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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다 = 바보같다?

'착하다'의 이면에 숨겨진 또다른 이야기

"착하신 것 같아요"


처음부터 착하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착한 것은 과연 '좋은 것'일까?


마음이 약해서인지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싫어서인지 남에게 눈총 받는 일을 극도로 싫어했다. 타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걸 싫어했고 뒷말이 나오는 걸 피할 수 없다면 좋은 방향으로 비춰지고 싶었다. 언제부터 내가 중심의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 중심인 삶을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본성이 착해서 착하다는 말을 듣는 것인지, 착해 보이고 싶어서 한 행동들이 나를 착하게끔 보이게 하는 것인지 스스로도 분간이 안갈 때가 많다는 거다.


"OO씨 착하다는 말 듣죠?"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사람들은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타인에게 착하다는 말을 한다. 주로 이런 말을 들을 때 상황은 내가 좀 더 손해를 보고 상대방을 챙겨주거나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주었을 때다.


남자친구가 같이 길을 걷다가 갑자기 내가 여자친구라서 좋다는 얘길 한 적이 있다. 왜냐고 물어보니 '착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술자리에서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얘길 들었다고 한다. 남자친구의 지인이 여자친구와 백화점에 가서 여러 매장을 돌아다니는데 한 매장 당 쇼핑에 들인 시간이 한 시간 반이었다는 것. 그 지인은 인고의 시간을 견디다 못해 결국 여자친구와 싸웠다고 한다. 


그때 남자친구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내 여자친구는 쇼핑 가서 한시간 반 동안 날 끌고 다니지 않는데.. 참 다행이다'

그래서 내가 답했다. 

"나도 한 매장에서 오래 있을 수 있어. 그렇게 안한 것 뿐이야"

"그래. 할 수 있음에도 나를 생각해서 그렇게 안하는 게 차이인 거지."


평형 유지, 전쟁 같은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


평소에 저울은 평행하게 균형을 이룬다. 마음이 평화롭고 좋은 때에는 사람과의 관계도 평행을 유지하기 쉽다. 여기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관계의 균형은 어떻게 될까? 추를 더 많이 다는 쪽으로 저울이 내려가는 것처럼 더 많은 짐을 짊어진 쪽이 내려앉게 된다. 마음의 짐이 가벼운 쪽은 상대방의 어려움을 체감하기 어렵다. 본인의 일이 아니면 힘든 정도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우니까. 결국 '착하다'는 말은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조금 더 불편하지만 어려움을 자신의 쪽으로 가져오는 걸 뜻한다.


하지만 착하다는 말로 모든 걸 감수하기 어려워지는 순간이 온다. 처음에는 '그래 이 정도까진 내가 할 수 있지. 내가 좀 더 양보하자.'라고 생각하다가 마음이 삭막해지면 '그런데 왜 나만 계속 짐을 더 짊어져야 해?'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계는 늘 어렵다. 평행을 유지하는 저울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은 둘 사이에 팽팽하게 힘이 오고 가고 있다. 한쪽만 착한 아이가 되어 고스란히 짐을 다 받지 않기 위해, 어쩌면 서로를 사랑해서 혹은 배려해서 팽팽하게 자신의 몫을 감당한다. 나는 나의 무게를 견디려 시도는 해보는 사람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게를 전가하는 사람인가. 저울 앞에 서있는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되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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