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순환:김수영의 꽃잎3

by 이건주
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후기인 1960년대 시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봄·여름·가을·겨울 사이의 무한한 순환을 지속적으로 제시하였다. 농촌에서 봄에 싹을 틔우고, 여름에 기르며, 가을에 수확하고, 겨울에 저장한다는 의미의 춘생하장(春生夏長), 추수동장(秋收冬藏)이라는 말처럼 노동의 계절에는 가장으로서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고, 휴식의 계절에는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시간의 순환을 시중(時中)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일관성 있게 제시했던 것이다.


「꽃잎3」(1967)에서는 봄과 여름의 순환이 나타난다. 화자는 도둑질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을 상징하는 “순자”가 “꽃”과 “더워져 가는 화원”과 “우주”를 “완성”하고, “더워져 가는” 화원에 “잠시” 찾아오기를 그친 “벌과 나비”의 소식을 완성한다고 말한다. “순자”는 “혁명”이라는 “거룩한 순간을 체현하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집에 “고용”을 살러 온 “열네 살” 식모인데, 습관적으로 물건을 훔치는 버릇인 “도벽(盜癖)”(「식모」)이 있는 인물로서 개별적 생활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꽃이 피는 봄에는 “벌과 나비”로 상징되는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다가도 노동의 계절인 여름이 오면 잠시 멈추고, 순자처럼 개별적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우주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순자가 “우주의 완성”을 건 “한 자(字)의 생명의 귀추(歸趨)”를 지연시킨다는 말도 여름에는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보편적 정신을 잠시 미루고 도적질을 해서라도 개별적 생활난을 해결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우주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정신과 개별적 생활이 모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가난한 식모인 순자를 “썩은 꽃잎”이나 “황금빛을 닮은 것”에 비유하면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자신의 “웃음”을 받지 않고, “문명”의 “어마어마한 낭비”에 대항한다고 “공허한 투자”를 해 온 자신의 “정신”을 “비웃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순자가 “정신”만을 추구해 온 자신의 방대한 “낭비와 난센스와 허위”,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눈”, 생활을 부정하고 정신만을 추구하는 “둔갑한 영혼”, 생활난을 해결하지 못해서 “애인 없는 더러운 고독”, “음탕한 전통”의 문제점을 쉽게 간파했다고 덧붙인다. “순자”는 물질문명 시대에 맞지 않게 보편적 정신만을 추구해 온 자신과 대립적으로 개별적 생활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더워져 가는 화원”, “초록빛”의 변화로 보편적 정신을 상징하는 벌과 나비가 찾아오지 않는 “여름날”에는 “캄캄한 소식”만 기다리지 말고 개별적 생활을 추구해서 인생을 “완성”해야 한다고 외친다. 휴식의 계절인 봄에는 “벌과 나비”로 상징되는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되, 노동의 계절인 “여름”에는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식으로 생활과 정신 사이를 무한히 순환해야 “인생”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가 이것을 “간단”한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하고 간략함이라는 간단(簡單)이라는 뜻도 있지만, 잠시 그치거나 끊어짐이라는 간단(間斷)이라는 의미도 가지는 중의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사랑의 변주곡」(1967)에서 “간단(間斷)도 사랑”이라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휴식의 계절인 봄에는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다가, 노동의 계절인 여름이 오면 “잠시” 그치고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는 “간단(間斷)”이 바로 웃음이 나오도록 “어처구니없”고, “너무 쉬운”, “간단(簡單)”한 진리라는 것이다.


그가 “여름 바람”, “여름 풀”의 아우성을 반복적으로 제시하면서 시를 마무리하는 것도 노동의 계절인 “여름”에는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아우성”이 필수적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휴식의 계절인 봄에는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다가도 노동의 계절인 여름에는 가장으로서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면서 다원적 세계시민-되기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 문학박사 이건주


「꽃잎3」(1967)

순자야 너는 꽃과 더워져 가는 화원의

초록빛과 초록빛의 너무나 빠른 변화에

놀라 잠시 찾아오기를 그친 벌과 나비의

소식을 완성하고

우주의 완성을 건 한 字의 생명의

귀추를 지연시키고

소녀가 무엇인지를

소녀는 나이를 초월한 것임을

너는 어린애가 아님을

너는 어른도 아님을

꽃도 장미도 어제 떨어진 꽃잎도

아니고

떨어져 물 위에서 썩은 꽃잎이라도 좋고

썩븐 빛이 황금빛에 닮은 것이 순자야

너 때문이고

너는 내 웃음을 받지 않고

어린 너는 나의 전모를 알고 있는 듯

야아 순자야 깜찍하고나

너 혼자서 깜찍하고나

네가 물리친 썩은 문명의 두께

멀고도 가까운 그 어마어마한 낭비

그 낭비에 대항한다고 소모한

그 몇 갑절의 공허한 투자

대한민국의 전재산인 나의 온 정신을

너는 비웃는다

너는 열네 살 우리집에 고용을 살러 온 지

3일이 되는지 5일이 되는지 그러나 너와 내가

접한 시간은 단 몇 분이 안 되지 그런데

어떻게 알았느냐 나의 방대한 낭비와 난센스와

허위를

나의 못 보는 눈을 나의 둔갑한 영혼을

나의 애인 없는 더러운 고독을

나의 대대로 물려받은 음탕한 전통을

꽃과 더워져 가는 화원의

꽃과 더러워져 가는 화원의

초록빛과 초록빛의 너무나 빠른 변화에

놀라 오늘도 찾아오지 않는 벌과 나비의

소식을 더 완성하기까지

캄캄한 소식의 실낱 같은 완성

실낱 같은 여름날이여

너무 간단해서 어처구니없이 웃는

너무 어처구니없이 간단한 진리에 웃는

너무 진리가 어처구니없이 간단해서 웃는

실낱 같은 여름 바람의 아우성이여

실낱 같은 여름 풀의 아우성이여

너무 쉬운 하얀 풀의 아우성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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