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1960년대 시에서도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개별적 가족과 보편적 인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개인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기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가장으로서 개별적 가족 생활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세계시민으로서 자유와 사랑, 인류 복지와 세계평화 등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려는 의지도 분명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1965)에서도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계속 나타난다. 화자는 “왕궁” 즉 왕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정권에 저항하지 못하고,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설렁탕집” 주인에게 욕을 하면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고 있는 자신의 “옹졸”함을 비판한다.
그리고 1965년 3월 《현대문학》에 발표된 「분지」 필화 사건의 남정현으로 짐작되는 “붙잡혀 간 소설가”의 석방을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지 못하고, 1965년에 대규모로 진행되었던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면서,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 자신의 옹졸함을 거듭 비판한다.
그는 과거 부산 포로수용소에서 “포로경찰”이 되지 않기 위해 “너스(간호사)”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는 사소한 일에만 몰두했었던 일화를 들려주면서, 자신의 옹졸한 전통이 “유구(悠久)”하고, 이제 자신의 “정서(情緖)”로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지금도 자기의 반항이 “개의 울음소리”나 “애놈의 투정”에도 지고,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고통의 “가시밭”이라고 느끼는 등 그때와 다름없이 옹졸하다고 한탄한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옆으로 비켜서 있다며 자신의 “비겁”함을 자조적으로 고백한다. 그리고 “땅주인”에게는 못하면서 “이발쟁이”에게만 반항하고,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면서 “동회 직원”에게만 반항하는 자신의 옹졸함을 거듭 되풀이하면서, “모래”, “바람”, “먼지”, “풀”처럼 작은 자신을 비판한다.
이제는 언론의 자유와 세계의 평화가 위협받는 긴박한 상황이므로 개인적이고 '옹졸한 반항'에 그치지 않고,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인간 정신의 핵심인 보편적 자유와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대범한 반항'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 문학박사 이건주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1965)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王宮)의 음탕 대신에
오십(五十)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二十)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사십야전병원(第四十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二十) 원 때문에 십(十) 원 때문에 일(一)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一)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