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시급 2018년, 2019년 전망, 월급 계산법 의 비밀.
사람은 누구에게나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이라는 크던 작던 각자에겐 소중한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꿈을 갖는 것 역시 자격 요건이 필요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꿈을 갖기 위해서 그리고 실현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결되야하는 것은 기본적인 의식주 외에 몇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언론에서 2018년 최저시급으로 인해서 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막상 최저시급 월급 계산법으로 계산을 해보아도 크게 오르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란 분들도 많으셨을 것입니다. 2019년 최저시급과 관련해서도 법안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체감되는 인상률은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저는 최저시급이 1만 원이 되는 것을 적극 찬성합니다. 그리고 저녁이 있는 삶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바빠지는 삶 속에서 그런 것이 체감되지 못하는 현실을 직면하곤 합니다. 먼저 최저시급이 오르더라도 월급엔 큰 차이가 없는 것은 고용주 측에서 '노동시간'을 줄여버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임금으로 지출될 예산은 제한되어 있으니 아예 일할 시간을 줄여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임금을 받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될까요? 매년 치솟는 물가 대비 월급은 줄어들게 되어 생활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투잡, 쓰리잡까지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일을 더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될지도 모릅니다.
꿈을 꾸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
이전에는 헝그리 정신이 강조되었습니다. 저 역시 헝그리 정신으로 스포츠 대회에서 우승을 하던 챔피언 이야기를 들으며 잘아온 세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헝그리 정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삶을 유지하는데 유지비가 많이 들어갑니다. 수명 역시 늘어났습니다. 벌어야 하는 것은 많은데 벌 수 있는 수단은 줄어만 갑니다.
남들이 보기엔 주변 환경이 좋아지는 것 같지만. 정작 누려야 할 '여유'는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고 해서 개인 PC를 활용한 소득도 함께 느는 건 아니었습니다. 모든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쓸 돈만 많아지고 내 소득까지 올려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 시간의 여유.
2. 심리적 여유.
3. 주변의 지지.
먼저 시간의 여유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너무 바빠지게 되면 꿈과는 멀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전 경제개발이 활발하던 7080 시대에는 '돈을 많이 벌어서 호강하자'는 모토가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돈'이 삶의 목표였던 것입니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돈'은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처럼 보였습니다. 심지어 정부에서도 초점을 그곳에 맞췄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야근을 기본으로 하고. 가정보다는 국가발전과 기업의 발전을 위해서 목숨 바쳐 일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로 인한 눈부신 국가의 발전이 있었지만. 개인의 시간은 철저히 희생되었습니다. 여가 없는 생활로 인해서 꿈은 단순해야 했고. 이룰 수 있는 것보다는 막연한 신기루처럼 쫓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시간의 여유가 없다는 것은 천천히 내 꿈을 발전시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줍니다. 매일 조금씩 발전시키지 못한 꿈은 1년, 2년이 지나도 발전이 없을 뿐입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10년, 20년까지도 흐르고 은퇴할 때까지 자신의 꿈을 이룬 것은 많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그토록 염원했던 '돈' 역시 풍족하게 모은 것은 극소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심리적 여유.
우리는 쉬거나 노는 것을 죄악시했습니다. 모두가 바쁠 때는 함께 바빠야 했습니다. 저 역시 군대에서 '액션'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처럼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걸 잘하는 사람이 군대 생활을 잘하는 사람이었기에 저도 배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가라'도 배웠습니다. 가짜로 만들어서 진짜처럼 보일 뿐. 역시 하나마나 한 행동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군대에는 액션과 가라가 남무 하는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가짜 행동과 가짜 결과물을 끊임없이 내놓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모두가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군대에 온 것 역시 의무로 인해서 왔고 그에 따른 충분한 보상도 없습니다. 그러나 요구하는 조건들의 양은 많고 까다롭기까지 합니다.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여러 가지 시키다 보니 결국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명령과 실행이 있을 뿐입니다. 시키는 사람은 촉박한 기한, 해내는 사람도 촉박하게 실행합니다. 그렇게 완성된 결과는 가짜들이 난무했습니다.
가짜가 풍부하게 만들어질 바에는 그냥 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일들이 많은 사회입니다. 이것은 기업에서도 정부에서도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보여주기 식으로 인해서 모두가 바쁘게 일하지만 결과는 나타나지 않는 것들도 많습니다. 이것은 시간 부족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부담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유 있게 개인만의 꿈을 주장하기란 어렵습니다. 그전에 가짜로 끝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주변의 지지.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지지로 인해서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사회가 서로를 지지하는 것보다도 더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으로 빠져드는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에는 고도 경제성장으로 인해서 자원이 풍족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경쟁에 밀리더라도 어느 정도 기회가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성장 기류로 인해서 모두가 잘되기란 어렵다는 것을 여러 사람들이 깨닫게 됩니다. 치열한 경쟁이 여러 군데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자리는 한자리인데. 경쟁자는 100명이 넘는 곳도 넘쳐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사회를 구성하는데. 이렇게 모인 사회에서 서로 지지를 하는 것이 아닌 경쟁을 한다면 그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시간이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는 상황에서 주변까지 콕콕 쪼아댄다면 정말 힘든 일상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힘든 일상은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과거에 꿈꾸었던 현실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있어도 현실에서 꿈을 이루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줄어들어 갑니다.
누군가는 현실에 만족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만족을 하는 것이 꿈을 포기한다의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무언가를 하자는 이야기보다는 내가 그것들을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만 이야기가 넘쳐납니다. 그러나 말은 곧 현실이 되어버리는 무서운 힘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이 모였을 때. 긍정적인 대화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고. 부정적인 이야기가 늘어날 수록 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서로 꿈을 함께 포기하는 법을 배워가고 낙심하게 됩니다. 누군가 꿈을 이야기해도 포기할 것을 강권합니다.
사람은 꿈을 꾸어야 하는 존재.
저는 늘 꿈을 이야기합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피곤해합니다. 무언가 하자고 하면 할수록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논리적인 반박을 듣습니다. 경쟁은 피하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밀려오는 것은 경쟁자들 뿐인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협력을 배우지 못한 상황이 한탄스럽기도 합니다.
시간, 마음, 지지가 보여서 한 개인의 꿈을 이룬다는 것은 정말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저 역시 어떤 일을 하던 혼자 한 적이 없습니다. 혼자 하다가 좌절을 할 때면. 감사하게도 1~2명의 사람이 다가와서 그 일의 마무리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할 때 적극 나서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저는 세상의 힘을 믿습니다. 헬조선이라고 놀림받는 이 땅에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실현하려고 여러 가지를 도전해봅니다. 대부분 실패를 경험하고 낙담할 때마다 다시 해보자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입니다.
그러나 실행자의 본인이 '포기'하는 것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음을 배우곤 합니다. 누군가 제의를 했을 때. 그것이 어떤 기회인지도 모르고 거절을 하거나 시작도 전에 포기부터 하게 되면 기회의 연결고리가 끊어집니다. 그리고 꿈은 말 그대로 이룰 수 없는 꿈이 되고 긴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무서운 것은 나이가 들면 들 수록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교복을 입고 다닐 당시엔 세상은 비교적 따듯하게 느껴졌습니다. 밥을 먹어도 할인. 물건을 사도 할인. 무언가를 할 때. 쉽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그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꿈을 이루려고 한다면 단 1년이라도 앞서서 조금씩 실행하고,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을 일궈 나가야 합니다. 여러 가지 법들이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그 기회가 나한테 올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릅니다. 결국 그 기회의 타이밍은 내가 잡아야 하고 놓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경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고, 느끼고 잡을 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꿈을 이룰 수 있는 자격.
돈 없이 행복할 수 있다. 저는 이것은 거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리산 속에 들어가도 돈은 필요합니다. 나이가 들면 결국 병원에 다녀와야 할 상황도 생깁니다. 조선시대에도 돈 없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약간의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기본적인 상황이 어렵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함께하는 인식입니다.
그럼에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꿈을 이룰 수 있는 자격에 돈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꿈을 이룬 사람들 중에 배경 없이 성공하는 사람들이 줄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소박한 꿈조차 꿀 수 없는 사회만큼 야박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꿈을 이룰 수 있는 자격은 태어나면서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성공해야만 한다는 '성공론'에 동의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자신이 느끼기에 스스로 '작은 꿈'을 이루며 살고 '일상의 행복'을 충분히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마무리.
40년간의 고도성장의 축제가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막연한 꿈이었던 '돈을 많이 버는 것' 역시 모두가 이루기엔 쉽지 않은 꿈임을 서로가 인정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사소한 꿈조차 이루지 못하다 보니 기성세대도 신세대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교육도 바뀌지 않았고. 사회 시스템도 바뀌지 않았지만. 현실은 냉혹하게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 현실조차 입에 담기 힘듭니다. 기성세대는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새로운 세대는 '어차피 안 되는 것 말하면 뭐하냐'는 이야기가 오갑니다. 그렇게 일상에서 꿈을 이루는 것조차 모두가 '사치'로 여깁니다. 그렇게 자신 앞에 오는 기회조차도 스스로 외면하는 분위가 가 만연해지고 있습니다.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은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2019년 최저임금 인상 역시 들려옵니다. 하지만 최저임금 월급 계산법의 결과물은 늘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각자 충분히 고민을 해보고 나름의 해답을 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