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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서 흔들리는 삶,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오랜 실패가 가져다준 새로운 삶 - <나도 작가다> 2차 공모전

‘실패는 실을 감을 때나 쓰는 말이다.’ 고3 반 교훈으로 정하고 싶은 표어를 하나씩 찾아오라고 했을 때 내가 선택한 문장이다. ‘실패’라는 단어가 주는 묵직함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왔고 이것을 피하려는 움직임이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현실은 늘 실패와 마주하는 삶의 연속이었다.


수능 실패, 문예창작학과에 입학


고3에게 꿈과 목표는 뿌연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를 찾는 과정에 가깝다. 안개가 걷힌 아침이 밝았다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더욱 어두워졌고 나는 재수를 피하기 위한 차선책을 찾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급 대표로 가정통신문에 글을 싣고, 담임 선생님의 애정을 받았던 일, 독후감으로 상을 받았던 일과 같은 자잘한 기억들이 머릿속을 채웠다. 글로서 인정받던 순간들이 복잡하게 엉켜 있던 생각들을 반듯하게 접어 부피를 줄여 주기 시작했다. 반으로 접힌 기억들 사이로 새로운 공간이 생기며 머리가 가벼워졌다. 문예창작학과 진학을 결심한 순간, 차선책은 최선책이 되었고 나는 실패의 이름으로 글쟁이의 길에 들어섰다.


실기에서 점수를 잘 받았는지 덜컥 in서울 문예창작학과에 입성했지만 20살에 처음 사귄 남자친구는 수능을 다시 봐서 교육대학교(교대)에 가면 어떨지 제안했다.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싶었던 내게 '작가'의 길은 멀고도 희미했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함,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대학생이 되면 모든 면에서 고3때보다 뚜렷해질 것이라는 믿음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대신 교사가 되기만 하면 한껏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안정된 삶도 살게 될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시험만 합격하면 불안정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그것이 모든 생각을 지배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수능에 몰두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학교를 다니며 수능을 다시 준비하기 시작했다. 객관적으로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실력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공부를 메인으로 해도 어려운 상황에 겉절이처럼 깨작인 공부의 결과를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상태에서 수박 겉핥기식 몰입은 더 큰 불안감을 가져왔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교대 입시에 실패했다. 열망하는 대상의 겉만 핥은 대가는 성공한 자들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것뿐이었다.


프레임대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입시 준비와 함께 연애도 좌절되면서 헤어날 수 없는 실패의 프레임에 갇혀 버렸다. 처음 교대에 가고 싶은 이유가 여러가지였다면 이제는 단지 실패자를 단정짓는 기준이 되어 버렸다. 수시로 교대 입시를 준비하는 카페를 드나들며 그들의 성공을 부러워했고 누군가의 실패에 안도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배를 마셨지만 그중 누군가는 노력의 결실을 맺었다. 장수생으로 교대에 입학한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다시금 패자가 됐으며 불에 덴 상처를 숨기기라도 하듯 화들짝 놀라 숨어버렸다.


다시 입시를 준비할 용기가 없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직장인이 되는 수순을 밟았다. 처음 입사한 곳은 대학 홍보물을 만드는 작은 에이전시였는데 어리바리한 신입이라 혼나는 일이 다반사였다. 초반에는 ‘혼나면서 성장하는 게 당연하지’ 생각했지만 매일같이 혼나는 시간이 8개월 차로 접어들자 ‘내가 잘못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번졌다. 이미 낮아질 대로 낮아진 자존감은 회복되기 어려웠고 유리 멘탈의 신입은 가볍게 던진 말 한마디에도 부서져 버렸다. 깨져버린 멘탈로 아침마다 회사를 들어서는 것이 너무 무섭고 두려워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1년이라도 채우고 나가라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번에도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오만과 편견이 맺어준 인연


첫 회사를 퇴사한 후, 한껏 위축돼 있던 내게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새 직장을 구했고 입사 초반에는 기분이 들떠서 누가 보기에도 ‘쟤 좀 UP돼 있구나’ 싶은 느낌을 풍겼다. 샤랄라한 분위기를 방출하면서 주변 동료들과 친해졌는데 그중 유난히 말수가 적고 일만 열심히 하는 H군을 알게 됐다. 어리바리한 내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던 그에게 감사의 표시로 커피를 샀고 우린 생각 외로 오랜 대화를 나눴다. 회사 근처 스타벅스에서 자바칩프라푸치노를 마시며 철학에 대해 말하던 H군의 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철학은 고상한 학문이라는 편견, 이 사람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오만. ‘이 사람과 다신 엮이지 않겠구나’ 생각했지만 그것 역시 오만과 편견에 지나지 않았다.


가던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 길은 많다


한 쪽 문이 닫히면 새로운 삶이 열린다


지난 과거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그날 이후 H군은 함께 공부할 생각이 없는지 물어왔다. 덮어두고 싶은 과거에 또 다시 화끈거림을 느꼈고 ‘생각해 보겠다’고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H군은 담담하게 나를 도발했다.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아요


마치 미래까지 실패자가 된 것처럼 말하는 그의 말에 발끈하여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첫 스터디를 시작한 2018년 4월 5일, H군이 연차 휴가인 날이라 안 올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빗 속을 뚫고 스터디 장소에 나타났다. 세찬 바람이 창문을 때렸지만 모르는 것을 차근차근 알려주는 H군의 목소리는 다정하기만 했다.


주기적으로 스터디를 하면서 H군과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일이 끝나면 같이 퇴근을 하기도 하고 스터디가 아닌데 만나는 날도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H군은 앞으로 함께하면 어떨지 조심스레 물어보며 편지를 건넸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지금 정확하게 뭘 하고 싶은지 정해놓지 않았다고 해도 나게 상관없다고 봐. 뭔가를 매일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면 언젠가는 원하는 결과를 이룰 수 있을거라 생각해. 나는 그렇게 행동할 너를 응원할거야. 네가 무슨 일을 하든,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하든 말이야. 널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계속 너의 편이 되고 싶은 바람이야.”


그렇게 다시는 엮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H군은 현재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동반자로 내 옆을 지켜주고 있다.


20대, 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던 시기.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불행하게 살 것이라고 단정 지으며 스스로를 힘들게 했던 나날들이 차곡차곡 쌓여 30대에 이르렀다. 회사 다니는 게 지치고 힘들 때는 다시금 교대병이 돋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교대에 가지 못해서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삶이란 원래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니까. 대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뜻밖의 선물을 만나게 되는 것도 삶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흔들리는 삶은 아름답다. 안개 속에서 핀 당신과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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