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후기인 1960년대 시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를 지속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대립적 양극을 고차원적으로 종합하는 변증법이 아니라, 양극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추구하는 다원주의를 긴장의 해법으로 일관성 있게 제시했던 것이다.
「미역국」(1965)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려는 다원적 의지가 계속 나타난다. 화자는 “미역국” 위에 뜨는 “기름”이 우리의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말한다. 여기서 “기름”을 미역국에 고기를 넣어서 생긴 기름으로 본다면, 고기국을 먹을 정도로 생활에 여유가 생기는 것은 가난 극복이라는 우리의 “역사”적 과제를 해결했다는 “환희”를 가져다준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풀” 속에서 “노란 꽃”이 지고, “바람 소리”가 “그릇” 깨지는 소리보다 더 서걱거린다고 하면서 이것을 “영원의 소리”라고 규정한다. 이것은 “풀”과 “그릇”으로 상징되는 개별적 생활이 “노란 꽃”과 “바람”으로 상징되는 보편적 정신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자본주의 물질문명 시대에는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는 것이 영원한 숙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문명을 상징하는 “해”가 과거 “청교도가 대륙 동부에 상륙한 날”보다 밝다고 하면서, 우리의 “재”와 우리의 “서걱거리는 말”을 언급하는 것은 청교도가 신대륙에 상륙해서 밝은 빛을 던져준 것처럼 물질문명이 잿더미 같은 우리의 가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빛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가 “인생”과 “말”의 “간결”을 “전투의 소리”라고 규정하는 것도 당시 한국 사회에서 “인생”이 가리키는 개별적 생활과 “말”로 대표되는 보편적 정신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암시로 이해된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미역국”이 “인생”을 거꾸로 걷게 한다면서, 인생이 “기관포나 뗏목”처럼 “통째” 움직이는 것을 “빈궁(貧窮)의 소리”라고 부른다. 당면한 “빈궁”을 해결하려면, 기관포에서 포탄이 줄지어 계속 나오고, 뗏목에 많은 통나무들이 함께 엮여 있듯이 보편적 정신과 함께 개별적 생활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환희”, “미역국”, 미역국에 뜬 “기름”, “구슬픈 조상”, “가뭄의 백성”을 부르면서 “퇴계”든 “정다산”이든 “수염 난 영감”들에게 “순조로워라”라고 주문하는 것도 성인(聖人)처럼 보편적 정신만 내세우지 말고 백성들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보편적 정신만 추구하는 “자칭 예술파 시인”들이 아무리 “욕”해도 생활의 여유가 주는 “환희”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강변한다. 그리고 “인생”도 “인생의 부분”도 통째 움직인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그것을 “결혼의 소리”라고 부른다. 대립적인 남성과 여성이 “결혼”해서 “통째”로 움직이는 것이 “인생”이듯이 개별적 생활과 보편적 정신을 모두 긍정하면서 조화와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시작 노트(1965)에서 “요즈음 집에 들어앉아 있는 시간이 많고, 자연히 신변잡사에서 취재한 것이 많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그 반동으로 <우리>라는 말을 써보려고 했는데 하나도 성공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이에 자극을 준 것은 C. 데이 루이스의 시론이고, <시문학> 9월호에 발표된 「미역국」이후에 두어 편 가량 시도해 보았는데, 이것은 <나>지 진정한 <우리>가 아닌 것 같다.”(3판:541)라고 썼다. 이것은 「미역국」이 ‘나’와 ‘우리’ 가운데 어느 하나가 아니라, ‘나’가 가리키는 개별적 생활과 ‘우리’가 가리키는 보편적 정신을 모두 긍정하면서 중용적 균형을 제시한 작품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산문「연극 하다가 시로 전향-나의 처녀작」(1965)에서는 “쾌락의 부르주아적 원칙을 배격하고 고통과 불쾌와 죽음을 현대성의 자각의 요인”으로 들고 있는 트릴링을 떠나서 생각해 보면,「미역국」이 자신의 현대적인 “처녀작”이라고 하더니,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아직도 나는 진정한 처녀작을 한 편도 쓰지 못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것도 그가「미역국」에서 자본주의 물질문명이 가져다주는 “쾌락의 부르주아적 원칙”을 배격하고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고 있지만, 개별적 생활도 함께 긍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완전히 배격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이할 수 있다. 자신은 가장으로서의 개별적 생활과 세계시민으로서의 보편적 정신을 모두 긍정하면서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 문학박사 이건주
「미역국」(1965)
미역국 위에 뜨는 기름이
우리의 역사를 가르쳐준다 우리의 환희를
풀 속에서는 노란 꽃이 지고 바람소리가 그릇 깨지는
소리보다 더 서걱거린다-우리는 그것을 영원의
소리라고 부른다
해는 청교도가 대륙 동부에 상륙한 날보다 밝다
우리의 灰, 우리의 서걱거리는 말이여
인생과 말의 간결-우리는 그것을 전투의
소리라고 부른다
미역국은 인생을 거꾸로 걷게 한다 그래도 우리는
삼십대보다는 약간 젊어졌다 육십이 넘으면 좀더
젊어질까 기관포나 뗏목처럼 인생도 인생의 부분도
통째 움직인다-우리는 그것을 貧窮의
소리라고 부른다
오오 환희여 미역국이여 미역국에 뜬 기름이여 구슬픈 祖上이여
가뭄의 백성이여 퇴계든 정다산이든 수염 난 영감이면
복덕방 사기꾼도 도적놈 지주라도 좋으니 제발 순조로워라
자칭 예술파 시인들이 아무리 우리의 능변을 욕해도-이것이
환희인 걸 어떻게 하랴
인생도 인생의 부분도 통째 움직인다-우리는 그것을
결혼의 소리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