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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 싫었던 그녀는 4남매의 엄마가 됐다

건강체 외할머니에게서 작지만 강한 몸집을 물려받은 그녀는 독박 육아로 4명의 아이를 키워냈다. 엄마의 건강함은 생체 주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생리주기는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으며 정해진 날짜가 되면 기똥차게 생리를 했다. 4명의 아이를 모유 수유하면서 젖을 끊으면 정확히 한 달 뒤에 생리를 시작했다. 동생들과의 나이 차도 일정하다. 나와 둘째, 셋째는 각각 2살 터울이다. 넷째가 계획에 있었다면 규칙적인 주기로 2년 뒤 태어났겠지만 사실 계획에 없던 아이라 4년 뒤 태어났다.


인생은 생체주기와 달랐다


하지만 인생은 매번 딱딱 들어맞는 생체주기와 달랐다. 엄마는 수녀원에 가려했지만 외할머니의 극심한 반대로 선봐서 아빠를 만났고 정확히 4번 만난 뒤 결혼했다.


처녀 적, 대전에 살던 그녀는 여러 수녀원의 문을 두드려 보았으나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인력 부족에 시달릴 것 같은 수녀원에서 대체 무슨 기준으로 그녀를 걸러냈는지 모르겠으나 결국 그녀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세상의 굴레가 싫어서 수녀원에 가고 싶었던 사람이 종갓집 맏며느리가 됐다. 조금 자란 나에게 엄마는 ‘인간의 굴레’라는 책을 읽어 봤는지 물어보곤 했다. 인간이 정해 놓은 법칙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었는데 이 집에 갇혀 버렸다는 말과 함께.


어린 나의 시선으로는 이해가 안 됐다. 수녀원이 더 답답해 보이는데 집 안이 더 갑갑하다고 말하는 엄마. 그녀의 가치는 땅이 아닌 하늘에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가치와 하늘의 가치는 달랐고 종갓집 맏며느리의 삶은 그녀의 신념과 부딪히는 일이 잦았다.


엄마는 앞으로 살아갈 시간보다 보내온 시간이 더 많아서인지 지난 얘기를 많이 꺼내곤 한다.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아빠가 단 한 번도 애들 유아세례를 도와준 적이 없다는 레퍼토리다. 엄마는 천주교인이라 아이가 태어나면 유아세례를 시켜야 했다. 이 룰은 그녀의 뿌리와 다름없었다.


당시 동네 성당에서는 한 달에 딱 한번 유아세례를 줬다. 그 하루를 놓치면 다음 달에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엄마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태어난 지 한 달 안에 아이에게 세례를 주는 건 엄마의 신념이자 신에 대한 사랑이었다.


셋째가 유아세례를 받기로 한 날은 눈이 많이 왔다. 나와 둘째가 오손도손 손 붙잡고 집에 있으면 참 좋으련만. 무조건 같이 가겠다고 생떼를 쓰는 나 때문에 엄마는 하는 수 없이 두 명의 어린 자녀를 옷으로 꽁꽁 싸매고 갓 태어난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길을 나섰다. 엄마는 늘 말한다. 우리가 유아세례를 받을 때 아빠는 단 한 번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신념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외면당하는 골칫거리일 뿐이었다.


함박눈을 맞으며 새하얀 세상을 걸었을 그녀와 어린아이들의 뒷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유모차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걷어내고 한 달이 채 안된 갓난아기에게 물과 기름으로 세례를 주었을 그 날. 그 날 이후 엄마와 아빠는 부부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성실하게 키워냈으나 종교에서 만큼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다.


60이 다 된 엄마는 아직도 책임감에 부엌을 벗어나지 못한다. 교사인 아빠는 방학 때면 삼시세끼 집에서 식사를 하셨고 막내는 편식이 심해 정성껏 밥을 해다 바쳐도 잘 먹지 않았다. 엄마는 막내가 편식이 심한 이유에 임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본인의 영향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막내는 이제 다 컸는데 그렇게 까지 챙겨줄 필요가 있는지 물었다. 엄마는 자기가 안 챙겨주면 이상한 것만 주워 먹고 다닐 텐데 어떻게 내버려 두냐고 한다.


그녀에게 자식은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감이다. 가끔 책임감이 무섭게 그녀를 짓누르는 현장을 바라보면 엄마가 집 안이 갑갑하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무게에 힘겨워 하면서도 무거운 짐에 발등을 찍혔을 때 ‘악’ 소리 한 번 내지 않는다.


힘든 사람은 더 힘든 사람에게 투정 부린다


얼마 전 집먼지 벌레를 잡다가 도저히 못하겠다며 주저앉았다. (참고: https://brunch.co.kr/@lkkkk1/28) 엄마는 여기도 보고 저기도 봐 보란다. 시력이 좋아 일평생 안경을 쓰지 않았던 그녀는 최근 들어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눈이 침침하여 잘 보이지 않는 걸 알기에 벌레가 있는지 봐 달라고 한 적이 없다.


내 잘못도 아닌데, 왜 고통받아야 하지?


일 끝나고 와서 씻지도 않고 바로 벌레 잡기에 투입돼야 하는 처지가 서글펐다. 땀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혔고 등은 땀으로 흥건해졌다.


“엄마, 벌레 좀 봐주면 안돼? 더 이상은 못 하겠어”


인내심이 한계점을 넘자 차곡차곡 눌러 담았던 감정들이 중구난방으로 튀어 올랐다. 용수철 같은 감정들은 한바탕 터져 나온 후에야 이성의 끈을 잡는다. 정신을 차리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미안한 감정에 말투부터 달라진다. 떨리는 목소리, 조금씩 약중강으로 높아지던 음성이 가라앉는다.


엄마는 미안한 듯 계속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했다고 말한다. 이런 말을 들으려고 한 게 아닌데..그냥 힘들어서 감정이 튀어나와 버린 건데... 조금만 더 참을 걸, 갑자기 불쑥 감정을 내비친 후회가 밀려온다.


마침 엄마는 깍두기를 담고 있었다. 깍두기를 담그면 무에서 물이 많이 나오는데 물이 많이 나오지 않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한다. 한 번 무를 절일 때 40분씩 걸렸지만 두 차례 소금물에 절였더니 물이 나오지 않는다며 뿌듯해 하는 엄마. 잘 절여진 무에 찹쌀풀, 까나리액젓, 과일과 매실액으로 단맛을 낸 양념장을 넣고 버무린다. 양념장과 한데 어우러진 무가 점점 벌게진다.


부끄러운 마음에 무가 버무려지는 현장을 조용히 응시한다.


“간 맞나 한 번 먹어봐”


엄마가 무 조각 한 개를 건넨다. 감칠맛과 단맛에 아직 익지 않은 무의 맛이 생생하다. 무슨 비법을 얻어낸건지 양념장과 무의 조화로움이 기가 막히다.


“와 정말 맛있다. 한 개 더 먹어야지”


무거웠던 공기가 무 하나로 풀린다. 맵고 짠 맛으로 살아온 엄마에게 '내가 힘드니 좀 알아줘'라고 티내지 않기로 또 한 번 다짐한다. 지금은 맛이 좀 덜 배어서 미숙하지만 내일은 더, 모레에는 좀 더 맛있어질 엄마표 깍두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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