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만 해야한 삶에서 벗어나기.
살아가면서 가장 익숙해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실패하기 입니다. 만약에 태어나서 처음 세상을 걸을 때 넘어지지 않는다면 과연 세상을 걸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는 걸음마 조차 하지 않고 뛰어다닐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교육과 사회 시스템입니다.
실패를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스스로가 실패에 관대하지 않다는 반증입니다. 실패를 하는 것이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전할 것 같지만. 계속해서 변하는 세상 속에서 그에 맞게 변하지 않을 경우엔 소극적인 움직임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실패를 하더라도 스스로가 도전했던 것을 통해서 배움을 얻고 활용해 나가는 것에서 해답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실패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요?
먼저 실패라는 것의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실패를 두려워 하는 것은 도전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걸음마를 하면서 넘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처럼. 스스로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때. 실패를 맛보는 것은 당연한 과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 비용을 지불하는 것 처럼. 무언가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에 도달하기 위해선 그에 맞는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실패입니다. 실패는 우리 삶에서 계속해서 다가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실패는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계속해서 다가올 실패라는 파도를 손으로만 막으려고 하거나 눈 감고 자리에 앉아 있는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것을 외면하게 되면 나중에는 쓰나미 처럼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꿔 버릴 것으로 우리를 집어 삼켜버릴 지도 모릅니다.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실패는 배우기 위한 과정입니다. 실패를 피한다는 것은 배우는 것을 포기한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우리가 익숙한 '오지선다'형 문제는 실패가 재앙인 것 처럼 만들었습니다. 무언가 문제를 해결할 때. 0점짜리 답은 없습니다. 그리고 틀리는 과정에서 생각했던 노력에 대한 점수 반영도 없습니다.
틀려버린다는 것은 아예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창의력 면에서 실패를 통해서 얻게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크게 깨달으면서 다른 것에서 더 많은 것을 얻는 원동력이 되어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는 모든 것을 좌절하게 하는 요인인 것 처럼 우리는 인식하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한다는 것.
사회는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과거에 한복을 입고 생활하던 우리는 이제 다른 옷을 익숙하게 입고 다닙니다. 공부를 책으로만 하던 우린 유튜브를 보며 공부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의 바람도 누군가의 최초의 시도로 생겨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시도들이 모두 성공했던 것은 아닙니다. 실패를 맛보면서 계속해서 발전해서 현재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어떠한 것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언젠가 사라질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라질 것들에 대한 미련보다도. 내가 현재 누리는 것 뿐만 아니라 미래에 내가 하고 싶은 것. 도전하고 싶은 것들을 시도할 때. 처음 시작하는 기쁨들을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단순히 내가 과거에 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미래에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처음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설령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실패를 자연스럽게 맞아들여야 합니다. 실패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게 되는지 체험해야 합니다.
넘어지는 것이 익숙해지면.
계속해서 넘어집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일어나면 됩니다. 주변의 누군가 걱정해주는 눈빛이 부담스럽다면 내 눈을 질끈 감고 그냥 앞으로 갑니다. 그리고 다시 넘어지면 일어서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다시 넘어지지 않게 될 날은 분명히 옵니다. 사람은 생각하는대로 되고. 믿는대로 됩니다. 그것은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 수 있도록 넘어지더라도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저는 과거에 넘어지면. 위로만에 기댔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로를 받느라 응석만 부린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일은 분명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며. 넘어졌을 때. 일어서는 것은 스스로 해야만 합니다. 내가 도전하는 것에 대해서 걱정해주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귀를 닫고 눈을 감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넘어지는 것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닙니다. 넘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일어날 수 있는 기회가 매번 주어지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넘어지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넘어지는 것은 세상의 모든 자연 현상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다시 일어납니다.
한번에 고쳐지는 것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에 대해서 관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한 두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까요? 사람의 습관은 수년 혹은 수십년에 걸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한 번에 바꿀 수는 없습니다. 실수의 패턴. 혹은 실패의 패턴은 매우 유사하게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한 번에 고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무언가 시도했을 때. 내 문제점이 한 번에 고쳐지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원래 한번에 고쳐지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것을 인식하고 조금씩 바꿔 나갈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한번의 실패만으로 포기하게 된다면 얻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누리는 것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해서 머무르기만 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막연하게 더욱 커질 것입니다. 한번에 고쳐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부딪치면서 바꿔 나가게 되면 언젠가는 바뀌게 됩니다.
꽃길만 걷는 것은 축복은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꽃길만 걸으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꽃길만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꽃길만 걷길 바라는데 계속해서 생각보다 길이 거칠다면 얼만 좌절감이 들까요? 이것은 인식의 차이입니다. 한정된 세상의 자원과 끝없는 인간의 탐욕이 만나 살아가며 경쟁이 시작될 때도 있습니다. 삶이 치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이 꽃길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지만. 힘든 와중에서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확신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믿음만큼 꼭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개개인이 자신을 믿는 것은 세상의 어떤 종교보다도 중요합니다. 이기적인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꽃이라는 것도 피우기 위해서 혹독한 겨울을 견뎌야 합니다. 대자연에서 겨울을 견디지 않는 꽃은 없습니다. 꽃도 피게 되면 언젠가 지게 됩니다. 그러다 열매를 맺고 겨울을 견디며 다시 봄날를 위해 잠시 움츠려드는 것 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힘든 과정 속에서 자신에 대한 믿음만이 그 긴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줍니다.
그렇게 해서 아름다운 꽃은 탄생하게 됩니다. 우리 삶 속에서 여유와 풍요로움을 전달해주는 꽃은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가치는 단순히 결과로만 보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과정 속에서 견뎌낸 아름다움도 함께봐주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실패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상 양평 김한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