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좀 많이 느린 아이였다. 친구들과의 약속에도, 학교에도,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서도
지각에 대해 변명할 생각은 없었다. 백 번이고 내 잘못이니까. 지각을 할 때면 '미안합니다', '미안', '죄송합니다'가 반사적으로 나와야 한다. 그래야만 프로 지각러의 얼굴에 먹칠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지각의 이유를 설명해 보자면 ‘늦잠’에 있었다.
나는 잠이 좀 많은 아이였다.
아니 많이,
중학교 때는 지각을 하면 벌로 운동장에서 쓰레기 줍기를 했다. 쓰레기 줍기쯤은 단잠을 이길 수 없기에
나는 어느새 쓰레기 줍기에 최적화된 인간이 되어 있었다.
중학교 때는 내가 지각을 했을 때, 동경하던 선도부 선배가 있으면 쓰레기 줍기는 더 이상 벌이 아닌 설레는 시간이었다. 지각이 잦아지다 보니 화가 난 담임선생님은 사랑의 매를 들어 지각생들을 교화의 길로 이끄셨다.
하지만 지각생들에게 엉덩이에 길게 불자국을 내는 따끔한 사랑의 매는 엉덩이의 혈액순환을 활발히 할 뿐, 단잠을 이길 수 없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나의 지각병은 고쳐지지 않았다. 고등학교와 집은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매우 가까웠는데 그렇기에 나는 더 격렬하게 지각을 했다. 고등학교 때는 지각을 하면 반 청소와 더불어 벌점을 줬는데 나는 지각을 해도 그 벌을 면할 수 있었다. 이유는 정문에서 지각생들에게 벌도 주고, 벌점도 주고, 이것 저것 다 한 뒤에야 학교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완전 지각생은 더욱 무시무시한 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 시작 전,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나는 선생님의 눈에 띠지 않고, 교실에 입성하려 했는데 그 누구보다 무시무시한 교감선생님의 눈에는 운동화를 신고 살금살금 기어 들어오는 나는 누가 봐도 지각생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교감선생님의 불호령과 벌, 벌점을 받은 후에야 나는 반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만 쓰면 내가 불량하게 보일 수 있지만 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단순히 지각을 자주 하고, 공부는 좀 못하는 성실한 학생.
이런 나의 지각병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내가 지각을 한다 해도 벌점을 주지 않고, 체벌이 기다리고 있지 않지만 지각을 하면 끝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물론 가뿐하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힘겨운 몸을 이끌고 기상을 한다. 결국 ‘잠’은 내 의지에 있는 것이다. 내 마음 깊은 곳, 내가 왜 일어나야 하는지 얼마나 일어나고 싶은지의 정도에 따라 나는 선택적 지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고쳐진 줄 알았던 내 지각병이 또다시 재발하고 말았다.
내가 올해 이룬 성과 중 가장 큰 성과라 생각했던 브런치 작가에 합격하고, 그 이후로 하나의 글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몰랐던 것이고, 다른 이유로는 아직 내 마음에 드는 닉네임을 정하지 못했다는 이유이다.
닉네임, 닉네임
딱 봤을 때 느낌 있는 닉네임을 짓고 싶었는데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닉네임도 내 지각의 이유에
당위성을 제공해 주었지만
한 달 뒤에 닉네임을 변경할 수 있다는 조건은
다시금 내가 어쩔 수 없는 지각쟁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첫인상이 중요하잖아, 처음부터 인상에 남아야 해’
라는 압박감과 함께 내 닉네임은 정해졌다.
학창 시절에는 지각할 때마다 채찍질해주시던 선생님들이 계셨고,
사회생활에서는 자본주의에 젖은 내가 있었고,
브런치에서는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자 하는
누구와의 경쟁도 아닌 묵묵히 걸어가고자 하는
내가 기다리고 있길 바란다.
실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닉네임을 정하지 못했다.
나도 내 닉네임이 뭘지 참으로 궁금하다.
그래도 나에게 첫 글감을 전해준 닉네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 본다.
(별 거 없는 닉네임이지만 실은 이미 한번 닉네임을 변경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