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1950년대 시에서부터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를 제시했다. 그는 대립적 양극을 고차원적으로 종합하는 변증법이 아니라, 양극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추구하는 다원주의를 긴장의 해법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거리2」(1955)에서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려는 다원적 의지가 나타난다. 화자는 “돈”을 버는 “거리의 부인”인 매춘부에게 “자유”로운 자세를 취해 보라고 주문한다.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한복판인 “거리”에서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누구보다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 매춘부에게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독기”를 빼고 생활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그가 1955년 2월 3일자 일기에서 서울역에서 본 매춘부들을 “규방에서의 인생 최대의 쾌락과 행복까지도 빼앗긴 사람들”(3판:700)로 규정했고, 이후 1956년 2월 15일자 일기에서도 “결론이 없는 여자들”이 “현대의 비밀”이라고 하면서 거리 여자들의 비극을 현대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가장 큰 폐단의 하나로 제기했던 것으로 뒷받침된다.
김수영이 번역했던 「모다니스트운동에의 애도」라는 책에서 스티븐 스펜더도 “영웅적이라고 할 만큼 예민한 현대적 힘과 각고한 현대의 현실-기계, 도시, 아부산주(酒) 혹은 매음부 같은-사이의 긴장이야말로 모더니즘의 기조”라고 썼다. 자본주의 물질문명이 가져다주는 힘과 이로 인해 매음부들이 겪는 각고한 현실 사이의 “긴장”이 현대 모더니즘의 핵심 문제라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서울 안에서도 “가장 번잡한 거리”에서 세상에 처음 나온 사람처럼 쾌활하다고 하면서, “밝은 태양” 밑에는 “나폴레옹”의 말처럼 불가능한 일이 없는 듯하다고 말한다. 또한 정신만 추구했던 “어제”의 “어둠과 절망”에서 벗어나 밝은 태양이 비추는 도시 문명 속에서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일하고 있는 “거리의 운명”을 보면서 “기쁜 마음”이 솟아나는 것을 느낀다.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은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쁜” 일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과거 “극장”에서 배우를 꿈꿨던 것처럼 “무수한 웃음”과 “벅찬 감격”이 소생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현실적 거리에 굴러다니는 “보잘것없는 설움”이 아니라, 불멸의 인간을 추구했던 “진시황”이나 어두운 도서관에서 “백과사전”을 농락하는 “학자”처럼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고민에 투철하다는 자신이 있다고 밝힌다.
그런데 거리에서 “지프차”를 타고 가는, “어마어마한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을 만나면서, 다시 자신이 “사막”을 찾아가는 “외국 사람” 같다고 느낀다. 자본주의 물질문명 시대에 개별적 생활을 부정하고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것은 일부러 죽음의 공간인 “사막”을 찾아가는 이방인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인간이 “환상”과 “현실”의 “중간”에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식인종”같이 잔인한 “탐욕”과 “강렬한 의욕”을 가지고 생활을 들여다보면서도 “달”과 “바람”처럼 서늘한 정신도 함께 추구하겠다고 다짐한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를 모두 가지고 있는 다원적 존재이므로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환상”과 가장으로서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는 “현실”을 모두 긍정하면서 양극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의 후반부에서는 “돈”을 버는 “거리의 부인”에게 도시 문명의 한복판에서 먹고살기 위해 애쓰다 “찌그러진 입술”을 펴라고 다시 주문한다. 그리고 오늘은 “도회의 흑점”, 즉 도시 문명의 폐단만 운운할 날이 아니라고 하면서, 오히려 물질문명을 상징하는 “쇠 냄새”가 그립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는 단순한 “감상과 향수”가 아니라, “정적(靜寂)”과 “부드러움”으로 상징되는 인간적 “정신”도 함께 추구한다고 하면서, 개별적 생활과 보편적 정신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추구하는 자신의 “긍지”는 보편적 정신만을 상징하는 “애드벌룬”보다는 조금 무거울 것이고, 미래에 대한 “예지”는 개별적 생활만을 상징하는 “연통”보다 더 날카로울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암흑”과 맞닿아 있다고 하면서, “밝은 대낮”에 개별적 생활을 위해 일하더라도 과도한 이기적 욕망을 추구하는 “거만과 오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지내는 “묘리”를 배우자고 권유한다.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일하더라도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보편적 정신도 함께 추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개별적 생활의 공간인 “서울”의 거리 한복판에서 보편적 정신을 상징하는 “시편(詩篇)”을 밟고 가는 중용적 균형이 “영광”된 삶이자 “역사”를 만드는 길이라고 다시 강조한다.
또한 “구두”, “양복”, “노점상”, “인쇄소”, “거리의 부인들” 등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가난한 민중들을 호명하면서,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부는 생활 속에서도 영혼을 가진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맞지 않게 “어색”하게 살지 말라고 주문한다. 사람은 “환상”과 “현실”의 “중간”에 있는 다원적 존재이므로 개별적 생활과 보편적 정신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 문학박사 이건주
「거리2」(1955)
돈을 버는 거리의 부인이여
잠시 눈살을 펴고
눈에서는 독기를 빼고
자유로운 자세를 취하여보아라
여기는 서울 안에서도 가장 번잡한 거리의 한 모퉁이
나는 오늘 세상에 처음 나온 사람 모양으로 쾌활하다
피곤을 잊어버리게 하는 밝은 태양 밑에는
모든 사람에게 불가능한 일이 없는 듯하다
나폴레옹만한 호기(豪氣)는 없어도
나는 거리의 운명을 보고
달큼한 마음에 싸여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마음―
무한히 망설이는 이 마음은 어둠과 절망의 어제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고
너무나 기쁜 이 마음은 무슨 까닭인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히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텐데
―극장이여
나도 지나간 날에는 배우를 꿈꾸고 살던 때가 있었단다
무수한 웃음과 벅찬 감격이여 소생하여라
거리에 굴러다니는 보잘것없는 설움이여
진시왕만큼은 강하지 않아도
나는 모든 사람의 고민을 아는 것 같다
어두운 도서관 깊은 방(房)에서 육중한 백과사전을 농락하는 학자처럼
나는 그네들의 고민에 대하여만은 투철한 자신이 있다
지프차를 타고 가는 어느 젊은 사람이
유쾌한 표정으로 활발하게 길을 건너가는 나에게
인사를 한다
옛날의 동창생인가 하고 고개를 기웃거려보았으나
그는 그 사람이 아니라
○○부의 어마어마한 자리에 앉은 과장이며 명사(名士)이다
사막의 한 끝을 찾아가는 먼 나라의 외국 사람처럼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지금은 이 번잡한 현실 위에 하나하나 환상을 붙여서 보지 않아도 좋다
꺼먼 얼굴이며 노란 얼굴이며 찌그러진 얼굴이며가 모두 환상과 현실의 중간에 서서 있기에
나는 식인종같이 잔인한 탐욕과 강렬한 의욕으로 그중의 하나하나를 일일이 뚫어져라 하고 들여다보는 것이지만
나의 마음은 달과 바람모양으로 서늘하다
그네, 마지막으로
돈을 버는 거리의 부인이여
잠시 눈살을 펴고
찌그러진 입술을 펴라
그네의 얼굴이 나의 눈앞에서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도르라미 모양으로 세찬 바람에 맴을 돌기 전에
도회의 흑점―
오늘은 그것을 운운할 날이 아니다
나는 오늘 세상에 처음 나온 사람 모양으로 쾌활하다
― 코에서 나오는 쇠 냄새가 그리웁다
내가 잠겨있는 정신의 초점은 감상과 향수가 아닐 것이다
정적(靜寂)이 나의 가슴에 있고
부드러움이 바로 내가 따라가는 것인 이상
나의 긍지는 애드벌룬보다는 좀 더 무거울 것이며
예지는 어느 연통(煙筒)보다도 훨씬 뾰죽하고 날카로울 것이다
암흑과 맞닿는 나의 생명이여
거리의 생명이여
거만과 오만을 잊어버리고
밝은 대낮에라도 겸손하게 지내는 묘리를 배우자
여기는 좁은 서울에서도 가장 번거로운 거리의 한 모퉁이
우울 대신에 수많은 기폭을 흔드는 쾌활
잊어버린 수많은 시편(詩篇)을 밟고 가는 길가에
영광의 집들이여 점포여 역사여
바람은 면도날처럼 날카러웁건만
어디까지 명랑한 나의 마음이냐
구두여 양복이여 노점상이여
인쇄소여 입장권이여 부채(負債)여 여인이여
그리고 여인 중에도 가장 아름다운 그네여
돈을 버는 거리의 부인들의 어색한 모습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