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이 책은 김수영의 시 작품에 나타난 세계시민주의적 긴장의 양상, 긴장의 해법으로서 중용(中庸)적 다원주의,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서 시공간의 순환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그가 민족주의와 세계주의, 가족주의와 인간주의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문학을 일관성 있게 제시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이 책에서 ‘다원적 세계문학’은 파스칼 카자노바의 ‘세계문학공화국’ 개념을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파스칼 카자노바가 “문학의 드넓은 나라”, “문학예술의 고안에 특유한 수단과 방법이 논의되는 세계”로 규정했던 ‘세계문학공화국’은 개별적 민족 전통문학과 보편적 세계문학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과 경합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원적 세계문학’은 파스칼 카자노바의 ‘세계문학공화국’ 개념을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파스칼 카자노바가 “문학의 드넓은 나라”, “문학예술의 고안에 특유한 수단과 방법이 논의되는 세계”로 규정했던 ‘세계문학공화국’은 개별적 민족 전통문학과 보편적 세계문학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과 경합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이다.
카자노바는 단일한 세계문학공화국에서 “초국가적 경합”을 가능하게 만드는 “공통된 척도”로서 “문학의 그리니치 자오선” 또는 “문학의 시간”을 제시했다. 카자노바가 말하는 “문학의 그리치니 자오선”은 “문학의 현재를 규정하는 규준에 대한 시간적 간격에 따라 중심과의 거리를 측정”함으로써 작품의 “현대성”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물론 카자노바도 세계문학공화국이 “자유와 평등 속에서 실현되는” 아름다운 세계가 아니라, “문학 분야의 수도와 수도에 의존하고 수도에 대한 미적 거리로 규정되는 지방 사이의 대립으로부터 구성”되어 있는 불평등 구조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세계문학사는 “문학을 쟁점으로 갖고 거부, 선언, 실력행사, 특수한 혁명, 노선 전환, 문학운동에 힘입어 세계문학을 형성한 경쟁의 역사”라고 규정했다. 세계문학공화국은 수도와 지방 간에 문학적 현대성을 둘러싼 국제적 경합이 일어나고 있는 공간이므로 “위계와 일방적 지배 관계가 영원히 고정된 불변의 구조”가 아니라, 세력 관계를 변화시키고 위계를 뒤엎을 수도 있는 “문학 혁명의 장소”라는 것이다.
특히 카자노바는 개별 민족문학 공간 내부에서는 “지배적인 문학 공간에서 애초의 모든 차이를 희석하고 삭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통합·동화와 “민족의 요구에 따른 차이에 대한 표명”인 분화·이화 사이의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세계문학공화국에서 지방에 속하는 작가들은 “자신의 차이”를 확언하면서 “국제문학 영역에서 전혀 또는 거의 인정받지 못하는 민족 작가의 힘겹고 불확실한 길”을 자신에게 선고하거나, 반대로 자신의 차이를 부인하면서 자신이 속한 곳을 배신하고 “주요한 문학적 중심들 가운데 하나에 동화”되거나 하는 “이율배반” 앞에서 불가피하고 괴로운 선택을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수영은 1961년의 「시작 노트」에서 “멋진 세계의 촌부(村夫)”가 되는 것을 당면한 시적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4‧19를 분수령”으로 해서 우리나라의 국내적인 제 사건이 이미 충분히 “세계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시의 제재만 하더라도 “세계적이거나 우주적인 것”을 탐내지 않아도 될 듯하다고 진단하면서, “어떻게 하면 멋진 세계의 촌부(村夫)가 되는가” 하는 문제를 당면한 문학적 과제로 제시했다.(전집:529)
그가 말한 “세계의 촌부”는 세계문학을 추구하는 “세계인”과 민족문학을 추구하는 “촌부(村夫)”가 “모순적이고 대립적인 이율배반” 속에서 공존하는 다원적 세계시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한국인인 동시에 세계시민이라는 이중적 소속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촌부”로서의 개별적 민족 전통문학과 “멋진 세계”로서의 보편적 세계문학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문학을 자신의 시적 과제로 삼았다는 유력한 근거로 된다.
그는 여러 산문에서 한국문학이 후진성을 탈피하고 인류의 복지와 세계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세계문학의 과제를 지속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1960년 6월 17일자 일기에서 “혁명은 상대적 완전을, 그러나 시는 절대적 완전을 수행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 현대에 있어서 혁명을 방조 혹은 동조하는 시는 무엇인가. 그것은 상대적 완전을 수행하는 혁명을 절대적 완전에까지 승화시키는 혹은 승화시켜 보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전집:714)라고 썼다.
그리고 「독자의 불신임」(1960)에서도 “젊은 독자들일수록 아무리 거센 호흡 속에서도 영혼의 개발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이런 뜻에서 문학인들은 젊은 독자들의 다급한 영혼의 돌진 속에서 호흡을 꺾이거나 휴식하지 말아야 하겠다. 문학 혁명은 독자의 입장에서도 필자의 입장에서도 먼 장래의 태평사가 아니기 때문이다.”(전집:240)라고 강조했다. 그는 물질문명 시대 인간적 영혼의 개발을 위한 “문학 혁명”을 직접적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그는 「자유란 생명과 더불어」(1960)에서도 “생각해 보라. 우리는 얼마나 뒤떨어졌는가. 학문이고 문학이고 간에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 벅찬 물질 만능주의의 사회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정신의 구원이라고 나는 확신한다.”(전집:235)라고 말했다. 이후 「저 하늘 열릴 때-김병욱 형에게」(1961)에서도 “정신상의 자주독립인 통일 이후의 시”는 “세계적인 시”, “세계평화와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 이바지하는 시”, “좀 더 가라앉고 좀 더 힘차고 좀 더 신경질적이 아니고 좀 더 인생의 중추에 가깝고 좀 더 생의 희열에 가득 찬” “시다운 시”가 될 것이고, “시인다운 시인”이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전집:246)
이후 「모기와 개미」(1966)에서도 “우리나라는 문학하는 사람들 중에 지식인이 가물에 콩 나기만큼 있기 때문에 문학가가 아직도 사회적인 멸시를 받고, 그나마 여론을 조성하는 자리에서는 대학교수보다도 볼품이 없고, 우리의 시와 소설은 아직껏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전집:151)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제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1966년)에서도 “정의와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인류의 운명에 적극 관심을 가진, 이 시대의 지성을 갖춘 시 정신의 새로운 육성을 발할 수 있는 사람”을 오늘날 우리 사회가 요청하는 “시인다운 시인”(전집:262)으로 제시했다. 그에게 현대 시인은 편협한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보편적 세계시민이었던 것이다.
김수영은 “모든 민족주의에서 벗어난 보편적 조국, 국가의 보통법을 거슬러 조직되는 문학의 왕국, 예술과 문학이 유일하게 명령하는 초국가적 장소”인 세계문학공화국의 시민이 되기 위해 애쓴 국제적 작가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가 현대 시인을 세계시민으로 규정했던 것은 카자노바의 말대로 당시 세계문학공화국의 지방이었던 독일의 괴테가 “문학의 국제적 성격”을 이해하고, 세계적인 문학적 경합 공간 속으로 새로 들어와서 “프랑스의 지적 및 문학적 패권에 이의를 제기하는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세계문학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던 것에 비견할 만한 일이다.
그렇다고 김수영이 전적으로 보편적 세계문학만을 추구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1961년의 시 「“4·19”시」에서 “세계정부 이상이 / 따분해 그러나”라고 하면서, 서구 중심의 보편성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그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칸트의 “영구 평화론”도 초강대국 아래에 통합된 “세계 왕국”이 아니라, 국가 간 “경쟁 속에서의 균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다원적 세계시민주의의 일면을 가지고 있다.
김수영은 이후의 산문 「모더니티의 문제」(1964)에서도 “세계의 시 시장에 출품된 우리의 현대시가 뒤떨어졌다는 낙인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전에, 우리들에게는 우선 우리들의 현실에 정직할 수 있는 과단과 결의”(전집:576)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1968년의 「반시론」에서는 남북통일을 참여시의 “종점”이 아니라 “시발점”이라고 하면서, “편협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지구를 고발하는 우주인의 시”를 종점으로 제시했다.(전집:515) 민족의 통일과 완전한 자주독립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우선 성취하고 나서 세계평화와 인류의 복지를 추구하는 세계문학으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카자노바가 세계문학공화국의 지방에 속해 있는 작가는 “민족이 존재를 부여받고 따라서 국제적 차원에서 인정받도록 하기 위한 정치적인 독립” 이후에 비로소 “본질적으로 문학적인 자율성을 위한 투쟁”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던 것과 일치한다. 피지배 국가에서 초기 민족문학의 유산이 일단 축적되고 나면, 제임스 조이스 같은 “두 번째 세대”의 작가들이 나타나서 “자체로 구성된 민족문학 자원”에 기대면서도 “국제적이고 자율적인 문학 규범”을 참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카자노바는 “중심 밖에 자리한” 이 “두 번째 세대” 작가들이 “문학적 반란과 해방의 길”을 세련되게 다듬고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 “위대한 문학 혁명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문학공화국에서는 민족문학이 축적된 이후에 등장하는 중심 밖의 지방 작가들이 “문학의 그리니치 자오선에서 가장 잘 허용된 문학 형식, 문체, 코드를 혁신하고 뒤엎음으로써 현대성의 기준”을 바꾸고, “문학의 시간을 재는 척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김수영도 세계문학공화국의 지방인 한국에서 민족의 통일과 완전한 독립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시발점”으로서 해결한 이후에는 세계평화와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 이바지하는 세계적인 시라는 “종점”을 향해 전진하고 싶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중심 밖에 자리한” “두 번째 세대”인 “조이스와 포크너”처럼 “위대한 문학 혁명가”의 길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김수영의 시를 탈식민주의로 이해하는 연구는 일면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카자노바도 에드워드 사이드 등 탈식민주의 비평가들이 “은폐된 문학의 정치적 진실”, “오랫동안 지배당한 나라의 정치사와 새로운 민족문학의 출현 사이에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인식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들이 “문학을 정치로 귀착시키면서 각 작품의 미의식과 문학적 형식 그리고 축소할 수 없는 특이성이라는 결코 해결될 수 없을 문제”를 “내적 비평”으로 떠넘긴다고 비판했다.
카자노바는 세계문학공화국의 지방에 속한 작가는 문학적으로 종속되는 동시에 이 지배를 해방과 정당성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문학적 지배의 양면성”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탈식민주의에서 “식민지 문화의 유산일 것이라는 이유로 이미 구성된 문학 형식 및 장르의 강요를 비판하는 것”은 문학 자체가 하나의 공간 전체에 공통된 가치로서 “궁핍한 처지의 작가에게 특수한 인정 및 삶을 획득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라는 점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후에 자세히 밝혀지듯이 김수영은 한편으로 민족의 통일과 완전한 독립을 위하여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민중의 생활난 해결을 위해 보편적 세계 문명도 매우 중시했다. 따라서 그는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했던 다원적 세계시민주의자이지 일방적인 탈식민주의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박수연의 말대로 “개인이 전제되는 초국가적 세계문학”이나, 박상진이 주장했듯이 “비서구 대 서구, 전근대 대 근대, 주변부 대 중심, 특수 대 보편과 같은 이분법적 대립들” “사이의 왕복운동”을 통해 균형을 찾아가는 다원적 세계문학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김수영이 당시에 다원적 세계문학을 제시한 이유는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피식민지 경험을 지닌 지식인으로서 현대성(modernity)에 대한 자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그가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던 1945년 해방 직후의 한국 사회에서는 미국과 소련에 의한 신탁통치 등 세계적 문제가 곧바로 국내의 사회정치적 문제로 등장했던 시기였다. 당시 동양과 서양,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이분법적 흑백논리에 맞서서 그가 제시한 해결책이 다원적 세계시민주의였다고 할 수 있다.
김수영이 번역가라는 전기적 사실도 그가 다원적 세계문학을 제시한 것과 관련이 깊다. 김수영이 산문에서 언급한 세계의 작가는 무려 100명이 넘고, 직접 작품을 번역한 작가도 적지 않다. 카자노바의 말대로 번역가는 “세계문학 게임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번역은 “중심 밖의 모든 작가가 문학 영역으로 접어드는 주된 경로”로서 “국제문학 공간에서의 투쟁이 띠는 특수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번역가로서 김수영은 “그리니치 자오선에서 포고된 현대성”을 들여와서 알림으로써 세계문학 공간의 “단일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번역가로서 세계문학의 필요성을 적극 강조하는 동시에 과도한 서구 중심적 태도도 함께 비판하는 다원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산문 「모기와 개미」(1967)에서 “요즘 잡지사가 그전보다 좀 깨었다고 하는 것이, 외국말을 아는, 외국에 다녀온 문인들을 골라서 글을 씌우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면서, 이를 “구역질이 나는 경향”, “탈을 바꾸어 쓴 후진성”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전집:151-152)
박수연도 김수영이 쉬지 않고 번역에 몰두하면서 끝없이 세계문학을 의식했다고 하면서, 김수영에게 문학은 “나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었고, 타자의 언어를 나의 언어로 바꾸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세계문학이 한국문학화되는 것이었고, 한국문학이 자신의 목소리로 세계화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김수영은 소시민 문학이 아니라, 세계문학을 추구하는 “세계인”과 민족문학을 추구하는 “촌부(村夫)”가 공존하는 다원적 세계시민을 추구했던 것이다. 앞으로 김수영의 시 작품을 면밀하게 분석함으로써 그가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문학을 제시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것이다.
- 문학박사 이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