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후기인 1960년대 시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를 지속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대립적 양극을 고차원적으로 종합하는 변증법이 아니라, 양극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추구하는 다원주의를 긴장의 해법으로 일관성 있게 제시했던 것이다.
먼저, 「중용에 대하여」(1960)에서는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추구하려는 다원적 의지가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화자는 당시의 사월혁명을 “때 묻은” 혁명이라고 규정하면서 그 비판의 말을 같은 날에 일본어로 쓴 자신의 “일기첩”에서 찾는다.
그는 일기의 첫 문장인 “중용(中庸)은 여기에는 없다.”라는 말을 시 속으로 옮긴다. 그런데 일기에는 “나의 가는 길”이 “사람이 있는 곳”, “사람이 공명(共鳴)하는 곳”, “사랑이 이는 곳”이라고 하면서 민족의 통일에 대한 의지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따라서 중용이 없다는 말은 남한과 북한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중용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괄호 안에 “계사(鷄舍)”, 즉 닭장 건너편에 있는 “신축 가옥”에서 “마치질”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면서, 집을 새로 짓듯이 당시 우리나라가 혁명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다. 사월혁명으로 인해 신축 가옥을 짓듯이 새롭게 길이 열린 민족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과 북 사이에서 중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중용이 “소비에트”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당시 소련이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사상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런 해석은 그가 산문 「저 하늘 열릴 때-김병욱 형에게」(1961)에서 “소련에서는 중공이나 이북에 비해서 비판적인 작품을 용납할 수 있는 컴퍼스가 그전보다 좀 넓어진 것 같은 게 사실”(3판:245)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뒷받침된다.
그리고 계사 안에서 닭이 알 낳는 소리를 듣다가 “마른침”을 삼키고 “담배”를 피워 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괄호 안에 쓰면서,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을 언급한 것이 위험한 일이 될 정도로 사상의 자유가 극도로 억압된 현실을 비판한다.
그는 “여기에” 있는 것은 “중용”이 아니라 “답보”, “죽은 평화”, “무위”라는 일기의 구절을 시로 옮겨 놓으면서, 원래 중용이 아니라 다음에 “반동(反動)이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지워졌고, “모두 적당히 가면(假面)을 쓰고 있다”라는 말은 이 시에서 빼겠다고 밝힌다. 사월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남과 북 사이에서 중용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죽은 평화”, “나타”, “무위”는 물론이고 “반동”이고,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는 일기의 원문이 일본어로 쓰여져 있다고 하면서, 개인적인 비밀 일기조차도 몰래 “일본어” 써야 할 정도 사상의 자유가 억압된 “악독하고 반동적”인 “현 정부”를 거듭 비판한다. 당시 사월혁명으로 새롭게 열린 민족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부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 문학박사 이건주
「중용에 대하여」(1960)
그러나 나는 오늘 아침의 때묻은 혁명을 위해서
어차피 한마디 할 말이 있다
이것을 나는 나의 일기첩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중용(中庸)은 여기에는 없다
(나는 여기에서 다시 한번 숙고한다
계사(鷄舍) 건너 신축 가옥에서 마치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소비에트에는 있다
(계사 안에서 우는 알 겯는
닭소리를 듣다가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담배를 피워 물지 않으면 아니 된다)
여기에 있는 것은 중용이 아니라
답보(踏步)다 죽은 평화다 나타(懶惰)다 무위다
(단 <중용이 아니라>의 다음에 <반동(反動)이다>라는
말은 지워져 있다
끝으로 <모두 적당히 가면을 쓰고 있다>라는
한 줄도 빼어놓기로 한다)
담배를 피워 물지 않으면 아니 된다고 하였지만
나는 사실은 담배를 피울 겨를이 없이
여기까지 내리썼고
일기의 원문은 일본어로 씌어져 있다
글씨가 가다가다 몹시 떨린 한자(漢字)가 있는데
그것은 물론 현정부가 그만큼 악독하고 반동적이고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