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주의자 김수영의 강가에서

by 이건주
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1960년대 시에서도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개별적 가족과 보편적 인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개인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기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가장으로서 개별적 가족 생활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세계시민으로서 자유와 사랑, 인류 복지와 세계평화 등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려는 의지도 분명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강가에서」(1964)에서도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찾아볼 수 있다. 화자는 자신보다 “가난”하게 보이고, 식구도 “일곱 식구”나 더 많은데도 더 “여유”가 있는 어떤 인물을 제시한다.


“저이”는 자신에게 “산보”를 청하고, 정신적 공간인 “강가”에 가서 돌아갈 차비만 남겨놓고 술을 사주는 등 돈보다 여유를 즐긴다. 그리고 “일요일”이면 “빼지 않고” “강”으로 투망을 하러 나오고, “반드시” “4킬로 가량”을 걷는 등 평소에는 일을 하면서도 주말에는 절도 있게 휴식을 취하는 등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떠오르게 한다.


반면에 “나”는 생활난을 해결하느라 여유 없이 살다 보니 “죽은 고기”처럼 “혈색” 없는 사람이 되었다. “저이”는 “나”를 보고 “오입”을 했다고 하면서 아직도 늙지 않았음을 과시하고, “나”에게 “산보”를 하라고 자꾸 권한다. 여기서 “오입”은 사실적인 성적 일탈이 아니라, 산문「반시론」에서 말했듯이 생활로부터 벗어나 정신을 추구하는 “이방인의 자유의 감각”(전집:506)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자신보다 “가난”하고, “짐”이 무거워 보이고, “늙었”고, “눈”이 들어갔는데도 여유가 있는 “저이”를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다 그처럼 살고 있는 것 같고,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는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나름대로 여유 있게 살고 있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자신만 “동요”도 없이 “반성”도 없이 돈만 아는 “가련한 놈”, 속물적인 “소인(小人)”이 되어 가고 있다고 한탄한다.


이미 「달나라의 장난」(1953)에서 “누구 집을 가 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라고 했듯이 여기서도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지 못하고 개별적 가족 생활에 사로잡힌 “소인”이 된 자신을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 문학박사 이건주


「강가에서」(1964)


저이는 나보다 여유가 있다

저이는 나보다도 가난하게 보이는데

저이는 우리집을 찾아와서 산보를 청한다

강가에 가서 돌아갈 차비만 남겨놓고 술을 사준다

아니 돌아갈 차비까지 다 마셨나 보다

식구가 나보다도 일곱 식구나 더 많다는데

일요일이면 빼지 않고 강으로 투망을 하러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반드시 4킬로가량을 걷는다고 한다


죽은 고기처럼 혈색 없는 나를 보고

얼마전에는 애 업은 여자하고 오입을 했다고 한다

초저녁에 두 번 새벽에 한 번

그러니 아직도 늙지 않지 않았느냐고 한다

그래도 추탕을 먹으면서 나보다도 더 땀을 흘리더라만

신문지로 얼굴을 씻으면서 나보고도

산보를 하라고 자꾸 권한다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는데

남방셔츠 밑에는 바지에 혁대도 매지 않았는데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고

그는 나보다도 짐이 무거워 보이는데

그는 나보다도 훨씬 늙었는데

그는 나보다도 눈이 들어갔는데

그는 나보다도 여유가 있고

그는 나에게 공포를 준다


이런 사람을 보면 세상사람들이 다 그처럼 살고 있는 것 같다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도 가련한 놈 어느 사이에

자꾸자꾸 소심해져만 간다

동요도 없이 반성도 없이

자꾸자꾸 소인이 돼간다

속돼간다 속돼간다

끝없이 끝없이 동요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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