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꼰대일까
회사에 신입사원들이 입사했다. 입사 후 첫 점식 회식이 있는 날,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옹기종기 모였다. 팀원 중 A가 신입사원이 슬리퍼를 신고 나가는 것을 봤다.
A: 슬리퍼 신고 나오셨어요!
신발로 갈아 신는 걸 깜박한 줄 알고 A가 오지랖을 부린 것이었다. 그러자 신입이 말한다.
“아, 괜찮아요 이거 신고 갈 거예요”
A는 살짝 당황했지만 “아 그렇군요”로 마무리한다. 그 후 점심 회식이 끝난 후 며칠이 지나고 A는 그때의 이야기를 꺼낸다.
A: 새로 오신 분한테 좀 놀란 게 있어요. 밖에 나가는 데 그냥 슬리퍼를 신고 나가시더라고요. 당연히 깜박하신 줄 알았는데… 그리고 제가 그분 옆자리에 앉고 앞에는 책임님이 계셨는데 회식 자리에서 대학생 때 수업 빼먹으려고 노력한 걸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걸 보고 좀 놀랐어요. 나름 자유를 중시하는 편인데 저도 꼰대가 되어가는 걸까요?
동료의 나이는 20대 후반이고 입사자들은 20대 중반이다. 슬리퍼 신고 외출하는 것에 대해 나도 놀라긴 했으나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회사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개개인의 가치관과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가끔 예의와 자유의 선을 넘나드는 애매한 상황이 생기면 ‘나도 꼰대가 되어가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의와 자유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나는 꼰대일까?
보수적인 기업 중에서는 상사가 일어날 때까지 팀원들이 퇴근할 수 없는 곳도 있다. 그들은 일찍 퇴근하는 팀원에게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며 기나긴 대서사를 풀어내기도 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옛날에는 당연했던 일들이 요즘은 당연하지 않다. 본인은 꾸역꾸역 견디며 올라왔는데 요즘 것들은 개념도 근성도 없다.
요즘 것들에게 이런 상사는 꼰대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나 역시 꼰대로 보일 수 있다.
이전에 일 처리가 느린 동료 B가 있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시선에서 바라본 업무 태도다. 본인의 역할을 다해내지 못하면 같은 팀원들에게 부담이 가는 구조였는데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직접적으로 팀원들이 힘들어지기 시작하자 B가 점점 싫어졌다. 팀원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얘기도 해보고 해결 방안을 찾아보려 했지만 결국 그때뿐, 열심히 하지 않는 자는 계속해서 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억울했다. B는 꾀를 부리는데 나는 왜 힘들게 일해야 할까? 그렇다고 나마저 손 놓으면 다른 팀원에게 부담이 가기 때문에 불만이 있어도 끝까지 해냈다. 그때 스스로 꼰대가 되어간다 생각했다
1. 스스로 열심히 하는 건 자유의사지만 그것을 남에게 강요할 권리가 있는가
2. 팀원들이 모두 힘들어지지 않으려면 개개인이 열심히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두 가지 생각이 늘 충돌하며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하지만 헛된 노력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노력을 인정받아 나는 직급이 올라갔고 그 사람은 퇴사했다. 그렇게 꼰대를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경험을 거울삼아 상대방을 비춰본다. 경험은 뿌리 깊은 나무 같지만 그만큼 튼튼한 고집을 동반한다. 직급이 높을수록 뿌리를 부정당하는 느낌을 견딜 수 없어한다. 견고함은 때론 부서지는 이유가 될 때도 있다. 그래서 경험을 중시하되 경험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세월의 강풍을 맞아 단단한 아집이 생기려 한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꼰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