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지막으로 해외에 다녀온 20년 2월의 베트남에서 일어난 일이다. 좋아지겠지. 잠깐이겠지. 하다 보니 어느덧 1년이 훌쩍 넘어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내는 아직까지 심각한 상황이 아니어서 내 몸 하나 잘 건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혼자 떠난 베트남,
일때문에 방문했지만 처음 가본 나짱에서 나는 그저 한 명의 여행객이었다.
저녁으로 반미를 먹고, 바닷가에 나가 여유로운 여행객들을 부러워하며 숙소로 들어가던 길. 샛노란 옥수수가 눈에 띄었다.
‘먹음직스럽게 생겼네,’ '
옥수수 킬러인 내가 샛노란 옥수수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다. 옥수수를 하나 사고 봉지를 덜렁덜렁 흔들며, 가는 길에 대여섯 살로 보이는 아이가 맨발 차림에 한 손에는 큰 물통을 이고, 한 손에는 노끈을 목에 감은 아기 강아지를 끌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강아지도 아직은 어린 아기 강아지였지만 꽤나 클 모양이었는지, 아이의 몸만 했고, 아이의 마음대로 강아지가 움직여줄 리 만무했다.
한국에서는 그럴 일이 없겠지만 자유로운 여행객에 빙의한 나는 한국말로
“너무 귀엽다, 사진 찍어도 돼?”라고 물었고, 아이는 알아들은 듯이 강아지 얼굴을 붙잡고, 강아지가 잘 찍힐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고마워.” 사진을 다 찍고, 이제 돌아서려는데 강아지가 여전히 아이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강아지는 자리에 주저앉아 망부석이 되어있었다.
나는 손을 두 손을 동그랗게 말아 쥐고 아이에게 말했다.
“이렇게 들어서 가봐, 이렇게 팔로 안아서”
내가 행동을 취해서 보여주자 아이는 내 말대로 강아지를 번쩍 안아 들었다. 강아지의 다리가 땅바닥에 끌렸다.
강아지를 안아서 가는 것인지 발을 맞춰 가는 것인지 헷갈렸다. 아이는 엉거주춤하게 강아지를 들어 안고, 쿨하게 사라졌다.
다음날이 되어 나는 베트남의 스타벅스라 불리는 하이랜드도 향했다. 음료 주문을 한 후,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는데 어제 만난 아이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 여행객의 오지랖과 함께 타지에서 아는 얼굴을 만났다는 반가움으로 “어? 안녕”하고 인사를 건넸는데 아이는 내가 누군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서 어제처럼 팔을 동그랗게 감싸 안으며 “퍼피! 퍼피!”외쳤는데도 여전히 모르는 눈치였다. 아이는 내가 손 닦는 곳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는 줄 알았는지 세면대를 손으로 가리켰다. “아니, 아니 어제! 퍼피!” 다시 한번 외쳤더니 아이는 세면대의 물을 틀어줬다. “이게 아닌데 어제 강아지”라고 말하자 아이는 이것까지 해줘야 하나?라는 표정을 지으며, 세정제 통을 두 번 힘차게 눌러주고서는 화장실 안으로 쏙 들어갔다. 나는 아이가 들어간 화장신 칸을 보며. “고마워”라는 말을 남기고, 화장실을 나섰다.
나짱이 워낙 가는 곳이 뻔해서인지 나는 그다음 날에도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만났다기보다는 볼 수 있었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다. 마지막 만남에서야 아이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내가 묵는 호텔 바로 앞에서 과일주스를 판매하는 상점의 아이였다.
아이는 이번에는 바빠 보이지도 않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의자에 누운 듯이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세상 평화로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아이의 단잠을 깨우고 싶지 않아 이번에는 어떠한 오지랖도 부리지 않았다.
내가 처음부터 아이가 여유로워 보이는 얼굴로 내 옆을 지나갔다면 아이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처음부터 아이가 맨발 차림이 아니었다면 웃음 가득한 편한 얼굴로 강아지를 데리고 지나갔더라도 아이에게 선뜻 말을 걸 수 있었을까.
어떤 우월감에 갇혀 나는 아이에게 당연하게 말을 걸어도 되겠지 생각했을까. 신발을 신었다는 이유만으로, 여행객이라는 이유만으로 의자에 누워 단잠을 자는 아이보다 어떻게 더 행복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내 ‘행복’은 나만의 기준으로 만들어지지만 다른 이의 행복은 내 기준의 잣대로 결정지을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