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적 세계시민:김수영의 생활

by 이건주
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1950년대 시에서부터 개별성과 보편성 가운데 어느 한 극점에 안주하려는 감정을 절제하고, 양극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는 분열적 세계시민을 제시했다. 그는 양극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이 양자택일적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는 세인(世人)들에게는 비정상적이고 분열적인 존재로 인식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 통념에 맞서서 중용적 절제를 통해 양극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는 분열적 세계시민을 제시했던 것이다.


「생활」(1959)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는 분열적 세계시민이 계속 나타난다. 화자는 “시장 거리의 먼지 나는 길” 옆 좌판 위에 있는 “호콩 마마콩”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린다. 여기서 시장 거리는 “모든 것”을 제압하는 개별적 생활을 상징하는 공간이고, “호콩 마마콩”은 보편적 정신인 “애정”을 상징하는 자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꼭 바글바글 모여 쌓인 호콩, 마마콩” 같아서 “허탈한 웃음”을 짓는 것이 아니라, 현실 공간에서도 개별적 “생활”에 제압당하지 않고 솟아올라 있는 보편적 “정신”을 발견하면서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호콩 마마콩”처럼 애정의 시기인 “유년기”가 있다고 하면서, 가족인 “여편네와 아들놈”을 데리고 “낙오자”처럼 걸어가면서도 자꾸 웃는다. 자신은 가족적 “생활”에 사로잡히지 않고 “콩”과 “유년기”로 상징되는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위와 생활”의 “극점”을 돌아서 “또 하나의 생활”의 좁은 골목 속으로 들어서면서 이 골목이라고 생각하며 무릎을 친다. “콩”이나 “유년기”처럼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무위(無爲)”의 “극점”과 개별적 “생활”의 “극점”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또 하나의 생활”인 다원적 생활을 발견한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그가 “생활”을 “고절(孤節)”, “비애(悲哀)”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미 「달나라의 장난」(1953)에서 “서서 돌고 있는” 다원적 팽이를 “생각하면 서러운 것”이라고 했듯이 생활의 골목과 무위의 골목 사이에 있는 다원적 생활이 어느 한 “극점”에 안주할 수 없으므로 외롭고 슬픈 길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가 “조용히 미쳐간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도 생활과 정신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는 다원적 삶은 어느 한 극점에 안주하는 세인(世人)들에 의해 미쳤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하지만 그는 “조용히 조용히……”를 반복하면서 가장으로서의 개별적 생활과 세계시민으로서의 보편적 정신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는 분열적 세계시민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 문학박사 이건주


「생활」(1959)


시장(市場)거리의 먼지나는 길옆의

좌판 위에 쌓인 호콩 마마콩 멍석의

호콩 마마콩이 어쩌면 저렇게 많은지

나는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모든 것을 제압(制壓)하는 생활(生活) 속의

애정(愛情)처럼

솟아오른 놈

(유년(幼年)의 기적(奇蹟)을 잃어버리고

얼마나 많은 세월(歲月)이 흘러갔나)

여편네와 아들놈을 데리고

낙오자(落伍者)처럼 걸어가면서

나는 자꾸 허허……웃는다

무위(無爲)와 생활(生活)의 극점(極點)을 돌아서

나는 또 하나의 생활(生活)의 좁은 골목 속으로

들어서면서

이 골목이라고 생각하면서 무릎을 친다

생활(生活)은 고절(孤絶)이며

비애(悲哀)이었다

그처럼 나는 조용히 미쳐간다

조용히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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