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순간의 감정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으려면
횡단보도 앞에 서있는데 차가 매우 아슬아슬하게 내 옆을 스쳐 지나간 적이 있다. 달리는 차와 나의 거리는 불과 몇 센티미터 되지 않았다. 몇 센티미터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달리는 자동차와 부딪히지 않았다. 조금만, 몇 발자국만 더 움직여서 차도로 발걸음을 뗀다면, 몇 센티미터의 간격만 줄여 나와 차의 거리를 좁혀 한 공간에 있게 된다면 지금처럼 온전한 모습으로 서있지 못할 수도 있다.
이상하게 느껴졌다. 단지 몇 발자국, 몇 센티미터 다른 곳에 존재한다는 이유로 나는 살아있다. 한 순간에 삶이 아닌 죽음으로 갈수도 있는데 계속해서 삶을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이. 굵직굵직한 선택이 아니어도 매 순간 '살아있음'을 택하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직 '회사에 늦지 않게 가야 한다'는 원칙에만 충실히 움직인다. 아직 정신이 말짱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회사에 가기 싫다, 매일 아침 눈을 뜨기 싫다는 소소한 잡생각들은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경쟁적으로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자리 쟁탈전에 성공하여 긴장이 풀리면 오만가지 생각들이 나열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연착되어 목적지에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출근길처럼.
왜 내가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걸까. 무엇을 위해 나는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모르는 사람들과 밀착하여 지루한 길을 가야만 하는가
정답을 알지만 대답은 없고 끝나지 않는 질문만 떠오르는 나날들. 어차피 피할 수 없으면 즐기기라도 해야한다는 말에 따라 스스로에게 즐겁기를 강요해본 적도 있었다. 이렇게 엄청난 인파에 낑겨 가며 밥벌이라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는 강요. 어디론가 향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는 강요. 생각의 고리를 끊기 위해 잠을 자려하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잠들지 못한다.
지하철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아래로 쳐박고 있지만 모두 시한폭탄을 하나씩 달고 있다.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안고 살아가는건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자폭이라면 차라리 좋겠지만 폭발의 피해는 내가 가장 소중하게 아껴야할 사람들에게 간다.
일상에서 힘들었던 내용은 주변에 가장 가까운 사람과 나누게 된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은 결국 온전히 내 감정을 담는 커다란 그릇으로 전락한다. 감정 쓰레기통. 내 의도와 무관하게 나의 케케묵은 감정, 죽고 싶은 심정, 미쳐 돌아버리겠는 아픔들은 내 옆사람의 가슴에 박힌다.
가깝고 소중할수록 더욱 쉽게 대하게 되는 딜레마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 하지만 사실 아픔은 나누려고 할수록 모두가 힘들어지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아픔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옆 사람을 끌어들여 함께 그 아픔 안에 머물러 달라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의 마음에 여유와 행복이 가득하다면, 마음 속 그릇이 텅 비어있다면 타인의 슬픔을 조금 채운다고 하여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을 추스리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상대방의 아픔까지 떠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들을만 할 것이다. 소중한 사람이 고통받고 있음에 분개하고 조금이라도 힘이 돼 주기 위해 이야기도 열심히 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점점 지쳐갈 것이다. 오늘따라 일이 잘 안 풀리는데 비슷한 레퍼토리의 이야기를 또 듣게 된다면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보다 스스로의 안위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슬픔을 나누고 어려움을 이겨내보고자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모두가 힘들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 된다면 더 이상 분풀이는 내려놓는 것이 좋다.
감정은 흘러가는 것,
조금만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어떨까
당신이 분에 못 이겨 몸이 떨릴 때 그것을 소중한 이에게 넘겨주지 말자. 감정은 흐르는 것이기에 지금 이 순간과 조금 뒤의 상황이 다를 가능성이 높다. 너무 화가 난다면 그 순간 자리를 피해서 혼자 시간을 갖는 것이 차라리 낫다. 어려움을 타인과 나누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당신의 상황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의 모습이라면 되도록 불 붙은 심지를 꺼버릴 때 까지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감정은 시시각각 바뀌지만 그것을 모두 표출할 필요도 없다. 화내는 모습도 나지만 여유를 갖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나도 '나'다. 힘든 모습을 가끔 보이는 건 괜찮지만 매번 안 좋은 이야기들로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옆에 있는 사람도 힘들고 지치지만 당신을 위해 웃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번쯤은 생각해 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