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후기 1960년대 시에서도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개별적 가족과 보편적 인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개인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기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자유와 사랑, 인류 복지와 세계평화 등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가장으로서 개별적인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려는 의지도 분명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이혼 취소」(1966)에서도 개별적 가족 생활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계속 나타난다. 화자는 아내가 “별거”를 하기로 작정한 “이틀째” 되는 날에 “나”와의 “이혼”을 결정하고, “친구 미망인”의 빚보증을 물어 주기로 한 것이 좋다고 밝힌다. 아내가 친구 미망인의 빚보증을 섰던 화자를 나무라면서 이혼을 결정하자, 그도 속물적인 아내와 이혼하고 인간적으로 친구의 미망인을 도울 수 있게 된 것을 오히려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집문서”를 잡히고 돈을 빌리려고 하니 “이자”가 아까워서 아내보다도 더 망설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5만 원”을 “무이자로” 바꿔 보려고 생전 처음으로 “친구”한테 돈을 꾸러 가는 등 “피” 같은 돈을 아끼려 애쓴다. 평소에 돈보다는 친구와의 우정이나 사랑이 가치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피 같은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려는 속물적인 자신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에 그는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대학”에 다니는 “어린 친구”한테서 편지를 받는다. 그리고 그 안에 적힌 “블레이크의 시” 「지옥의 격언」에 나오는 “Sooner murder an infant in its cradle than nurse unacted desire(실행되지 않는 욕망을 키우느니 요람에 든 아기를 죽이는 편이 낫다.)”라는 말을 소개한다. 이것은 같은 시에 나오는 “He who desires but acts not, breeds pestilence(욕망할 뿐 행하지 않으면 질병이 생긴다.)”라는 말로 보아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김수영은 이 말을 “상대방(미망인)이 원수같이 보일 때 비로소 자신이 선(善)의 입구에 와 있는 줄 알아라.”로 의역했다고 시의 각주에 밝힌다. 개인적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선”이라는 블레이크의 말처럼 자신으로 하여금 빚보증을 서게 해서 금전적 피해를 입힌 친구 미망인을 “원수”로 생각하는 것이 “선”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아내”에게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블레이크의 시를 완성했다”라고 외치면서, 그동안 세계시민으로서 우정과 사랑 등 보편적 인간 정신만 추구했던 자신을 이기고 아내처럼 개별적 가족 생활을 긍정하게 되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이제 “차디찬 사람들”을 경멸할 수 있다고 하면서, “천사” 같은 “여류작가”의 눈동자가 “피”를 흘리고 있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이라고 비판한다. 자본주의 물질문명 시대에 개별적 가족 생활을 부정하고 보편적 인간 정신만 추구하는 것은 “천사”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 먹고살기 위해서 “피”를 흘려야 하는 인간에게는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선”이 아닌 모든 것은 “악”이라고 하면서, “신(神)”의 지대(地帶)에는 “중립”이 없다고 말한다. “피” 같은 돈을 부정하는 극단적인 선(善)이나, 반대로 돈만 아는 극단적인 악(惡)만 있는 신의 지대와 달리, 인간의 지대에는 개별적 가족과 보편적 인간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중립” 지대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가 아내에게 “그대”가 흘리는 “피”에 참가할 수 있도록 “이혼”을 “취소”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개별적 가족 생활을 상징하는 “아내”를 동반자로 삼아서 자신도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겠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이제는 세계시민으로서의 보편적 인간 정신보다 가장으로서의 개별적 가족 생활을 더 적극적으로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 문학박사 이건주
「이혼 취소」(1966)
당신이 내린 결단이 이렇게 좋군
나하고 별거를 하기로 작정한 이틀째 되는 날
당신은 나와의 이혼을 결정하고
내 친구의 미망인의 빚보를 선 것을
물어주기로 한 것이 이렇게 좋군
집문서를 넣어 6부 이자로 10만 원을
물어주기로 한 것이 이렇게 좋군
10만 원 중에서 5만 원만 줄까 3만 원만 줄까
하고 망설였지 당신보다도 내가 더 망설였지
5만 원을 무이자로 돌려보려고
피를 안 흘리려고 생전 처음으로 돈 가진 친구한테
정식으로 돈을 꾸러 가서 안 됐지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고 저것을 하고 이것을
하고 피를 안 흘리려고
피를 흘리되 조금 쉽게 흘리려고
저것을 하고 이짓을 하고 저짓을 하고
이것을 하고
그러다가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대학에 다니는
나이 어린 친구한테서 편지를 받았지
그 편지 안에 적힌 블레이크의 시를 감동을 하고
읽었지 “Sooner murder an infant in its
cradle than nurse unacted desire”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았지 그러나 완성하진 못했지
이것을 지금 완성했다 아내여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블레이크의 시를 완성했다 우리는
이제 차디찬 사람들을 경멸할 수 있다
어제 국회의장 공관의 칵테일 파티에 참석한
천사 같은 여류작가의 냉철한 지성적인
눈동자는 거짓말이다
그 눈동자는 피를 흘고 있지 않다
선이 아닌 모든 것은 악이다 신의 地帶에는
중립이 없다
아내여 화해하자 그대가 흘리는 피에 나도
참가하게 해다오 그러기 위해서만
이혼을 취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