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출신 이건주 박사의 서울시교육감 선거 공약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일부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인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2025)는 제주에서 태어난 요망진 애순이와 무쇠 관식이의 인생을 사계절로 풀어낸 넷플릭스 시리즈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 방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부모도 없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악착같이 살아내고 자식을 키우는 애순이의 당찬 모습이, 사십 대에 남편을 잃고 홀로 우리 4남매를 키워내신 어머니와 겹쳐져 보는 내내 자꾸 눈물이 났다.
애순이 딸 금명이는 가난한 환경에서도 빼어난 인물이 난다는 뜻의 개천에서 용난 사람, 즉 개천용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 영문과 87학번 학생으로 나오는 금명이의 입학식 장면에서는 같은 개천용으로서 1987년에 국어교육과에 들어갔던 나의 입학식 기억이 떠올랐다. 특히 금명이가 과외하다가 곤욕을 치르는 장면에서는 압구정동 과외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면서 힘들게 공부했던 젊은 시절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대학에 입학하고 도서관에서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나이 사십 대에 남편을 잃고 홀로 되신 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공부하던 나보다도 훨씬 가난했던 청년 노동자의 삶을 접하고 눈물 흘렸던 그때처럼 보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눈물이 났다. 그리고 비록 찢어지게 가난해도 열심히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 사회, 개천에서도 용이 될 수 있는 교육을 요구하는 수많은 금명이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들었다.
인공지능 기술력이 곧 국력이자 경제력인 시대에는 국가 간 혁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UN 연설에서 얘기했듯이 AI는 지식과 정보 처리 전 과정에서 가장 파괴적 혁신을 가져올 발명품이고, 심지어 스스로 인간처럼 판단과 결정까지 내릴 수도 있다. 따라서 AI를 잘 활용한다면, 저성장, 고물가 같은 난제를 해결해서 새로운 번영의 길을 열어내고, 의료, 식량, 교육 등 여러 문제에 해답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에 대비하지 못한 채 끌려간다면 극심한 기술 격차가 ‘철의 장막’을 능가하는 ‘실리콘 장막’으로 작동해서 전 세계적인 불평등과 불균형을 심화시킬 것이다.
문명사적 대전환이라고 할 수 있는 AI 혁명 시대에는 개인 간 혁신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술을 선점한 승자의 독식 구조가 강화되면서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
여기에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가 높아지므로, 가난한 학생들에게도 충분한 교육을 제공해서 우수한 인재로 육성할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따라서 AI 혁명 시대에는 교육이 기득권층의 특권을 대물림하는 수단이 아니라, 누구나 노력하면 개천용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공정한 학교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지나 버린 것 같다. 심지어 요즘은 강남 양재천에서도 용 나기가 어렵다는 말도 들린다. 가난해도 열심히 노력하면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되는 사회는커녕 서울에서도 가장 부자 동네라는 강남에서 태어나도 성공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학교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아제모글루와 로빈슨 교수는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2012)에서 ‘제도’를 해법으로 제시했었다. 부국과 빈국으로 양극화되어 있는 세계적 불평등의 원인이 바로 경제·정치·교육 등의 제도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들은 그 전형적인 사례로 우리 남한과 북한을 제시했다. 남한과 북한은 붙어 있지만, 선진국과 저개발국의 극명한 차이를 드러내며 그 원인은 문화나 지리적 요인 등이 아니라 ‘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궁핍하게 자란 북한 청소년은 숙련직을 꿈꿀 만큼 진취적인 기상이나 창의력도 부족하고, 교육도 충분히 받지 못하며, 그나마 정권의 정통성을 지탱하려는 순수한 체제 선전이 대부분이다. 더구나 학교를 마치면 10년 동안이나 군 복무를 강요받는다. 그러니 북한 청소년들은 교육을 통해 자기만의 재산을 갖거나, 회사를 차리거나, 생활 수준 향상을 꾀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가 어렵다. 이런 사회에서는 일부 극소수 엘리트층을 제외하고는 개천이든 강물이든 용이 나올 수가 없다.
반면에 남한의 청소년은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자신이 선택한 직업에서 온 힘을 다해 두각을 나타낼 만한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그리고 능력만 인정받으면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생활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또한 국가가 경제활동을 지원하고 법질서를 유지해 주기 때문에 원하면 무슨 사업이든 벌일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사회에서는 개천에서도 용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최근 ‘2025 세계경제학자대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로빈슨 교수는 한국의 경제 성장은 포용적 경제·정치 제도 덕분에 가능했다고 하면서, 한국 사회가 현재 직면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에도 놀라운 문화적 영향력과 혁신 능력을 갖추고 있어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 4년의 6-3-3-4제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초등학교 입학 전에 다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도 추가할 수 있다. 초등학교 입학은 대체로 만 6세부터 시작된다. 중학교는 대다수의 일반 중학교와 소수의 국제중학교로 구분된다. 일반 중학교로 진학하는 데에는 별도의 입학시험을 거치지 않고 추첨 배정된다.
고등학교는 크게 대학 진학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계와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직업계로 구분된다. 일반계 고등학교에는 일반고, 자율고(자율형 사립고, 자율형 공립고), 특수목적고(과학고, 외국어고, 국제고, 예술고, 체육고), 영재학교가 있다. 그리고 직업계 고등학교에는 특성화고와 특수목적고인 마이스터고가 있다. 고등학교 입학은 크게 전기(자사고, 특목고, 특성화고)와 후기(일반고)로 구분된다.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특목고와 자사고를 1지망, 일반고를 2지망으로 해서 고등학교에 지원할 수 있다. 특목고와 자사고에 지원한 후 불합격하면 일반고에 지원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일반고는 별도의 입시 없이 3단계 전산 추첨으로 배정된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1단계(단일학교군)는 서울시 전체 고등학교 중에서 서로 다른 2개교를 선택해 지원하고, 지원자 중에서 지망 순위별로 전산 추첨해 학교별 모집 정원의 20%를 배정한다. 2단계(일반학교군)는 거주지 일반학교군 소속 고등학교 중에서 서로 다른 2개교를 선택해 지원하고, 지원자 중에서 지망 순위별로 전산 추첨해 학교별 모집 정원의 40%를 배정한다. 3단계(통합학교군)는 1·2단계에서 추첨 배정되지 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1·2단계 지원 사항과 통학 편의, 학교별 수용 여건 및 적정 학급 수 유지, 종교 등을 고려하여 전산 추첨으로 학교별 모집 정원의 40%를 배정한다.
한편, 영재학교(8개)는 별도의 입학 시험을 통해 우선 선발한다. 대체로 1단계에서는 학생기록물(자기소개서, 교사추천서, 학생부) 평가하여 이를 통과한 학생들에게만 2단계 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한다. 일부 영재학교에서는 1단계 서류 평가만으로 신입생을 우선 선발하는 학교도 있다. 이후 2단계에서는 지필시험으로 영재성 및 사고력 검사와 창의성·문제 해결력 검사를 진행하여 최대 정원의 2배수 이내로 선발한다. 마지막으로 3단계에서는 과학영재 캠프에 참여해 과제수행능력, 창의성, 리더십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최종 선발한다.
과학고(20개) 입시는 대체로 1단계 서류(자기소개서, 교사추천서, 학생부) 평가 및 출석 면담으로 1.5배수를 선발하고, 2단계 소집 면접으로 최종 선발한다. 일부 과학고에서는 3단계 창의·인성 면접을 실시하기도 한다. 내신 성적 반영 과목은 과학, 수학 과목이다. 그리고 외고(30개)와 국제고(7개) 입시는 1단계에서 영어 내신 성적(160점)과 출결 성적(감점)으로 모집 인원의 1.5~2배수를 뽑은 다음, 2단계 면접(40점)을 거쳐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자사고의 경우, 광역 단위로 선발하는 자사고(28개) 입시는 1단계에서 추첨으로 모집 인원의 1.5~2배수를 선발하고, 2단계에서 면접으로 최종 선발한다. 전국 단위 자사고(10개) 입시는 1단계에서 교과 성적(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으로 2배수를 선발한 후 2단계 면접을 거쳐 합격자를 선발한다.
현재 한국의 교육 제도는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2에서 수학 2위, 읽기 3위, 과학 2위로 모두 OECD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은 수학 34위, 읽기 9위, 과학 16위에 불과하다. 일부에서 최고의 교육 시스템이라고 찬사를 보냈던 핀란드도 수학 20위, 읽기 14위, 과학 9위에 그쳤다. 대학입시에서 추첨제를 실시하고 있다는 독일은 수학 25위, 읽기 22위, 과학 22위이고, 서논술형 시험인 바칼로레아로 유명한 프랑스도 수학 26위, 읽기 29위, 과학 26위에 머물렀다.
한국이 PISA 평가에서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이 공교육이 아니라 학원 등 사교육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한국은 PISA 2022 ‘창의적 사고력 평가’에서도 세계 2위를 기록했다. 문제 풀이 주입식 암기 교육만 한다고 비판해 왔던 학원 교육 덕분에 PISA에서 창의적 사고력까지 세계 최고 수준을 거두었다고 보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PISA 2022 창의적 사고력 평가에서는 대체로 수학·읽기·과학 평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들이 상위권을 기록했다. 수학·읽기·과학 모두 세계 1위였던 싱가포르가 창의적 사고력 평가에서도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었던 캐나다가 3위, 호주가 4위이다. 일부에서 우리나라가 따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는 창의적 사고력 평가에서도 각각 17위, 18위에 불과하다.
문제는 우리 교육 제도가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지만,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가 없다면, 과연 가난한 학생들도 노력하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정도로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고 있는지, 사실상 소수 엘리트층의 기득권 대물림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저소득층 가구의 초·중·고 학생을 지원하기 위해 ‘교육급여’와 ‘교육비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교육급여 및 교육비 지원은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하거나 ‘복지로’와 ‘교육비 원클릭’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 먼저, 교육급여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라 기준중위소득 50% 이하 가정에 지원하며, 연간 초등학생 48만 7천 원, 중학생 67만 9천 원, 고등학생 76만 8천 원의 교육활동 지원비를 바우처로 지급한다.
교육비 지원은 기준중위소득 60% 이하 가구의 초·중·고 학생에게 학비, 급식비, 방과후학교 자유수강권, 교육정보화(PC·인터넷) 등 다양한 교육비를 지원한다. 지원 대상은 국민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가족보호대상자, 법정차상위대상자, 중위소득 60% 이하 가구 등으로, 교육급여보다 범위가 넓다.
이와 함께 초·중·고에서는 무상교육과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학생들은 입학금,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 교과용 도서 구입비, 급식비 등을 납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고교 무상교육은 2019년 2학기 고3을 시작으로 2020년 고2, 2021학년도 고1까지 대상으로 확대되어 완성되었다. 무상교육 재원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상 ‘고등학교 등의 무상교육 경비 부담에 관한 특례’에 따라 중앙정부가 47.5%, 교육청이 47.5%, 지자체가 5%를 부담한다.
앞으로는 학교시설, 교육과정, 교사의 질 등 교육과정의 모든 조건이 공평하도록 하는 교육 조건의 평등 정책도 필요하다. 특히 농산어촌이나 구도심의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등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성취하도록 하여 최종적인 학습 결과에서도 큰 차이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결과의 평등 정책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통합하는 유보통합과 초등학교 돌봄을 확대하는 늘봄학교 등 이미 추진 중인 정책을 내실 있게 운영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확대하여 정기적으로 기초학력을 진단하고, 학습 부진 학생을 지원하는 책임교육 대책이 요구된다.
이와 함께 장애학생, 다문화학생, 탈북 학생 등 교육 취약계층, 그리고 학업 부적응 등으로 인한 학업 중단 학생처럼 특수한 상황에 처한 학생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 정책과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교육 취약계층은 복합적인 문제를 지닌 경우가 많으므로 일반 학생에 비해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개천에서 용 나는 학교를 만들려면, 일부 기득권층만이 아니라 애순이나 금명이처럼 가난한 학생들도 학교 교육을 통해 성공할 수 있을 정도로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교육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대체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학생들이 대학입시에서도 우수한 결과를 보이는 등 소득 계층 간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으므로, 경제적 배경에 따른 교육 격차를 줄이는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갈수록 늘어나는 사교육비를 경감하기 위해 별도의 사교육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물론 개천에서 용 나는 것보다 개천에서도 행복하게 사는 안빈낙도의 삶을 더 중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천에서도 용이 되고 싶은 소망, 이를 실현시켜 주는 공정한 교육 시스템을 성적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이라고 비판할 일은 아니다. 이보다는 가난해도 열심히 노력하면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되는 사회,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공정한 교육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진정 개천용 금명이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 이건주 교육평론가/전 한국교총 현장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