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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만큼 끈질긴 집먼지 벌레 퇴치

집먼지 벌레를 아시나요?


혹시 집먼지 벌레 아세요?


약국에 가서 물어보면 100이면 100 고개를 젓는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 역시 집 먼지 벌레를 보기 전 이런 벌레가 있는 줄 몰랐으니까.


화근은 얼마 전 집에 들인 미니 냉장고였다. 동생이 회사에서 먹을 간식을 집에 쟁여 놨는데 초콜릿의 경우 녹아내려 보존이 어려웠다. 동생의 남자친구가 어디선가 미니 냉장고를 얻어줬고 그곳은 동생의 간식창고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니 냉장고 근처를 지나다가 수북이 쌓인 먼지(?)를 발견한다. 왜 이렇게 먼지가 쌓였지? 물티슈로 닦으려고 보니 먼지가 움직인다. 이게 뭔가 싶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말 작은 흰색 점 같은 물체들이 냉장고를 뒤덮은 상태였다. 가로, 세로 40cm의 작은 미니 냉장고의 겉 표면은 물론, 문의 고무 바킹 사이사이에 촘촘하게 그것들이 들어차 있었다. 우선 물티슈로 먼지 벌레들을 닦아 내기 시작했다. 워낙 작아 눈이 좋은 사람도 물체에 눈을 들이대고 후레시로 빛을 비춰가며 봐야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동영상 첨부, 혐오주의


한 번 닦고 난 뒤 다시 증가한 먼지 벌레


일단 눈에 보이는 건 다 닦아냈다. 해치웠다는 뿌듯함도 잠시, 다음날 냉장고를 보니 웬걸? 다시 흰색 점들이 올라와 있었다. 그것도 어제와 비슷할 정도로 많이. 스트레스가 뒷골을 강타했다. 생각보다 사태가 더 심각했다. 먼지 벌레는 미니 냉장고의 안주인이 되어 있었다.


다시 꼼꼼하게 벌레들을 제거하고 고무 바킹 사이사이를 스카치 테이프로 훑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확인하면 다시 벌레들이 늘어나 있었다. 그들은 스쳐지나가면서 서로 닿기만 해도 새끼를 낳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엄청난 번식력에 기겁하여 결국 미니 냉장고를 버렸다.


문제의 미니 냉장고가 사라지자 평화가 찾아왔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보낸 카톡에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흑미가 있는 비닐 팩에서 먼지 벌레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 집에 없어서 몰랐으나 흑미를 뒤덮은 먼지 벌레의 위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틈새에 모두 테이프를 붙여 벌레 확산을 막으려 했다

그들의 장악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입구가 열려 있는 2개의 흑미 봉투는 먼지 벌레 천지가 되었으며 근처에 있는 컴퓨터 책상, 컴퓨터, 전선, 키보드, 마우스 모든 곳에서 먼지 벌레가 발견됐다. 한 마리라도 보인다면 그곳은 개체 수가 이미 증가했거나, 곧 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일이 점점 커지자 엄마, 여동생, 내가 달라붙어 주말 내내 벌레를 잡기 위해 모두 팔을 걷어붙였다.


먼지 벌레를 검색해 봤다. 그동안 정확한 이름도 모른 채 먼지같이 생겼길래 먼지 벌레라고 불렀다. 그런데 검색해 보니 집 먼지 벌레가 정말 있었다. 지식인 질문자가 쓴 내용 중 ‘마음 같아서는 책장을 불사르고 싶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버리고 차마 컴퓨터 모니터와 본체는 버리지 못한 내 심정을 누군가도 느꼈으리라.


답변은 이랬다. 집 먼지 벌레는 ‘먼지다듬이’라고 불리며 곰팡, 먼지, 균 등을 먹고 개체수를 빠르게 늘린다고 한다. 고온다습한 환경도 최적의 조건. 계속 닦아주고 청소하고 일광 건조를 해야한다고 하는데… 2주째 해를 못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구멍 뚫린 하늘에서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폭우로 빨래도 마르지 않는 상태에서 박스까지 옮겨 붙은 벌레를 퇴치하러 나섰다. 상자 위에 벌레들의 움직임이 보였고 우리는 바로 박스를 테이프로 동여맸다. 나올 구멍이 없도록, 퍼지지 못하도록 우선 조치를 취한 다음, 두개의 상자 중 하나를 먼저 열어서 옷을 전부 빨았다. 상자는 잘게 분해하여 비닐에 넣었고 밀봉하였다. 다음날 남은 상자도 똑같이 처리하였다.


8000원으로 생각보다 비쌌던 기피제

그리고 흥건해질만큼 모든 물건에 기피제를 뿌렸다. 시간을 두고 살펴보니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기피제가 벌레를 죽이는 것은 모르겠으나 움직임을 둔하게 하는 건 확실했다. 이미 먼지 벌레 경험이 있는 이모를 통해 ‘피톤치드 원액’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이모도 어느 날 방 전체를 점령한 벌레를 발견한 뒤 이불, 옷 등을 일일이 닦고 버리면서 피톤치드를 계속 뿌려줬다고 한다. 다른 건 다 버렸는데 침대 매트리스를 버릴 수 없어 피톤치드를 꾸준히 분사했더니 벌레가 사라졌다는 후문. 희소식을 듣고 바로 피톤치드 원액을 주문했다.


그런데 피톤치드를 살펴보던 중 편백수 원액과 피톤치드 원액이 보였다. 효과 면에서 차이가 있는지 편백수 원액은 가격 추가가 없는데 피톤치드원액은 가격 추가가 있었다.



알고 보니 편백수는 피톤치드 원액으로 볼 수 없으며 증류수 즉, 물이었다. 반면 피톤치드 원액은 오일이 원액이며 강한 산성을 갖고 있어 편백수에 희석시켜 사용하는 게 좋다고 한다. 두 개를 한꺼번에 구입해서 섞는 건 귀찮아서 피톤치드 원액 함량이 높은, 하나로 된 스프레이를 구매했다.


하지만 기나긴 장마로 배송이 밀린 상황이라 피톤치드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기피제는 말그대로 뿌린 곳을 기피하고 다른 곳으로 갈지도 모르기에 임시방편으로 살충제를 뿌려댔다. 멀리 분사된 우유빛 액체가 컴퓨터와 전선,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언제나 그러했듯 또, 반드시 이겨내리라


우윳빛 살충이 계속되자 확산도 주춤하는 듯 했다. 열정적으로 박멸하며 비할 바 아니지만 코로나19를 대하는 의료진들이 이런 느낌일까 생각했다. 병균과 싸워 환자들을 치료하고 완치시켜도 계속해서 퍼지는 병마와 하루 지나면 다시 늘어나는 환자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먼지 벌레는 박멸할 수 있는 걸까? 코로나가 없는 세상이 올까? 극심한 스트레스에 피말리던 나날들. 후레시를 켜고 또 봐야 하는데 벌레가 더 나올까봐 두려워 피하고 싶은 기분. 점점 지쳐가는 심신.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어려울 때 강하고 더욱 빛을 내는 근성의 민족이 아닌가. 결국 비가 그치듯 고통 역시 언젠가는 그칠 것을 안다. 언제나 그러했듯 우리 모두는 또,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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