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주의자 김수영의 영롱한 목표

by 이건주
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1950년대 시에서부터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개별적 가족과 보편적 인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개인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기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세계시민으로서 자유와 사랑, 인류 복지와 세계평화 등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가장으로서 개별적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려는 의지도 분명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이후 「영롱한 목표」(1955)에서도 개별적 가족 생활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찾아볼 수 있다. 화자는 “새로운 목표”가 “귀고리”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죽음”보다 엄숙하고, “종소리”보다도 더 영롱하게 나타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목표는 가까운 현실 세계에 있지만, 초월적인 “죽음”이나 종교적인 “종소리”보다 더 엄숙하고 영롱한 것으로서 가족의 생활난 해결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죽음”은 그가 산문 「로터리의 꽃의 노이로제-시인과 현실」(1967)에서 “진정한 시는 자기를 죽이고 타자가 되는 사랑의 작업이며 자세인 것”(전집:280)이라고 했듯이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는 “자기”를 죽이고, 시인이자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의 핵심인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죽음”보다 엄숙하다는 말은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는 것이 보편적 사랑보다 더 엄숙한 목표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동안 세계시민으로서 “죽음”처럼 엄숙하고 영롱한 보편적 인간 정신만 추구해 왔는데, 이제부터는 가장으로서 그보다 더 엄숙하고 영롱한 개별적 가족 생활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오늘”부터 “지리교사”처럼 “벽”만 보고 있거나, 노쇠한 “선교사”처럼 “낮잠”을 자지 않고도 견딜 수 있는 “강인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이제는 개별적 가족 생활을 추구해도 타락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새로운 목표가 “극장”, “의회”, “기계의 치차(齒車)”, “선박의 삭구(索具)” 등 생활난을 해결해 주는 보편적 세계 문명을 “저주”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더 나가서 “사람”이 지나간 과거의 “자국” 위에서 부르짖는 것은 “개”와 도회의 “사기사(詐欺士)”뿐이라고 하면서, “관념”의 말단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이기는 법이라고 강조한다. 당장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가족의 생활난을 부정하면서 인간적 “관념”과 정신만 주장하는 것은 “사기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이미 “역을 떠난 기차”처럼 물질문명 시대에는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며, 풍요로운 생활을 상징하는 “능금”을 먹는 아이들이 느끼는 “희열” 외에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당연한 변화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제는 지리교사나 선교사처럼 “관념”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40년간”의 조판 경험이 있는 “노직공”처럼 가난을 해결할 수 있는 생활 능력을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가 자신의 가장 심각한 “우둔(愚鈍)” 속에서 새로운 목표가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도 이제는 개별적 가족 생활을 부정하고 보편적 인간 정신만 추구했던 “우둔”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인간 정신을 목표로 삼아 왔으니, 이제부터는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활난 해결을 새로운 목표로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 문학박사 이건주


「영롱한 목표」(1955)


새로운 목표는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죽음보다 엄숙하게

귀고리보다도 더 가까운 곳에

종소리보다도 더 영롱하게

나는 오늘부터 지리교사모양으로 벽을 보고 있을 필요가 없고

노쇠한 선교사모양으로 낮잠을 자지 않고도 견질 만한 강인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목표는 극장 의회 기계의 치차(齒車)

선박의 삭구(索具) 등을 주저(呪詛)하지 않는다

사람이 지나간 자국 위에 서서 부르짖는 것은

개와 도회의 사기사(詐欺師)뿐이 아니겠느냐

모든 관념의 말단에 서서 생활하는 사람만이 이기는 법이다

새로운 목표는 이미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역을 떠난 기차 속에서

능금을 먹는 아이들의 머리 위에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희열 위에서

40년간의 조판 경험이 있는 근시안의 노직공의 가슴속에서

가장 심각한 나의 우둔 속에서

새로운 목표는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죽음보다 엄숙하게

귀고리보다도 더 가까운 곳에

종소리보다도 더 영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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