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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주 Feb 07. 2021

김수영과 다원주의 : 미인(美人)

김수영과 다원주의 : 미인(美人)


김수영은 <반시론>에서 아내의 친구인 “미모의 레이디하고 같이 칭기즈칸 식이라나 하는 철판에 구워 먹는 불고기를 먹고 와서 쓴 것”이라고 하면서 <미인>의 시작 노트를 전개한다. 그동안 청탁을 받고 쓰지 않기로 세운 규칙을 깨고 이 시를 쓴 것처럼 속물이라고 경멸했던 “상류 사회”의 미인에 대한 반감을 버리고, 현실적인 생활을 긍정하면서 “여유 위에 여유를 넓히려고” 미인과 같이 회식하러 갔다는 것이다.


<미인>에서 시적 화자는 미인(美人)이 자기 얼굴을 싫어할 것이라고 하면서, 이것이 미인이 될 수 있는 조건이라고 말한다. 그는 산문 <미인>에서 자본주의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이는 자유가 없고, 자유가 없이는 움직일 수가 없으니, 현대 미학의 조건인 동적(動的) 미를 갖추려면 미인은 반드시 돈을 가져야 한다”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돈 있는 미인”을 미인으로 생각하려면 있는 사람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을 만한 돈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현대시를 쓰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라는 “속세의 철학”을 제시한다. 


이로 보아 미인이 자기 얼굴을 싫어할 것이라는 말은 돈 없이는 자유도 없는 자본주의 시대에 ‘미인=미학’은 현실적으로 돈이 있어야 하지만, 속물적인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이에 대한 혐오의 태도를 함께 지녀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미인과 앉은 방에서 방문이나 창문을 따놓는 것이 “담배 연기”만을 내보내려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하면서 암시적으로 시를 마무리한다. 여기서 담배 연기가 <먼지>에서의 ‘먼지’처럼 속물적인 욕망을 상징한다면, 담배 연기를 내보내려는 행위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방문이나 창문을 따놓은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반시론>에서 “창문-담배·연기-바람”을 연결하면서 이를 “그녀의 천사 같은 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릴케의 「오르페우스에 바치는 송가」에서의 “신(神)의 안을 불고 가는 입김”이나, 하이데거의 「릴케론」속에 인용된 헤르더의 글에 있는 “신적인 입김”처럼 초월적인 “바람”과도 연결시킨다. 이것은 그가 지금 속물적인 미인과 마주 앉아 있지만, 릴케의 초월적인 정신을 상징하는 천사, 신적인 바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현실적인 미인을 긍정하더라도 속물적인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초월적인 천사도 함께 추구하겠다는 말이다.


그가 자신이 제시하는 미인이 “천한 미인”이 아니고, 평소의 율법을 깨뜨린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오르페우스에 바치는 송가」에 나오는 “노래는 욕망이 아니라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 그것은 급기야는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물에 대한 애걸(哀乞)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노래는 존재다.”라는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 것도 현실적인 미인과 초월적인 천사 사이의 긴장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긴장은 그가 <반시론>에서 요즘의 강적인 하이데거의 「릴케론」에서 “빠져 나갈 구멍”을 찾고 있다고 하면서도, “뚫고 나가고 난 뒤보다는 뚫고 나가기 전이 더 아슬아슬하고 재미있다.”라고 말하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이것은 하이데거와 릴케의 초월성을 부정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현실성과 초월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긴장을 추구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가 자신의 릴케가 “내려오면서 만난 릴케가 아니라 세익스피어의 부근을 향해 더듬어 올라가는 릴케다. 그러니까 상당히 반어적인 릴케가 된 셈이다.”라고 하면서, 이 시 전체가 ‘반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자신이 제시하는 미인은 릴케의 천사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천사의 반어로서 긴장 관계에 있는 미인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가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그녀를 만나게 되면 “때늦은 릴케식의 운산만이라도 홀가분하게 졸업해야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릴케의 부정이 아니라, 이후에 제시되는 “릴케와 브레히트의 싸움”처럼 초월적 정신과 현실적 생활 사이에서 긴장을 추구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는 “입김이라든가 훈기로 표현되는 세계”를 “잠깐” 엿보았거나, “‘인간적인 일’에서 신적인 행위와 최초의 말이 갖는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이나 “릴케적 의미에서의 ‘다른 숨결의 시’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작(詩作) 초기부터 추구해 왔던 하이데거와 릴케의 초월적인 시와 1960년대 이후에 주목한 현실적인 반시 사이에서 긴장을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김수영의 <미인>에서는 <성(性)>과 마찬가지로 작품 내에서 초월적인 시와 현실적인 반시의 긴장이 나타나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다만, <성(性)>에서는 현실적 생활이 보다 강조되는 반면에, <미인>에서는 초월적 정신이 보다 강조된다는 점에는 긴장의 양상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


미인(美人)-Y여사에게(1967)


미인을 보고 좋다고들 하지만

미인은 자기 얼굴이 싫을 거야

그렇지 않고야 미인일까


미인이면 미인일수록 그럴 것이니

미인과 앉은 방에선 무심코

따놓는 방문이나 창문이

담배연기만 내보내려는 것은

아니렷다


* 이건주, <김수영의 다원주의 시론 연구 - <반시론>에 나타난 긴장을 중심으로>, 《현대문학의 연구》 제73호, 한국문학연구학회, 2021, 7-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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