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후기 1960년대 시에서도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개별적 가족과 보편적 인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개인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기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자유와 사랑, 인류 복지와 세계평화 등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가장으로서 개별적인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려는 의지도 분명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죄와 벌」(1963)에서도 개별적 가족 생활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찾아볼 수 있다. 화자는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는 무서운 말을 던진다. 이것은 타인을 살해하는 죄를 저지르려면 자신도 그로 인한 “벌”로서 “남”에게 “희생”을 당할 수 있다고 각오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가「파밭 가에서」(1960)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라고 했듯이 어떤 목적을 얻기 위해 “죄”를 저지르려면 이로 인한 “벌”로서 어떤 것을 잃는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살인의 대상으로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의 아내인 “여편네”를 선택한다. 그리고 아내를 때려눕혔을 때 “어린놈”이 울었고, “취객”들이 모여들었는데, “아는 사람”이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지가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아내를 죽이고도 사이코패스처럼 양심의 가책을 전혀 받지 않고 자신의 범행을 감추려고만 할 뿐만 아니라, 하찮은 우산을 아까워하는 비정상적인 심리 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도스토옙스키의 동명 소설 『죄와 벌』에서 라스콜니코프가 페테르부르크 거리에서 고리대금업자 노파와 죄 없는 목격자 여동생을 죽이고도 반성하지 않은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이 시는 여성 혐오적인 아내 구타와 살해에 대한 사실적인 자백이나 반성이 아니라, 자본주의 물질문명 시대에 필수적인 개별적 가족 생활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강조한 텍스트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가족의 “생활로 표상되는” 여편네를 때려눕히는 행위는 실제 아내를 구타하는 사실적인 장면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기 위해서 개별적 가족 생활을 부정하는 상징적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린놈”이 울었다는 것은 개별적 가족 생활을 부정하고 보편적 인간 정신만 추구하다 보니 생활난 때문에 어린 자식들이 울 수밖에 없다는 말이고, “사십명” 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다는 것은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자신에 대해 주위 사람들이 비난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아는 사람”이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지가 제일 마음에 꺼리는 일이었다는 말도 친구나 친척들처럼 자신을 아는 사람들의 비난이 가장 부담이 되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를 거부하고,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인간 정신만 추구하는 것은 “죄”이므로 그 “벌”로서 가족의 고생은 물론이고 타인의 따가운 시선과 양심의 가책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가 가장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라고 마무리하는 것은 개별적 가족 생활을 부정하고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는 것이 자식이나 타인의 시선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자신 스스로가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생활을 부정하면서 돈을 벌지 않는 것은 “지우산”으로 상징되는 물질적 욕망을 죽이는 것이므로 자본주의 물질문명 시대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결국 시의 첫머리에 있는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는 말은 「너를 잃고」(1953)에서의 “억만 개의 모욕”처럼 가족이나 타인으로부터 모욕과 희생을 감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가 있어서야만 개별적 가족 생활을 부정하고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자본주의 시대에 가장으로서 개별적 가족 생활을 부정하는 것은 가족이나 타인으로부터 당하는 모욕과 희생으로서의 “벌”을 각오해야만 하는 “죄”라는 것이다.
- 문학박사 이건주
[죄와 벌](1963)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40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함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