수영의 긴장을 헤겔 변증법과 다른 “꽈배기 변주곡”으로 규정했다. 대립물들이 통일성 안에서 “동등하게 필연적”이므로 통일성 안에서의 “다양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신주는 김수영이 제시한 긴장의 해법을 헤겔의 변증법으로 이해하는 연구를 비판하면서, 그가 헤겔과 달리 단독자로서의 개별성을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김수영은 “헤겔처럼 모든 개별자를 포괄하는 절대정신”이 아니라, “모든 개별자들이 어떤 절대자에도 포섭되지 않고 단독적인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명령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경수도 김수영이 “마르크시즘과 헤겔의 변증법은 물론 하이데거, 사르트르의 실존 철학” 어느 하나의 사상에 경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면서, 그가 “어느 한쪽에 완강하게 갇히기보다는 경계를 예민하게 의식하며 자유롭게 경계를 횡단하는 상상력”을 보여왔다고 설명했다. 김수영은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경계인, 경계선 상에 있으면서 치열하게 경계를 사유했던 경계의 시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김수영이 여러 산문이나 시에서 제시한 중용(中庸)은 대립적 양극 사이에서 균형과 절제를 추구하는 것이므로 양극을 고차원적으로 종합하는 변증법이 아니라, 양극의 독자성을 긍정하면서 다양한 연결과 경합을 추구하는 다원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긴장의 해법을 중용적 균형과 절제를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그가 민족주의와 세계주의, 가족주의와 인간주의 사이에서 균형과 절제를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를 일관성 있게 제시했다는 사실을 밝혀보고자 한다.
김수영의 긴장론이 변증법보다 다원주의에 가깝다는 것은 그가 중용적 다원주의의 실천 방법을 시공간의 순환을 제시했다는 사실로도 뒷받침된다. 그는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긴장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고차원적 종합을 추구하는 변증법이 아니라, 양극의 독자성을 긍정하면서 시간과 공간에 맞게 양극 사이를 무한히 순환하는 시중(時中)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동안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시간에 관한 연구는 적지 않았다. 김유중은 김수영의 시간 의식이 “유토피아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거시적 시간 의식”에서 “존재론적 인식에 기반을 둔 미시적 시간 의식”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깊이 있게 해명했다. 특히 이찬은 김수영의 산문 「<죽음과 사랑>의 대극은 시의 본수(本髓)」에 등장하는 “대극”이나, 「시여, 침을 뱉어라」에 나타난 “긴장”의 배경에 『중용』에서 말하는 “중(中)”의 사유와 “시중(時中)”의 윤리학이 담겨 있다고 하면서, 「긍지의 날」, 「사령(死靈)」, 「바뀌어진 지평선」등을 분석했다. 이것은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시간의 순환을 시중(時中)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간주하는 이 책과 매우 유사하다.
그동안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공간’에 관한 연구도 계속 나오고 있다. 김상환은 김수영의 시적 공간에서 “도시적 감각이 주된 기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도 그가 “김기림류의 모더니즘을 초과하는 부분”으로서 “세계시민으로서 가지고 있던 자기 의식 속에 도시 자체에 대한 반발 심리”가 있었다고 보았다.
최근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공간을 미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개념으로 분석한 연구들이 주목할 만하다. 김지율은 헤테로토피아가 “현실의 다성적 표상의 공간으로 비판과 대안의 여지를 함축하고 있는 이질적 장소”라고 하면서, “근대적 도시의 삶이 가속화될수록 주체들은 권태나 혼란 속에서 방황과 불안에 휩쓸리며 다양한 혼종적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김수영이 “인간성 상실이나 절망 등의 위기의식이 위태롭게 존재하는 현대시의 강박화된 희망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의 실마리”를 “수용소”, “도서관”, “거리”, “산정”과 같은 헤테로토피아에서 찾았다고 주장했다.
김원경도 김수영의 시에서는 “병원이나 교도소, 도서관이나 거리, 산정과 구름, 혹은 헬리콥터와 같은 물상들까지 양가적 속성들이 공존하는 장소”들이 헤테로토피아로서 “현실 공간과 혼재된 공간인 동시에 현실을 넘어서는 저항의 공간으로의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연구들은 도시와 시골, 현실적 생활 공간과 초월적 자연 공간 사이의 순환을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간주하는 이 책과 매우 유사하다.
앞으로 김수영이 민족주의와 세계주의, 가족주의와 인간주의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를 지속적으로 제시했다는 사실을 해당 시 작품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밝혀볼 것이다. 이를 통해 김수영의 긴장론이 헤겔 변증법이 아니라, 윌리엄 제임스의 다원주의에 가깝다는 사실이 입증될 것으로 기대된다.
- 문학박사 이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