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은 우리를 지치게 한다.
'나의 수명은 이제 100일밖에 남지 않았다'라고 적은 후에 '나는 이제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민훈으로부터 날아온 메일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메일을 보면서 삶에 대한 고민을 한 흔적이 느껴진다. 고민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말만 많아지만 생각이 정리되면 말은 줄어든다. 이민훈 그는 지금 그런 상황으로 보인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본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든 그런 상황에 쉽게 놓이지 않는다. 모두다 '앞으로 앞으로'만 외치다가 반대로 코 앞에 있는 낭떠러지 조차 발견하지 못하고 떨어진다. 그리고는 과거의 추억이나 기억도 잊은채 현실의 괴로움만 바라보며 살게 된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앞을 보기도 하지만 잠시 쉬면서 뒤를 돌아보는 즐거움도 함께 누려야 한다.
3일뒤 만나기로 한날.
이민훈은 벨을 누르고 이김연구소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곳엔 나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함께 100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최선민이 있었다. 그녀는 나의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는 글을 읽고 함께 도전하기로 한 여성이었다. 30대에 전문직을 갖고 있지만 고소득에 비해서 생활의 만족도는 전혀 높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 매일이 최악이라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민훈 : 안녕하세요. 다른 분이 계신줄은 몰랐습니다. 잠시 기다리겠습니다.
나 : 아니에요. 들어오셔서 같이 이야기를 잠시 나누시죠. 최선미님은 이곳을 지나다가 방문하셨기 때문에 곧 가신다고 합니다.
최선미 : 안녕하세요.
이민훈 : 안녕하세요.
최선미 :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분이 또 계시다길래 궁금했어요. 반가워요.
이민훈 : 아닙니다. 아직 프로젝트를 완벽히 진행한건 아니에요. 이제 3일간의 고민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최선미 : 저도 그 3일이 어찌나 길게만 느껴졌는지 생생해요.
나 : 두분이 말씀을 잘 나누시는 군요. 그럼 저는 잠깐 차를 타오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차를 드릴까요?
이민훈 : 저는 물로 하겠습니다.
최선미 : 저는 아메리카노로 부탁드릴게요.
나는 주방에 가서 아메리카노 한 잔과 물을 준비했다. 나 역시 보통 물을 마신다. 그나저나 둘이 처음 만났는데 이렇게 이어지는 것은 왜그런 것일까? 요즘 같은 사회에서 처음 만난 사람끼리는 서먹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다지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 공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은 에너지가 모이는 장치가 된다.
나 : 최선미님께서는 3일동안 고민하고 적은 것이 별로 없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백일간의 프로젝트를 잘 실행하고 계시죠.
최선미 : 오히려 시작되고 나서 더 많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냥 잠재되어 있던 생각들이 그 때 떠오른다고 해야할까..
이민훈 : 잠재되어 있는 생각이라는 것은 무엇이죠?
최선미 : 3일간은 저에겐 너무 짧은 시간이었어요. 3일간 고민을 한다고 해봐야 일이 바빠서 제대로 적지 못했습니다. 대신 일을 줄이고 나에게 100일간의 시간을 좀더 사용할 수 있도록 주변을 정리한 정도에요.
이민훈 : 저는 적은 것이 몇가지 있는데..
나 : 괜찮으시다면 최선미님과 함께 공유하시는건 어떨까요?
이민훈 : 별로 특별한 내용이 없어서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이민훈은 읽기 시작했다.
이민훈 : 나는 여태까지 내 마음대로 해본 것이 없다. 그냥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면 되었기에 최선을 다했다. 다른 사람과 문제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다. 그리고 좋은 성적에 졸업하고 대인관계도 원만하다.
그런데 남은 100일 동안은 이렇게 보내고 싶진 않다. 여태까지 내 인생에는 내가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주변을 완벽히 차단하고 나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내 안에서 말하는 진짜 내 목소리를 듣고싶다.
가족들에게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고 말하자 모두가 미쳤다고 말했다. 무엇이 부족해서, 그동안 잘했는데 왜 그러냐는 반응이었다. 결국 지지는 받지 못했지만. 나는 이 것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100일간 나는 변하고 싶다.
난 잘할 수 있다.
나 : 이야기는 잘들었습니다. 그 안에 구체적인 행동이나 해답이 명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최선미 : 저도 완벽하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3일보단 100일의 시간이 더 넉넉하거든요.
나와 최선미는 그를 안심시켰다. 삼십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번에 해결책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것을 해내고자 한다면 오히려 상황은 악화될 수 있다. 무엇이든 순서가 있는 법이다.
나 : 최선미님은 더 해주실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없으신가요?
최선미 : 절대 완벽하지 말것.
이민훈 : 완벽하긴 힘들죠. 그런데 완벽하게 사는 사람이 있나요?
최선미 : 아니요. 민훈씨나 저나 모두가 지금도 완벽하고자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요. 회사에서 일할 때도 완벽하게 처리하고 혼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그에 해당하죠. 어차피 지금은 완벽해 보여도 언젠가는 모은 일엔 문제가 생겨요. 그것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해요.
이민훈 : 하지만 직장생활에서 실수는 모두를 곤란하게 합니다.
최선미 : 물론 일부러 누군가를 곤란하게 하도록 하는 일을 해서는 안되죠. 그러나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라는 것은 오히려 더 큰 해가 됩니다.
이민훈 : 무슨소리인지 잘모르겠어요.
최선미 : 예를 들어보죠. 저는 대학 입시에 실패했어요. 그래서 재수를 했죠. 그런데 그곳에서 제가 발견한 것이 있었어요.
이민훈 : 뭐죠?
최선미 : 대학에 떨어져도 세상은 멸망하지 않았다는 거에요. 저는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대학입시에 투자했지만. 수능시험 때 너무 예민해져서 오히려 시험을 망쳤죠. 그런데 그렇다고 인생을 실패한건 아니었어요. 재수를 통해서 나온 점수 역시 제가 원하던 점수에 비해서 못미쳤지만. 지금까지 잘지내고 있어요.
이민훈 : 저도 어릴 때는 그 문제가 커보였지만. 지나고 난 후에 기억도 나지 않는 경우는 있었습니다.
나 : 최선미님도 완벽에 가까운 삶을 추구하고 이뤄냈지만. 결국 그것을 내려놓음으로써 더 나은 삶의 방향으로 전향할 수 있었습니다. 남은 100일 동안 모든걸 완벽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진실된 우선순위를 찾는 것입니다.
이민훈 : 진실된 우선순위요?
나 : 우선순위에서 중요한건 진실함입니다.
8편에서 계속.