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1950년대 시에서부터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개별적 가족과 보편적 인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개인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기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가장으로서 개별적 가족 생활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세계시민으로서 자유와 사랑, 인류 복지와 세계평화 등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려는 의지도 분명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거리1」(1955)에서도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찾아볼 수 있다. 화자는 오래만에 “거리”에 나와서 빈 “사무실”에 있는 물건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도회의 중심지”에서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이 “태연”하게 앉아 있다.
이렇게 그가 문명의 공간인 도시 한복판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일”이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을 끌고 가는 것이라는 주체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헌 옷”과 “낡은 구두”가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면서도 이런 개인적 문제보다는 “옛날에 죽은 친구”를 통해 “죽음”이라는 인간적 문제를 생각한다.
그리고 “벽” 위에 걸려 있는 “지도”가 푸르다고 하면서, 이기적 욕망만 추구하는 물질문명의 폐단을 상징하는 “벽”을 넘어서, “푸른 바다와 산과 들”로 상징되는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그렇다고 그가 개별적 가족 생활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구름”이나 “항구”가 없는 개별적 가족 생활 공간인 “사무실”의 “허연 석회 천정”을 “꿈이 아닌 꿈”을 가리키는 “내일의 지도”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꿈”은 아니지만 그래도 생활난 해결이라는 “내일”의 현실적인 “꿈”도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점묘파 화가 “쇠라”가 세상을 점으로 그린 것처럼 자신도 “가옥”과 “집물”과 “사람”들의 음성과 “거리”의 소리들로 상징되는 개별적 가족 생활을 보편적 인간 정신을 상징하는 “해양”의 한구석을 차지하는 조그마한 “물방울”로 그리는 “선비”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이것은 과거 선비들이 생활보다 정신을 더욱 중시했듯이 문명의 공간인 거리에서도 가장으로서 개별적 가족 생활에만 매몰되지 않고,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 문학박사 이건주
「거리1」(1955)
오래간만에 거리에 나와 보니
나의 눈을 흡수하는 모든 물건
그중에도
빈 사무실에 놓인 무심한
집물 이것저것
누가 찾아오지나 않을까 망설이면서
앉아있는 마음
여기는 도회의 중심지
고개를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이
태연하다
―일은 나를 부르는 듯이
내가 일 위에 앉아 있는 듯이
그러나 필경 내가 일을 끌고 가는 것이다
일을 끌고 가는 것은 나다
헌 옷과 낡은 구두가 그리 모양수통하지 않다 느끼면서
나는 옛날에 죽은 친구를
잠시 생각한다
벽 위에 걸어 놓은 지도가
한없이 푸르다
이 푸른 바다와 산과 들 위에
화려한 태양이 날개를 펴고 걸어가는 것이다
구름도 필요 없고
항구가 없어도 아쉽지 않은
내가 바로 바라다보는
저 허연 석회천정―
저것도
꿈이 아닌 꿈을 가리키는
내일의 지도다
쇠라여
너는 이 세상을 점(點)으로 가리켰지만
나는
나의 눈을 찌르는 이 따가운 가옥과
집물과 사람들의 음성과 거리의 소리들을
커다란 해양의 한 구석을 차지하는
조그마한 물방울로
그려보려 하는데
차라리 어떠할까
―이것은 구차한 선비의 보잘것없는 일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