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 촬영하다 기절한 사연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신부와 신랑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스드메’. 스드메는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을 통칭하는 말로 화려함의 정수라 할 수 있다. 화려한 앞면이 있다면 어두운 그늘도 있는 법. 겉보기에는 우아한 백조가 무리한 발차기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릴 수 있다는 걸 경험하기 전에는 알지 못한다. 실제로 스튜디오 촬영은 수면 아래에 보이지 않는 백조의 발차기로 완성되는 중노동(?)의 현장이었다.
스튜디오 촬영, 오전은 피하세요
스케줄을 잡을 때가 10월 말이라 가급적 빨리 스튜디오 촬영을 해야 했고 11월은 드레스샵 투어가 있기 때문에 12월에 스튜디오 촬영을 해야 했다. 스튜디오 촬영을 해도 사진 원본을 받으려면 적어도 2~3주가 필요하고 앨범으로 받으려면 3개월 길게는 4개월까지 걸린다고 하여 마음이 급했다.
그렇게 급하게 정한 스튜디오 촬영 일정은 일요일 오전 11시였다. "오전 11시가 뭐가 이르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이유는 스튜디오 촬영 전 메이크업 때문이다. 적어도 3시간 전에 메이크업샵에 가야 하는데 실제 안내문을 받으면 3시간 반 전에 오라고 한다. 즉 7시 반까지 가야 하는데 보통 메이크업샵이 청담에 있다는 걸 가정하고 가는데 1시간 정도 잡았을 때 6시 이전에 일어나야 한다. 실제로 당일 눈 잠깐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알람이 울려 무거운 몸을 일으켜야 했다.
예비신랑, 신부가 함께 가서 메이크업을 받는데 신랑은 30분이면 헤어와 메이크업이 끝나고 거의 3시간이 신부의 시간이다. 실제로 나의 경우 2시간 정도 걸렸는데 메이크업을 받고 있으면 드레스샵에서 헬퍼 이모님이 오신다. 헬퍼 이모님은 움직일 때마다 질질 끌리는 풍성한 드레스를 함께 들어주고 촬영 때 사진이 예쁘게 나올 수 있도록 드레스 모양을 잡아주거나 헤어 변형을 도와주시는 분이다. 이모님이 이날 신부의 손과 발이 되어 주신다. 헤어와 메이크업이 완료되면 드레스샵에서 헬퍼 이모님이 가져오신 드레스로 탈의한 다음, 스튜디오로 떠난다.
숨 막히는 스튜디오 현장, 정신을 잃다
웨딩 촬영 결과물을 보면 평화롭게 웃는 것 같지만 실제로 결과물을 내기 위한 과정은 눈물겹다. 대부분의 예비신랑과 신부는 전문적으로 촬영을 해본 적이 없기에 표정이나 포즈가 어색할 수밖에 없다. 촬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표정’인데 몸은 보정할 수 있어도 표정은 보정하기 어렵다.
스튜디오 촬영 전 웃는 연습을 많이 하고 가길 잘했다. 평소 셀카를 자주 찍는 편이 아니라 거울 보고 웃는 모습이 어색했다. 웨딩 촬영에서는 치아 안 보이게 미소 짓기와 치아 보이게 웃는 2가지 종류를 가장 많이 찍는다. 각 장면마다 음~(치아 안 보이는 미소), 이~(치아 보이는 미소) 두 종류로 찍기 때문에 두 가지 버전은 필히 연습하고 가자.
나름 맹연습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드레스를 재정비(?)하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드레스샵에서 조금 조이는 느낌이었다면 스튜디오 촬영 때는 다시 드레스를 작정하고 코르셋으로 잔뜩 조인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에서 스칼렛의 가녀린 허리를 위해 시녀가 코르셋을 쪼이는 장면이 생각났다. 스칼렛처럼 가녀려지는 것도 아닌데 숨 못 쉬게 하는 갑옷을 입은 느낌이다.
헬퍼 이모님: 코르셋은 원래 허리가 아니라 갈비뼈를 압박해서 조이는 거예요.
기다란 흰색 끈을 꺼내 든 헬퍼 이모님은 예쁜 사진을 위해 사정없이 코르셋을 조여 주셨고 숨 쉬기가 어려웠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 생각했다.
우리가 고른 스튜디오는 전부 실내 촬영으로 진행하는 곳이었다. (옥상에서 촬영하는 야외 씬이 있었으나 우리는 찍지 않았다) 드레스만 입고 있으면 상당히 헐벗은(?) 느낌이라 생각보다 춥다. 스튜디오가 지하라 그런 것도 있지만 플래너님이 핫팩을 챙겨가라고 했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게 후회됐다.
숨 쉬기 불편한 상태에 춥고 긴장해서 사진을 찍는 시간이 한 시간 이상 지속됐다. 포토 기자님의 주문에 따라 포즈를 취하려 하는데 갑자기 갑갑함을 넘어서 숨이 점점 안 쉬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살짝 저혈압이 있는 편인데 숨을 못 쉬는 기분이 가속화되면 눈 앞이 하얘지며 어느 순간 ‘탁’하고 눈 앞이 깜깜해지며 정신을 잃는다.
9호선 급행열차에서 경험해 본 적 있는 이 느낌. 직감적으로 쓰러지기 직전임을 깨닫고 잠시 쉬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헬퍼 이모님의 부축을 받아 예비신랑과 함께 대기실로 갔고 코르셋을 다 풀고 눈을 감았다. 어지러울 땐 눕는 게 최고지만 누울 장소도 마땅치 않고 헤어가 눌리기 때문에 맘대로 할 수 없었다. 눈을 감고 계속 안정을 취해보려 하는데도 어지럽고 힘이 없었다. 놀란 예비신랑과 헬퍼 이모님이 먹으라고 챙겨주고 곁에서 뭐라고 얘기하는데 정신이 혼미하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침 일찍 나오느라 새벽에 바나나 반 개 먹은 게 전부인데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예비신랑이 챙겨 온 사이다가 생각났다.
시원하고 톡 쏘는 사이다에 빨대를 꽂아 몇 모금 마시고 다시 눈을 감았다. 신기하게도 점차 상태가 호전되었다. 수혈받는 사람처럼 사이다를 쪽쪽 빨아 마시며 눈을 감고 몇 분 더 쉬었다. 식은땀이 식으며 온 몸이 덜덜 떨렸지만 다시 촬영은 할 수 있었다.
사진만 봐서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웃고 있는 모습 뒤에는 답답한 드레스를 3시간 이상 입고 편하지 않은 자세로 사진을 찍는 백조가 물 밑으로 힘차게 헤엄치고 있다는 걸. 그렇게 기절 투혼을 발휘한 촬영은 3시간 반 정도로 마무리됐다. 우리는 캐주얼, 한복 스타일은 준비해 가지 않아서 일찍 끝난 편이며 보통 4~5시간을 촬영한다. 사진 촬영 후 원본 사진 구매는 필수라 원본 값으로 33만 원을 지불하고 나왔다. 이날 수고해준 친구와 예비신랑과 나오며 소리쳤다.
“결혼 두 번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