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층에 사는 사람의 서러움
"중간만 가도"
"중간만 해도 행복한 거다"
어린 시절 이런 말을 꾸준히 들으며 살았다. 많은 이들이 내게서 '중간을 보았기에' 들을 수밖에 없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맨날 중간만 간 건 아니었다.
끝에서 더 가까운 자리에도 닿아봤고, 아슬아슬 중간을 누르고 섰던 적도 있었다.
매일 '중간'에 서있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중간'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어느 곳에서든 항상 중간에 있던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인간이 되어버렸다.
항상 중간층에서 살아간다는 건 꽤나 서러운 일이다. 학창 시절 중간층에 산다는 건 그래도 덜 서럽다. 눈에 띄지 않는 아이로 끝나버리니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내가 중간층에 살고 있다는 게 현실로 다가온다. 모든 일에 중간이라는 건 한 가지 분야에 뛰어난 게 없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말소리 속에 내 속 빈 타자 소리만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든다. 다들 하나하나의 타자에 목적이 담겨 있는 반면 내 모니터에만 의미 없는 'ㅣㅏ;ㅏㅣ;'처럼 말들이 늘어난다. 뛰어나지 않아도 한 가지 일에만 전문성을 가지고 싶었지만 중간인 나는 그렇게 경력을 얻었다. 물이라는 경력. 물과 함께 자존감도 저 멀리 떠내려 간다.
글이 좋아서 관련 학과를 지원했는데 글과 관련된 일을 업으로 삼지 않다 보니 내 글은 내가 먹고사는 데에 쓸모가 없어졌다. 내 글은 나를 먹고살게 할 만큼의 글이 아닌 중간 글이기 때문이다.
특정 분야의 직업을 가진 운동선수, 가수, 댄서 등 한 가지 분야에 뛰어난 이들을 볼 때면 어린 시절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해 그 일을 좇는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한 일이라 느껴졌다. 뭐든 중간에 서있는 최근 나의 상태를 보면 그 열정이 더욱 간절해진다.
최근 tv를 볼 때마다 나를 펑펑 울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스트릿 걸스 파이터' 춤을 사랑해서 온 몸 부서져라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참가자들은 볼 때마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 19세 시절을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주어진 상황에 떠밀려 야자 하던 때네' 후회도 이따금 들지만 내게 가장 울림이 되는 단어는 '부러움'이다. 어린 나이에 모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 또 그에 합당한 노력을 한다는 것, 또 멋진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자신감. 후회와 함께 부러움이 몰려오면서 프로그램을 볼 때는 다짐을 하게 된다. '열심히 살아야지' 물론 2시간 한정 나의 다짐. 내가 중간층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어 돌아온다. 학교에 다닐 때는, 상황에 타협했고 회사에 다닐 때는 현실에 타협을 하며 살고 있다.
얼마 전, 개그우먼 안영미가 출연하고 있는 라디오스타의 클립을 본 적이 있다. 영상을 보면서 몇 가지 알 게된 사실과 깨달은 것이 있다. tv에서는 마냥 웃기게만 보이는 그녀가 실제로는 매우 조용하다는 사실.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 건 다름 아닌 '광끼'였다는 것. '광끼'라는 단어를 보니 내게도 그 '광끼'가 장착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을 순응하면서 살지만 내가 필요할 때 주문을 외우면 '광끼'가 피융하고 장착돼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며, 나를 저 위로 데리고 가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무언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결론은 내가 이 자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나는 다른 이와의 치열한 경쟁보다, 끊임없는 노력보다도 내 안의 나와 싸우며 이 자리를 지켜온 듯하다. 이 중간자리 또한 내가 치열하게 지켜온 자리라는 것이 결론이다. 그러니 다른 이의 자리에 대한 '부러움'보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열정'을 지표 삼아 내 자리를 지켜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