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스펙없이 직장인이 되다

경험을 쌓다보니 어느덧 직장인

컴퓨터만 하루 종일 보는 게 싫어서


회사원이 되기 싫은 이유는 딱 하나였다. 세상은 다양하고 볼 것이 많은데 매일 하루 8시간을 네모난 컴퓨터만 봐야 한다는 게 싫었다. 사무직을 피하고 싶어서 활동적인 직무 중에 뭐가 없을까 하다가 매장관리직에 도전해봤다. 하지만 하루 종일 서 있는 일은 앉아 있는 것보다 힘들다는 깨달음을 남긴 채 3개월로 막을 내린다. 여행작가가 되고 싶지만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던 소시민의 선택은 무난하게 회사원.


글 쓰는 일은 잠시 묻어두자 생각하며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2015-2016년도에는 스펙 쌓기가 대세였다. 취업준비=토익 공부, 학점 관리 등등이 성립되는 시기였지만 경험이 더 먼저라고 생각했다. 수치로 보여지는 스펙보다 경력을 쌓는 게 낫다는 정신승리로 당장 인턴이 되기 위해 이력서를 썼다. 이력서를 쓰면서 가장 쓰기 싫었던 부분은 ‘입사동기’였다. ‘먹고 살려고’를 300자로 늘려 쓰려니 버퍼링이 길어지고 한줄을 넘겼다가 도로 삭제하여 제자리 걸음이다.


소심한 소시민에게 회사는 감정 소모를 많이 해야 하는, 인풋에 비해 아웃풋이 턱없이 부족한, 그러나 그 마저도 안 받으면 살 수 없으니 다녀야 하는 곳이었다.


코로나가 창궐하여 나라를 어수선하게 하는 상황이 아니었던터라 인턴이 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침 눈에 띄던 인턴 공고를 보고 지원하여 마케팅팀에서 콘텐츠 기획을 담당했다.


이력(履歷)이란 지금까지 사뿐히 즈려밟고 왔던 발자취의 역사를 뜻한다. 지난 날을 돌아보니 마케팅팀 콘텐츠 기획자 경력뿐이었고 인턴 이후에도 비슷한 업무를 하는 수순을 밟았다. 남들과 달리 일찌감치 대기업을 포기한 대가로 중소기업에 입사했고 연봉은 터무니 없이 적었다. 남들이라면 대기업에 지원하다 안됐을 때 중견, 그 다음 중소에 도전했겠지만 나는 대기업 공채에 몇 번 도전해볼까하여 은행, 스튜어디스 면접을 보고 탈락한 후, 바로 중소로 눈을 돌렸다. ‘문예창작학과’라는 특이성과 남들을 제칠만한 스펙 혹은 노력이 없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첫 시작이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


연봉, 복지 뭐 하나 괜찮은 게 없는 직장에서 수틀리면 금방 그곳을 떠나게 된다. 쉽게 얻은 것이니 아쉬움도 없다. 잦은 이력은 책임감과 성실함 부족으로 이직 시 핸디캡이 될 수 있지만 개의치 않았다.


30대가 되어 돌아봐도 별로 아쉽지 않다. 원래 목표가 대기업 입사가 아닌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사회에 발을 디디고 보니 돈 한 푼이 아쉽다. 사노비, 공노비라고 자조 섞인 푸념을 할때도 기왕이면 돈 많이 버는 노비이고 싶은 것이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는 건 30대가 되어서야 체감한다. 인턴을 취업 포털 사이트에서 시작한 것이 커리어가 되어 지금까지 동종업계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턴하면서 ‘다시는 글 쓰는 거 하지 말아야지’했지만 하던 게 편하고 싫다 싫다하면서도 일하려고 보면 전에 하던 길로 가게 된다. 그래서 직장은 몰라도 직업은 신중했으면 한다.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면 연봉 높은 곳에서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무 생각없이 중소기업으로 입사한 것이 가끔 후회되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연봉’ 이다. 이직할 때 전 직장 연봉을 참고하므로 고고익선이라 말할 수밖에.


반면 경력이 쌓이면서 찬찬히 연봉을 높이는 타입도 있다. 20대 중반에는 빨리 사회에 나가서 일하고 경력을 쌓을수록 도움이 될줄 알았는데 초봉이 높은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 장땡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30대에 와서 하게 된다. 무엇이 그렇게 급했을까.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여유를 갖고 조금 더 멀리 바라봤다면 어땠을까. 순간순간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이기 때문에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추억에서 발견한 '행복'의 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