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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나답게 하는 사랑

에멘탈 치즈 괭이와 남자 사람의 성장기

어서와, 괭이 발톱은 처음이지?


순한 인상에 잘 웃어서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내가 착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겉보기에 순둥순둥해 보여도 막상 다가오면 진가(?)를 발휘한다. 이전에 만난 남자들도 그랬다. 잘 웃고 털털해 보이는 첫 인상에 속아 다가왔다가 괭이의 날카로운 발톱 맛을 보면 나가떨어졌다. 시간과 돈을 들일만한 상대인가 판단하는, 사귀기 전 단계에서 한 명의 사람이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이니 질겁한 모양이다.


지금 남자친구도 숨겨둔 발톱의 날카로움을 맛봤다. 하지만 인연은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선택을 한다. 그는 지금까지 만나온 사람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 멀쩡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가슴을 할퀴는 여자를 끌어안았다. 이 상황이 불편한 괭이는 계속해서 품 안을 빠져나가기 위해 발길질과 할퀴기를 시전한다.


사람이 사랑을 끌어안을 때 모양새가 그렇다. 본인이 피를 흘리는데 상대방을 더 걱정한다. 그 모습을 보면 신경질적인 괭이도 차츰 달라진다. 발톱을 내리고 안겨 있는 품 속을 제 집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품어준 사람의 품은 잊지 못한다. 타인을 내 사람으로 만들려면 필요한 건 시간과 정성(돈은 내 사람으로 만드는 속도를 높여주는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이다.


사랑은 사탕의 모습으로 찾아온다. 즐거움과 쾌락의 포장지가 사탕을 감싸고 있지만 막상 사탕 알맹이가 희생임을 알면 도망간다. 사람들은 말로는 사랑을 외치지만 실제로 사랑의 본 모습을 마주하면 도망간다. 눈 앞의 쾌락과 즐거움을 좇는 세상에서 진정한 내 사람을 만드는 과정을 견디기란 쉽지 않다. 힘들면 그만둔다. 마음에 안 들면 떠난다. 널리고 널린 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널리고 널린 게 사람은 맞지만 나의 발톱까지 끌어안은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그래서 사랑이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널리고 널린 것 중 오직 하나뿐이어서.


남자친구는 함께할 반려자를 ‘전우’라고 칭한다. 험난한 세상을 함께 해쳐나가다 보면 전쟁통을 겪는 전우가 된다나? 자잘한 현실 속 부딪힘과 보이지 않는 싸움들은 현시대판 워리어들을 키워낸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전쟁을 겪으며 성장한다. 선하던 눈매는 전쟁을 통해 날카로워지며 물렁팥죽같던 마음도 단단해진다. 전쟁을 겪고 싶지 않으나 현실이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사가 되어 세상 앞에 나선다.


프로 예민녀 vs 그냥 무던남


사람은 누구나 예민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선천적인 기질이 예민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남자친구와 내가 이렇게 정반대 스타일이다. 컨디션의 영향을 받지만 특히 예민한 날 누군가 살짝 건드리기라도 하면 분노가 일곤 한다. 예를 들면 출근길 안에서 지하철이 움직일 때마다 규칙적으로 누군가의 신체 혹은 가방이 나를 잔잔하게 툭툭 건드릴 때...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그럴 수 있지' 넘어갈 일인데 한번 '톡톡'을 느끼는 순간 온신경이 그쪽으로 쏠린다.


남자친구는 모든 면에서 무던하다. 그의 무던함과 나의 예민함은 생활 속에서도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언젠가 남자친구와 여행 가서 첫날밤 고단한 몸을 뉘여 잠을 자고 있었다. 자다가 선잠에서 깼는데 발가락이 심하게 간지러웠다. 애써 다시 잠을 청하는데 귓가에서 ‘왜에에에에에엥’ 피를 요구하는 모기의 격렬한 시위에 벌떡 일어났다. 바로 불을 켜고 모기 수색에 나서자 남자친구가 앓는 소리를 낸다.


여기서 그가 하는 말은 가히 충격적이다.


남자친구: 흑… 너구리 땜시 (깼어)…그냥 (피 빨아먹게 너의 몸을) 내어줘.


너구리는 그가 날 부르는 애칭이다. 모기는 피를 요구하며 시위하고 남자친구는 너무 환해서 잠을 못 자겠다며 이불을 뒤집어쓰며 시위한다. 몸을 살펴보니 그 역시 여러 번 뜯긴 상태다.


나: 간지럽지 않아? 어떻게 이러고 자?

남자친구: 괜찮아. 안 간지러워. 그냥 자자.


이불을 얼굴 아래까지 덮고 발가락만 내놓고 잔 나는 발가락만 물렸다. 하지만 덥다고 이불을 차 버리고 잠든 그의 팔, 다리에서는 빨간 점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나보다 더 많이 뜯겼는데 분하지도 않은 모양이다.


불을 켜자 포식 후 천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기들이 보였다. 빳빳한 책받침으로 두 마리를 차례대로 내려치자 모기와 함께 피가 터졌다. 피의 지분은 3분의 1이 내 것, 3분의 2가 남자친구의 것으로 추정됐다. 그렇게 2마리 이후 3마리를 더 잡은 후에야 모기 전쟁이 끝났다. 미리 준비해 온 버물리를 그의 몸에 바르면서 예민하지 않음과 예민한 것의 차이를 실감했다.


멘탈은 에-멘탈치즈다


나의 에멘탈 치즈는 구멍이 많이 뚫려 있다


예민함은 스트레스에서도 큰 차이를 가져온다. 실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은 통각에도 더 민감할 가능성이 높다. 스트레스와 뇌의 관계는 에멘탈 치즈로 설명할 수 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에멘탈 치즈가 ‘멘탈’이라고 생각해 보자. 같은 강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가정했을 때 구멍이 많이 뚫린 치즈라면 스트레스가 속수무책으로 치즈 구멍을 통과해 뇌에 전달된다. 반면 구멍이 별로 없는 치즈는 스트레스를 받아도 뚫린 구멍이 없어 뇌에 전달되는 부분이 적다. 내가 구멍이 많이 뚫린 에멘탈 치즈라면 남자친구는 구멍이 별로 없는, 견고한 에멘탈 치즈라고 할 수 있다.


길에서 만난 냥이와의 아이컨택

태도는 일상을 반영한다. 똑같이 모기에 뜯겨도(심지어 더 많이 뜯겨도) 무난하게 넘어가는 성향은 일상에도 대입해 볼 수 있다. 작은 일에도 으르렁거리는 괭이를 보며 남자친구는 신기한 생명체를 바라보듯 신기해한다.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는 건 괭이의 시선으로 사람 바라보기와 사람의 눈으로 괭이를 쳐다보는 일과 비슷하다. 구멍 숭숭 에-멘탈 치즈 괭이를 이해하려 노력하던 남자 사람은 피로감을 호소하며 괭이에게 공감이 어렵다 말한다.


이제는 서로가 어느 정도까지 상대방을 견딜 수 있는 지 한계를 안다. 그렇게 몇 번의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며 괭이vs사람의 전쟁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사랑은 나를 나답게 한다


사랑을 갈라 놓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인생의 무게가, 전쟁 같은 삶이 서로를 갈라 놓는다. 하지만 잘 키운 반려자 하나가 열 친구 안 부러운 순간이 올 거라 믿는다. 4남매를 키운 엄마는 결혼이 제2의 부모를 만나는 과정이라고 했다. 낳아주신 부모님이 지금까지 나를 돌봤다면 나이가 들면서부턴 배우자와 내가 서로를 돌본다. 원수가 될지, 부모가 될지는 앞으로에 달렸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견디며 가까워진 전우는 서로를 놓지 않는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연약함과 강인함, 도망치고 싶은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소용돌이 친다. 때로는 밝고 때로는 우울한 일상, 이 모든 게 나 자신이다. 소용돌이 속으로 기꺼이 걸어들어와 다중인격자라도 괜찮다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 이 사람과 함께할 때 비로소 나는 나답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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