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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코로나 검사

코 앞까지 들이닥친 코로나의 무서움을 실감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직장인의 하루. 하루 중 가장 졸린 3시의 경계를 살짝 넘긴 시간이었다. 공기 순환이 안 되는 사무실에 히터까지 틀어서 머리는 무겁고 얼굴은 화끈거렸다. 점점 바람을 넣어 팽창하는 풍선처럼 얼굴 곳곳의 모공도 확장하는 느낌이 들었다. 미니 가습기로 얼굴에 시원한 수증기를 뿌려주며 열기를 가라앉혀 보려 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 집에 가고 싶다’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퇴근하고 싶다’를 마음속으로 10초간 함성 발성하고 있는데 갑자기 인사총무팀 직원이 우리 팀에 들이닥친다.


정말 집에 가라고?


인사팀: 이 시간부로 전원 재택근무로 전환합니다.  지금 바로 자택으로 돌아가세요.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니 정말 집에 가게 되다니.


인사팀: 해당 층에서 근무하는 팀원 A씨의 가족 중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A씨와 밀접 팀원들은 전부 검사 진행 중입니다.


곧바로 아웃룩을 확인해보니 전 직원에게 메일이 와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층은 사무실이 굉장히 넓다. 확진자 가족인 팀원 A씨는 같은 층이지만 우리 팀과 가장 멀리 위치한 파트 소속이었다. 인사팀에게 자초지종을 듣는 마케팅 팀원들은 웅성거리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은 하나 둘 짐을 싸서 집으로 떠났고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다음날 아침 전체 메일로 확진자의 가족인 A씨의 양성 판정 소식을 들었다. 그 전날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A씨의 확진 소식은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팀 전체에게 당일 검사하라는 통지가 왔고 바로 근처 보건소로 향했다.


동네 임시 선별 진료소에 가다
출처: 양천구의회

낮 기온이 영하 6도 이하로 떨어지는 추운 날이었다. 오전 11시쯤 보건소에 다다르자 푸른색 천막이 보였다. 천막별로 접수, 대기, 검사가 분류돼 있었고 생각보다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내 앞으로 5명 정도가 대기하는 천막에 서 있었고 바로 접수처로 갈 수 있었다. 접수자가 이름, 연락처, 해당 구 주민 여부, 확진자 접촉 여부 등을 표기하게 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확진자와 밀접 접촉은 아니고 같은 층이었다고 말하니 종이를 들고 대기처로 가라고 했다. 모두가 안심할 수 없는 상황. 다들 1m 이상 멀찌감치 떨어져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5분 정도 기다렸더니 안내자가 핸드폰 번호 뒷번호를 부른다. 앞으로 나서자 해당 번호가 맞는지 물어보고 의자에 앉으라 했다.


의자는 테이블과 의료진들의 반대 반향을 향하게 놓여 있다.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앉아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더니 의료진이 말했다.


의료진: 마스크 잠시 내리시고 입 벌리세요.


‘아~’하면 입 안 점막을 면봉으로 긁어낸다. 코에만 면봉이 들어간다 생각했는데 입 안 점막도 채취하는 모양이다.


의료진: 불편해도 좀만 참으세요~


코 안으로 면봉이 깊숙이 들어온다. 어디선가 전두엽까지 면봉이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하는데 코가 꽉 막혔을 때 이비인후과에서 끝까지(?) 뚫어주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코감기 심하게 걸렸을 때 이비인후과에서 코 뚫어주는 것이 더 아팠던 것 같다.


눈물이 찔끔 나고 면봉이 닿았던 부분이 아린 느낌이 들지만 생각보단 괜찮았다. 알레르기가 평소에도 있는 편이라 먼지 등 자극이 있으면 콧물이 나온다. 면봉이 자극적이었는지 집에서도 콧물이 좀 나왔지만 몇 시간 지나니 아린 느낌도 사라지고 콧물도 멈췄다.


집에 돌아와 팀원들과 얘기해보니 나는 정말 빨리 끝난 축에 속했다. 첫 번째 진료소에 갔다가 받지 못해 두 번째 진료소에서 앞에 50명이 있어 기다렸다는 팀원. 한 시간 기다렸다는 팀원 등으로 다양했다. 코로나 이전에 감기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분 탓인지 집에 오니 몸이 으슬으슬 춥고 콧물도 나오는 것 같고 기분이 묘했다.


음성일까 양성일까?
심리적 불안감은 최고조


집에서 날 대하는 가족의 모습도 달라졌다. 마스크는 물론 라텍스 장갑을 끼고 일해야 했으며 방도 따로 썼다. 가족 전원이 마스크를 썼고 식사는 각자 하였다.


‘밀접 접촉자도 아니고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난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강했다. 하지만 만약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사람 일은 알 수 없으니 조심해야지. 당연한 거야’라고 생각하며 답답함을 눌렀다.


다음날이 되고 팀원들에게서 ‘음성 판정’ 소식이 들려왔다. 구마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시간이 조금씩 다르다. 광진구에 사는 팀원이 가장 먼저 음성 판정 소식을 알렸고 송파구가 그 뒤를 이었다. 언제 결과가 나올까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데 오전 11시쯤 드디어 문자가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확인해 본 나의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같이 검사받았던 가족도 모두 음성이 나와 안심할 수 있었다.


마스크는 나와 모두를 지키는
최소한의 방어막


나는 아니지만 밀접 접촉자의 경우, 음성이 나오더라도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이렇게 바로 주변에서 코로나가 발생하고 나를 포함한 가족들이 줄줄이 검사를 받으며 어느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니겠지’, ‘설마 아닐 거야’라는 생각은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어도 안전을 보장해 주진 않는다. 순식간에 퍼지는 코로나를 실감하며 아무리 답답해도 마스크는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임을 여실히 느꼈다.


검사받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괜찮으실까.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의 손길이 당신에게 닿을 수 있음을 깨달으면 이미 그땐 늦는다. 깨닫기 전에 예방하여 모두가 이 어려운 시국을 건강하고 슬기롭게 해쳐 나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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