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순환:김수영의 설사의 알리바이

by 이건주
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후기인 1960년대 시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봄·여름·가을·겨울 사이의 무한한 순환을 지속적으로 제시하였다. 농촌에서 봄에 싹을 틔우고, 여름에 기르며, 가을에 수확하고, 겨울에 저장한다는 의미의 춘생하장(春生夏長), 추수동장(秋收冬藏)이라는 말처럼 노동의 계절에는 가장으로서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고, 휴식의 계절에는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시간의 순환을 시중(時中)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일관성 있게 제시했던 것이다.


「설사의 알리바이」(1966)에서는 여름과 가을의 순환이 나타난다. 화자는 “설파제”를 먹어도 “설사”가 막히지 않는다고 하면서, “배”에는 푸른색도 흰색도 “적(敵)”이라고 말한다. “배”로 상징되는 먹고사는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푸른색”, “흰색”으로 상징되는 보편적 정신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물리쳐야 할 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배”가 모조리 “설사”를 하는 것은 “머리”가 설사를 시작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성(性)”도 “윤리”도 약이 되지 않는 “머리”가 불을 토한다고도 말한다. 노동의 계절인 여름에 “배”가 모조리 설사할 정도로 개별적 생활에 집중한 이유는 휴식의 계절인 가을에 남편으로서의 “성(性)”과 가장으로서의 “윤리”를 생각하지 않고, “머리”가 설사할 정도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름”이 끝난 “벽” 저쪽에 서 있는 “낯선 얼굴”, 즉 개별적 생활만 추구하다가 이기적 속물로 변해버린 자신을 보면서, 이제 “가을”이 왔으니 “꽃”으로 상징되는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문명”의 하늘은 “무엇인가”로 채워지기를 원하므로 지금 “타의(他意)의 규제(規制)”로 시를 쓰고 있다고 하면서, 시인이지만 “타의(他意)” 즉 남편으로서 그리고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성(性)”과 “윤리”의 “규제(規制)”를 부정할 수 없다고 밝힌다. 자신은 가장으로서의 개별적 생활과 시인이자 세계시민으로서의 보편적 정신 사이를 무한히 순환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를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언어”가 “죽음의 벽을 뚫고 나가기 위한 숙제”를 방해하는 것이 “성의 윤리”와 “윤리의 윤리”라고 하면서, 물질문명 속에서 정신의 “죽음”이라는 “벽”을 뚫지 못하는 것은 남편으로서의 “성의 윤리”와 가장으로서의 “윤리의 윤리” 같은 “타의(他意)의 규제(規制)” 때문이라고 되풀이한다. 가장으로서 마땅히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해야만 한다는 “윤리”적 의무를 그대로 따르면, “죽음의 벽을 뚫고 나가기 위한 숙제”인 보편적 정신을 추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가 “중요한 것”이 “괴로움과 괴로움의 이행”이라고 말하는 것은 노동의 계절인 여름에는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는 괴로움을 이행하고, 휴식의 계절인 가을에는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괴로움을 이행하는 시중(時中)을 통해 양극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괴로운 설사”가 끝나면 “입”을 다물고, 누가 무엇을 보았는가 “일절”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것이 “우리의 증명”이라는 말로 시를 마무리한다. 이것은 여름에 생활을 위한 “배”의 설사가 끝나면 “일절” 말하지 말고 가을에 정신을 위한 “머리”의 설사를 시작하며, 다시 이것이 끝나면 “일절” 말하지 말고 다시 생활을 위한 “배”의 설사를 시작하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다원적 세계시민임을 “증명”하려면 개별적 생활을 상징하는 “배”의 설사와 보편적 정신을 상징하는 “머리”의 설사 가운데 어느 한 극점에 안주하려는 “나타와 안정”(「폭포」)을 단호하게 절제하고 양극 사이를 무한히 순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설사”는 “죽음을 뚫고 나가는 실천으로서의 시 쓰기가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라, 가장으로서의 개별적 생활과 세계시민으로서의 보편적 정신 사이를 무한히 순환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의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 문학박사 이건주


「설사의 알리바이」(1966)

설파제를 먹어도 설사가 막히지 않는다

하룻동안 겨우 막히다가 다시 뒤가 들먹들먹한다

꾸루룩거리는 배에는 푸른색도 흰색도 적(敵)이다

배가 모조리 설사를 하는 것은 머리가 설사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성(性)도 윤리도 약이

되지 않는 머리가 불을 토한다

여름이 끝난 벽 저쪽에 서 있는 낯선 얼굴

가을이 설사를 하려고 약을 먹는다

성과 윤리의 약을 먹는다 꽃을 거두어들인다

문명의 하늘은 무엇인가로 채워지기를 원한다

나는 지금 규제로 시를 쓰고 있다 타의의 규제

아슬아슬한 설사다

언어가 죽음의 벽을 뚫고 나가기 위한

숙제는 오래된다 이 숙제를 노상 방해하는 것이

성의 윤리와 윤리의 윤리다 중요한 것은

괴로움과 괴로움의 이행이다 우리의 행동

이것을 우리의 시로 옮겨놓으려는 생각은

단념하라 괴로운 설사

괴로운 설사가 끝나거든 입을 다물어라 누가

보았는가 무엇을 보았는가 일절 말하지 말아라

그것이 우리의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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