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시골의 순환:김수영의 시골 선물

by 이건주
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1950년대 시에서부터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도시와 시골 사이의 무한한 순환을 제시하였다. 도시에서는 가장으로서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다가, 시골에서는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공간의 무한한 순환을 유목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먼저, 「시골 선물」(1954)에서 도시와 시골 사이의 순환이 나타난다. 화자는 “종로 네거리”에서 행길에 가까운 떠들썩한 찻집을 “일부러” 택해서 앉아 있으면서, 그 이유가 어디보다도 “조용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반역성” 때문이라고 밝힌다. 자신은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 문명의 한복판에서 “조용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일종의 반역자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자신의 반역성이 도시 문명 속에서 이기적 욕망을 충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노는 계집애”와 “학생복을 입은 청년”들에 의해 거부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친구조차 “신(神)”이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며 정신을 추구하는 자신을 “고루”하다고 비웃는다. 도시 문명 속에서 정신을 추구하려는 그의 반역이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어느 외딴 “광산촌”에 두고 온 “갈색 낙타모자”를 떠올린다. 그리고 “부처님”을 모신 법당 뒷산에 묻혀있는 “검은 바위”처럼 자신의 큰 머리에는 작은 것이지만 “시골”이라서 쓰고 갔다가 잃어버렸다고 밝힌다. 그 모자는 현대 물질문명 시대의 “유행”에서 훨씬 뒤떨어져서 “서울”의 화려한 거리에서는 도저히 쓰고 다니기 부끄러운 것이라는 점에서 도시 물질문명 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개별적 민족 전통과 보편적 정신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서울에 돌아와서도 “도회”의 “소음과 광증(狂症)과 속도와 허위”가 밉고 서글프게 느껴질 때마다 잃어버린 모자 생각이 난다고 하면서, 잃어버린 모자 속에 “설운 마음”의 한 모퉁이를 놓고 왔기 때문에 시골 여행 전과 달리 도시 사람들을 “다른 각도와 높이”에서 보게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것은 “시골”에서 가져온 선물인 전통적 정신의 힘으로 도시 물질문명에 대한 “반역”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시골 여행 전에는 도시 물질문명의 폐단을 극복하려는 자신의 반역이 실패하고 있다는 “설운 마음”에 빠져 있었다면, 지금은 “시골 선물”로 인해 절망적인 설움에서 벗어나 다시 반역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도시가 “자본주의의 속도”와 맞물려서 “허무와 우울의 공간”이라면, 시골은 “근대에 대한 응전에 필요한 힘”을 충전 받을 수 있고, 도시의 물질문명을 “다른 각도와 높이에서” 바라보고 반역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곳이므로 푸코가 말하는 헤테로토피아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도시를 완전히 떠나서 시골로 가겠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도시 한복판인 “종로 네거리”에서도 행길에 가까운 떠들썩한 찻집을 어디보다도 “조용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민족과 세계, 가족과 인간 사이를 무한히 순환하면서 다원적 세계시민-되기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 문학박사 이건주


「시골 선물」(1954)

종로 네거리도 행길에 가까운 일부러 떠들썩한 찻집을 택하여 나는 앉아 있다

이것이 도회 안에 사는 나로서는 어디보다도 조용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나의 반역성을 조소하는 듯이 스무 살도 넘을까 말까 한 노는 계집애와 머리가 고슴도치처럼 부슷스하게 일어난 쓰메에리의 학생복을 입은 청년이 들어와서 커피니 오트밀이니 사과니 어수선하게 벌여놓고 계통 없이 처먹고 있다

신이라든지 하느님이라든지가 어디 있느냐고 나를 고루하다고 비웃은 어제저녁의 술친구의 천박한 머리를 생각한다

그다음에는 나는 중앙선 어느 협곡에 있는 역에서 백여 리나 떨어진 광산촌에 두고 온 잃어버린 겨울 모자를 생각한다

그것은 갈색 낙타 모자

그리고 유행에서도 훨씬 뒤떨어진 서울의 화려한 거리에서는 도저히 쓰고 다니기 부끄러운 모자이다

거기다가 나의 부처님을 모신 법당 뒷산에 묻혀 있는 검은 바위같이 큰 머리에는 둘레가 작아서 맞지 않아서 그 모자를 쓴 기분이란 쳇바퀴를 쓴 것처럼 딱딱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시골이라고 무관하게 생각하고 쓰고 간 것인데 결국은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서울에 돌아온 지 일주일도 못 되는 나에게는 도회의 소음과 광증(狂症)과 속도와 허위가 새삼스럽게 미웁고 서글프게 느껴지고

그러할 때마다 잃어버려서 아깝지 않은 잃어버리고 온 모자 생각이 불현듯이 난다

저기 나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먹고 떠들고 웃고 있는 여자와 젊은 학생을 내가 시골을 여행하기 전에 그들을 보았더라면 대하였을 감정과는 다른 각도와 높이에서 보게 되는 나는 내 자신의 감정이 보다 더 거만하여지고 순화되어진 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구태여 생각하여 본다

그리고 비교하여 본다

나는 모자와 함께 나의 마음의 한 모퉁이를 모자 속에 놓고 온 것이라고

설운 마음의 한 모퉁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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