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꿈, 행복을 잃고 살아가는 당신에게
우리 집은 생일을 두 번 치른다. 한 번은 주민등록상 날짜의 양력 생일, 한 번은 음력 생일. 음력 생일은 날짜가 바뀌기 때문에 매년 달력을 찾아 표시해야 한다. 보통 주변 지인들은 양력 생일을 챙긴다. 카톡에는 선물을 안주면 안될 것처럼 ‘선물하기’ 배너가 뜬다. 이에 응답하기라도 하듯 하나 둘 작지만 큰 마음(?)이 느껴지는 선물을 준다. 아무런 기대도 안하고 있다가 기프트콘을 받으면 정말 고맙고 기분도 좋아지는 건 사실이다.
2월 8일 오늘은 기프트콘이 아닌, 문자를 받았다. 출근길 지하철에 서서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는데 패딩 안쪽 주머니에서 윙윙 진동이 왔다. ♥아빠♥에게 온 카톡 메시지였다.
‘오늘 생일이지 생일 축하한다. 묵묵히 너의 길을 걸어 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 딸이 자랑스럽다. 오늘 하루도 파이팅하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가 되길 바란다. 딸 아빠가 많이 사랑한다.
남들이 사랑한다고 할 때는 웃음이 나는데 왜 아빠가 사랑한다고 말할 땐 눈물이 날까. ‘사랑한다’는 글자를 읽는데 가슴에 묵직한 것이 내려 앉으며 눈물이 고인다. 답변은 이모티콘과 함께 발랄하게 보냈다. 그랬더니 아빠가 몇 장의 사진을 더 보내셨다. 보행기 타고 거실을 활보하며 활짝 웃고 있는 사진, 패션쇼 하는 것처럼 동생들과 수영복을 입고 브이를 그리고 있는 사진. 보행기를 탄 나의 팔과 다리 사이는 마치 소시지처럼 올록볼록하다. 수영복 입은 모습은 차마 두 눈 뜨고 보기가 어렵다.
아빠: 네가 어릴 적 사진이다. 어릴 땐 굉장히 활달했었다.
‘어릴 땐 굉장히 활달했었다’는 과거형이 뼈를 때린다. 엄마도 나를 보며 어릴 땐 그렇게 뛰어다니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참 조용하다고 한 적이 있다. 사진 속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데 지금의 나는 ‘행복’이란 걸 잘 모르겠다.
어른으로 커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움보다 부자연스러운 것을 더 많이 배웠다. 너무 크게 웃으면 미워 보일 까봐 신경 써서 웃고 남들의 시선 때문에 본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약점은 곧 남들에게 기회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를 숨기고 또 숨긴다.
어릴 적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소녀였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불화를 겪고 남들의 험담을 들으며 모든 게 내 탓이라 생각하게 됐다. 점점 내 모습을 숨기기 시작했고 남들이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먹는 걸 좋아해 살이 많이 쪘지만 살을 뺐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 위해 흥미가 없어도 잘 웃었다. 타인의 부탁이 무리한 요구라 하더라도 나를 험담할까 두려워 최선을 다해 들어주었다.
물론 이 모든 게 어른으로 성장하는 한 과정이며 어떻게 보면 더 발전된 모습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원하지 않는 것을 위해 나를 깎아 내리고 희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어릴 적 매일 봤던 디즈니 만화영화를 보면 반가우면서 눈물이 난다.
복고 열풍이 부는 것도 같은 이치인 것 같다. 옛날 사진을 보면 ‘그땐 그랬는데’, ‘이땐 참 행복했는데’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젖어 든다. 사람들이 과거를 추억하는 이유는 잊고 지냈던 행복을 찾고 싶어하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움과 행복은 어느 지점에선가 만나니까.
아빠: 어릴 적 활기찬 모습을 보면 오늘 하루를 웃으면서 시작하지 않을까 해서 보냈다. 좋은 하루 보내렴.
어린 시절의 나로 다시 돌아가 웃게 해주신 아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