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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를 당하고 알게 된 것

모든 통증에는 이유가 있다

31살이 되고 얼마 되지 않은 1월 8일,
교통사고를 당했다


파란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코너를 도는 차와 사고가 났다. 과속하는 차에 치인 것은 아니었으나 방어하려고 뻗은 손과 허리가 차의 무게와 달리는 속력을 온전히 흡수했다. 근처 병원에 가서 뼈 골절은 아닌 것 같다는 소견을 듣고 다음날 병원에 가서 X-ray를 찍었다.


X-ray 결과, 골절은 없었지만 손목과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MRI를 찍어볼 수 있냐고 물으니 과잉 진료를 피하기 위해 2~3주간 진료를 받아보고 그때도 아프면 찍어보자고 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근처 병원을 2주간 다녔다. 신기하게도 아픈 부위는 정도의 차이를 두고 조금씩 달라졌다. 허리가 아파서 허리를 집중적으로 물리치료 받으면 4~5일 후에는 손목이 시큰거렸다. 사고 후 며칠 동안은 두 부위를 동시에 치료받을 수 있어서 허리와 손목, 허리와 발목, 허리와 무릎과 같은 식으로 물리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받는데도 손목이 시큰거려 초음파를 찍어보니 염증이 있다고 했다. 초음파 젤을 바르고 기구로 손목을 문지르니 회색과 흰색이 섞인 화면에서 손목 인대가 보였다. 치료를 받다가 무릎도 초음파를 해봤는데 염증이 좀 있고 연골이 닳아있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평소에 많이 걷는지 물어봤다. 많이 걷는 편이라고 하니 연골이 남들보다 조금 더 닳아서 너무 많이 걷지는 말라고 한다. 걷는 게 건강이 좋다고 하지만 과하면 좋지 않다고 하니 건강을 유지하는 선에서 도움이 되는 걷기는 무엇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거의 매일 병원에 갔지만 2주가 지난 뒤에도 허리가 아파 결국 MRI를 찍어봤다. 태어나서 처음 찍어 보는 MRI였는데 찍기 전에 담당자가 몇 가지를 물어본다.


담당자: 폐쇄공포증이 있나요?

나: 아니요, 없어요.

담당자: 안에 들어가 있는 동안 많이 시끄럽기 때문에 헤드셋을 쓰고 계실거예요. 검사 동안에는 움직이면 안됩니다.


알고 보니 폐쇄공포증이 있었다?


헤드셋을 끼고 동그란 통 안에서 가만히 20분간 누워있는 건 예상 외로 힘든 일이었다. 안으로 몸이 쑥 들어가자 엄청난 굉음을 내며 통의 윗부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헤드셋에서는 클래식 연주가 흘러나왔지만 굉음은 모든 소리를 잡아먹어 귓가에는 윙윙 소리만 맴돌았다. 손을 배 위에 두고 있었는데 나란히 양 옆으로 둘 걸 후회가 밀려왔다. 가만히 숨만 쉬고 있음에도 배 위에 올려둔 손이 숨 쉬는 것을 방해하는 것처럼 답답했다.


분명 가만히 있는데 움직이지 말라는 말도 두 번이나 들었다. 10분이 지났을까? 스스로 폐쇄공포증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점점 숨이 가빠왔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되,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려 애쓰고 자기 최면을 시작했다.


‘괜찮아 금방 끝날 거야. 난 괜찮아 괜찮아.’ 하다가   ‘더 이상 못하겠는데 어떡하지. 손이라도 들어야 하나’ 싶은 순간에 돌아가던 기계가 멈췄다.


결과는 며칠 뒤에 알 수 있었다. 가지런하게 모여있는 뼈와 디스크를 보니 이게 정말 내 몸에 들어있는 것들일까 한편으로는 신기, 한편으로는 의심(?)이 들었다. 그때 허리에서 한참 내려간 엉덩이 뼈가 있는 곳도 아팠는데 이유는 허리에 있었다.


의사 선생님: (위쪽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는 디스크를 보며) 위쪽은 디스크 사이의 간격이 넓지요? 그런데 요추 5번과 천추 1번을 보세요. 다른 곳과 비교했을 때 간격이 좁아요. 그리고 디스크가 눌리면서 옆에 터져 나온 게 보이죠? 이것 때문에 통증이 생기는 거예요.


이유 없는 통증은 없다


성인이 돼서 정밀하게 온 몸을 살펴본 것은 처음이었다. 초음파, X-ray, MRI를 찍고 물리치료를 받으며 느낀 게 있다면, 이유 없는 통증이란 없다는 것이다. 아픔은 몸이 보내는 신호다. 가끔 손목이 아프면 좀 무리해서 그런가 보다 하지만 사실 피부 아래 근육은 장시간 사용으로 지쳐 있는 상태다. 오랜 시간 앉아서 일하고 나면 허리가 뻐근하고 목과 어깨 주변이 아픈 걸 느낄 수 있다. 잘못된 자세가 계속되면 몸은 통증이라는 시그널로 존재를 알리지만 우리는 그것을 미약하다는 이유로 외면한다.


20대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허리 통증이 30대 와서는 점차 고개를 들고 일어선다. 사고가 난 후에 약했던 부분이 심한 자극을 받아 더욱 극명하게 통증이 드러났다. 사고가 나서 받은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는 컸지만 30대를 맞아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예전에는 몸이 보내는 통증 시그널에 무감각했지만 지금은 통증이 있다면 스트레칭을 좀 더 하거나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려 노력한다.


몸은 하루아침에 선전 포고하듯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아픔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축적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혹시 지금 통증이 보내는 중요한 시그널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오랜 시간 함께해야 할 몸과 건강한 공생을 하려면 통증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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