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고민은 무엇이 중요한가부터.
나는 느린 거북이다. 하지만 토끼처럼 빠르게 뛰는 법을 어린 시절부터 배웠다. 열심히 뛰면 뛸수록 나는 느리다는 것을 깨달을 뿐. 빨라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배우는 사람에게도 서로에게 힘든 과정이었다.
그러던 중에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내가 거북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테스트를 해보았다. 거북이처럼 더 느리게 살아보려는 노력이었다. 느리게 살면 과연 나는 얼마나 더 뒤처질까... 그런 두려움은 나를 옭아매었다. 모든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천천히 간다는 것은 효과를 보기 위해서 긴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당장 느리게 가기 때문에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거북이라도 토끼 흉내를 내면서 뛰어가는 것이 더 빨라 보였다. 천천히 가는 것을 보면서 옆에서 사람들이 더 불안해했다.
그렇게 느리게 가다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거야.
나는 계속해서 좌절을 했고. 아내는 옆에서 계속 독려를 했다. 아내는 토끼이고 나는 거북이라 아내는 무엇이든 처음부터 습득이 빨랐다. 하지만 자신처럼 빨리 뛰어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계속해서 더 느리게 거북이답게 살라고 격려했다.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는 인생을 견딘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쌓고 있는 것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스스로를 더 지치게 만든다. 1년, 2년, 3년..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 4년이라는 시간을 느리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누군가가 보기엔 노는 것처럼 보이고. 누군가가 보기엔 게으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거북이는 거북이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결과로만 이야기할 뿐. 거북이의 행동을 존중해주진 않는다.
거북이의 삶도 존중되어야 한다.
거북이라는 존재가 느리게 보이고 쓸모가 없을지라도 그 긴 시간 동안 그 나름대로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천히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꼭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정리하고 하나씩 해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빨리 가면서 수많은 실수를 하던 시절에 비해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여태까지 모든 것이 한 번에 바뀌길 원했다. 어떻게 하면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꿀 것인가 개혁만을 꿈꾸며 살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일은 없었다. 정말 작은 것부터 자신에게 맞는 방법과 끈기. 그리고 주변의 독려가 필요했다.
나는 스스로 생각했을 때.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거북이의 삶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